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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호르무즈 틀어쥐고 새 중동 질서 ‘팍스 이라니카’ 구축 야심

요약
  • WSJ “제재 완화보다 해협 통제권 지렛대로 중동 패권국 부상 노려” 이란 테헤렌 북부 바나크 광장에 이란이 호르무즈해협을 장악하고 있다는 내용을 담은 광고판이 걸려 있다.
  • 뉴시스 “이슬람 국가들이 미국 중심 질서를 넘어서는 새로운 지역 질서를 구축해야 한다.” 이란의 최고지도자인 아야툴라 모즈타바 하메네이는 5월 26일(이하 현지 시간) 이슬람 명절 이드...
WSJ “제재 완화보다 해협 통제권 지렛대로 중동 패권국 부상 노려”

이란 테헤렌 북부 바나크 광장에 이란이 호르무즈해협을 장악하고 있다는 내용을 담은 광고판이 걸려 있다. 뉴시스 이란 테헤렌 북부 바나크 광장에 이란이 호르무즈해협을 장악하고 있다는 내용을 담은 광고판이 걸려 있다. 뉴시스
“이슬람 국가들이 미국 중심 질서를 넘어서는 새로운 지역 질서를 구축해야 한다.”

이란의 최고지도자인 아야툴라 모즈타바 하메네이는 5월 26일(이하 현지 시간) 이슬람 명절 이드 알 아드하(희생제)와 하지(성지순례)를 맞아 국영방송을 통해 발표한 14쪽 분량의 서면 성명 내용 중 일부다. 모즈바타는 “중동 정세가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변화하고 있으며 미국의 군사적 영향력도 약화하고 있다”면서 “페르시아만 지역 국가들은 더 이상 미군 기지의 방패 역할을 해선 안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모즈타바는 “무슬림 움마(공동체)와 이 지역 국가들은 새로운 질서와 지역·세계의 미래 구조를 형성할 공동 역량과 공동 이익을 보유하고 있다”며 “앞으로 이란이 추진하는 새로운 질서 구축에 중동 국가들이 동참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 성명은 모즈타바가 최고지도자 취임 이후 내놓은 가장 긴 공개 입장문이다.

이슬람 혁명 시기 노선으로 회귀특히 모즈타바는 미국을 ‘대악마(Great Satan)’라고 지칭했다. ‘대악마’라는 용어는 1979년 이란의 이슬람 혁명 때 팔레비 왕조를 붕괴시키고 신정 체제를 구축한 아야툴라 루홀라 호메이니가 처음 사용한 바 있다. 모즈타바가 이 용어를 사용한 것은 이란이 이슬람 혁명 시대의 노선으로 회귀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모즈타바는 4월 30일 페르시아의 날을 맞아 발표한 성명에서도 미국을 ‘대악마’라고 비판했다. 당시 모즈타바는 “세계 패권 세력이 감행한 최대 규모의 군사 동원과 침공 시도가 실패로 끝난 지금 페르시아만과 호르무즈해협에 새로운 장이 쓰이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모즈타바는 “미국이 없는 미래 속에서 역내 국가들의 발전과 평화, 번영이 실현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슬람 혁명으로 팔레비 왕조를 무너뜨린 호메이니는 ‘대악마’ 미국이 지원하는 중동 전역의 왕정 국가들을 부정하고 이슬람 공화국들을 세워야 한다는 야심을 보였다. 당시 호메이니는 이슬람 혁명을 이란 국경 밖으로 수출한다는 목표를 추진했다. 헌법에 이슬람 혁명의 해외 전파 의지를 명시했던 호메이니의 이런 의지에 따라 이란은 중동 지역 내 각국 반체제 세력들을 지원했다. 이란은 레바논의 무장정파인 헤즈볼라, 팔레스타인의 무장정파인 하마스, 예멘의 후티 반군, 이라크의 시아파 무장단체인 카타이브 헤즈볼라 등에 돈과 무기 등을 제공했다. 이란은 이들과의 연대와 협력을 통해 ‘저항의 축’을 구축했다. 말 그대로 당시로선 중동의 새 질서였다.

