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의 이목이 온통 인공지능(AI) 전환으로 쏠려 있지만, 그 못지않게 중요한 또 하나의 전환이 있다. 정부가 수립 중인 ‘