모즈타바가 호메이니처럼 이란이 주도하는 중동 지역의 새 질서 구축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모즈타바는 7월 18일 서면 성명에서 미국을 ‘대악마’라고 다시 지칭하면서 종전 양해각서(MOU)를 파기하고 “미국이 군사적 긴장을 계속 고조시킨다면 이란과 ‘저항의 축’은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잊을 수 없는 교훈을 얻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모즈타바의 이런 성명 내용은 사실상 미국과의 전쟁 재개를 선언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미국은 호르무즈해협을 오가는 각국의 유조선 등을 공격하는 이란에 대한 대응 조치로 이란 전역의 군사 시설뿐만 아니라 에너지·철도·교량·공항 등 민간 인프라를 광범위하게 타격하고 있다. 이에 맞서 이란도 사우디·쿠웨이트·바레인·요르단·카타르 등 걸프국들의 미군 시설을 비롯해 발전소·해수담수화 시설까지 보복 공격하고 있다.

아야툴라 모즈타바 하메네이는 7월 18일(이하 현지 시간) 서면 성명에서 미국을 ‘대악마’라고 지칭하면서 종전 양해각서(MOU)를 파기하고 “미국이 군사적 긴장을 계속 고조시킨다면 이란과 ‘저항의 축’은 미국과 그 아야툴라 모즈타바 하메네이는 7월 18일(이하 현지 시간) 서면 성명에서 미국을 ‘대악마’라고 지칭하면서 종전 양해각서(MOU)를 파기하고 “미국이 군사적 긴장을 계속 고조시킨다면 이란과 ‘저항의 축’은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잊을 수 없는 교훈을 얻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동아DB
걸프국 민간 시설 공격해 美 압박그렇다면 이란은 무엇 때문에 걸프국들을 공격하고 있을까. 우선 미국과 직접 충돌을 피하면서 미국의 동맹국들인 걸프국들을 통해 미국을 압박하는 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걸프국들은 자국 민간 시설이 이란의 미사일과 드론 공격으로 상당한 피해를 입자 미국에 자국에서 이란에 대한 공격을 자제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압둘라 알 샤이지 쿠웨이트대 정치학과 교수는 “이란이 걸프국들의 민간 시설을 공격하는 것은 미국에 전쟁 종식을 압박하려는 전략”이라면서 “걸프국들이 자국 영토가 미국의 이란 공격에 이용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이란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압둘라 반다르 알 오타이비 카타르대 국제관계학과 교수도 “이란이 걸프국들에 대한 공격으로 전쟁에 따른 부담을 주면서 미국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려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란의 또 다른 노림수는 걸프국들이 자국의 호르무즈해협 통제권을 인정하고 중동 질서의 패권이 자국에 있다는 점을 각인시키려는 의도라고 볼 수 있다. 쿠웨이트·바레인·카타르 등 걸프협력회의(GCC)의 3개 회원국들은 호르무즈해협이 봉쇄될 경우 우회로가 없기 때문에 원유와 가스를 아예 수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들 3개국으로선 이란의 호르무즈해협 통제권을 사실상 인정하는 것 이외의 대안은 없다. 반면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은 우회로가 있다. 오만은 호르무즈해협 밖에 있기 때문에 관련이 없다. 이란은 사우디를 압박하기 위해 ‘저항의 축’ 일원인 후티 반군을 통해 홍해의 바브 엘 만데브 해협에 대한 사실상 봉쇄조치에 나서고 있다. 후티 반군은 사우디가 우회로로 사용하고 있는 홍해 얀부항을 이용하는 모든 선박의 선적을 금지하는 조치를 내렸다. 사우디는 얀부항을 통해 하루 400만 배럴의 원유를 각국으로 운송해왔지만 현재는 중단됐다.

이란은 호르무즈해협(세계 원유의 20%)과 바브 엘 만데브 해협(세계 원유의 7%) 등 두 개의 원유 수출로를 사실상 장악하면서 미국과의 협상에서 지렛대로 사용할 것이 분명하다. 만약 두 개의 원유 수출로가 동시에 막힐 경우 세계가 경기침체에 빠질 수 있다. 11월 중간 선거를 앞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강력한 압박 수단이 될 수 있다. 이란 최고지도자의 군사고문 모흐센 레자이는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장례 행사에서 호르무즈해협을 ‘전략적 통로’라고 칭하면서 “수십 개의 원자폭탄보다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란에 호르무즈해협을 장악하는 것은 미국 정부로부터 수십억 달러 규모의 제재 완화 혜택을 받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면서 “이란 신정체제가 호르무즈해협 통제권을 지렛대로 삼아 전쟁 이후 이 지역 패권국 부상을 노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서방의 중동 전문가들은 모즈타바 등 이란 지도부가 미국과의 전쟁에서 자신들이 살아남았을 뿐만 아니라 지역 패권국으로 부상했다고 판단하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중동 질서를 구축하려 한다고 분석했다. 이란의 야심은 호르무즈해협을 영구적으로 통제하고 페르시아만 경제권을 장악해 새로운 안보 질서를 공고하게 구축할 경우 미국의 제재 완화를 비롯한 동결자산 해제 등은 알아서 따라올 것이라는 속셈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이란 강경파인 의회 국가안보외교정책위원회의 에브라힘 아지지 위원장은 “호르무즈해협에서 이란 중심의 새로운 질서를 인정하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면서 “해협은 미국의 위협이 아니라 이란의 방식으로 열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당초 이란의 핵 프로그램 제거를 주요 목표로 내세우고 전쟁을 시작했지만, 이란은 오히려 전쟁 이후 자신들의 전략적 위상이 강화됐다고 보고 있다. 미국이 동맹국들인 걸프국들을 완전하게 보호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란은 사우디, UAE, 카타르 등 걸프국들이 결국 자국과 공존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하고 있는 듯하다. 걸프국들은 원유·가스뿐만 아니라 소비재와 식량 등 물자의 상당 부분을 호르무즈해협에 의존해 이란을 마냥 적대시하기는 어렵다.

예멘 사나에서 후티 반군 지지자들이 7월 17일 사우디 주도 연합군에 반대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아랍어로 된 현수막에는 “모든 사우디 석유 시설은 우리 미사일과 드론의 목표물이다”라고 적혀 있다. 뉴시스 예멘 사나에서 후티 반군 지지자들이 7월 17일 사우디 주도 연합군에 반대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아랍어로 된 현수막에는 “모든 사우디 석유 시설은 우리 미사일과 드론의 목표물이다”라고 적혀 있다. 뉴시스
“트럼프도 영원하지 않다”서방의 일부 중동 전문가들은 이란이 이른바 ‘팍스 이라니카(Pax Iranica·이란 주도의 평화 질서)’ 구축을 추진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했다. 미국이 주도해왔던 중동 질서 대신 이란이 걸프 지역의 안보와 경제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새로운 질서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라즈 짐트 이스라엘 국가안보연구소(INSS) 연구원은 “걸프국들은 지리적 현실에 직면했다”면서 “이란은 여전히 존재하고, 트럼프 대통령 역시 영원히 집권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걸프국들은 결국 이란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 싱크탱크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의 이란 전문가인 카림 사자드푸르 연구원도 “이란은 이번 전쟁에서 이웃 국가를 공격하고 호르무즈해협을 위협하며 유가를 끌어올리는 방식으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는 교훈을 얻었다”고 지적했다.

‘팍스 이라니카’를 추진하려는 이란의 야심이 중동 질서는 물론 세계 경제의 불안정을 키울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홀리 대그레스 미국 워싱턴 근동정책연구소 연구원은 “이란은 미국 내에서 전쟁에 대한 반대 여론이 크고 호르무즈해협 봉쇄가 세계 경제를 압박하고 있다는 점을 이용해 벼랑 끝 전술을 펼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란이 꿈꾸는 ‘팍스 이라니카’가 과연 현실화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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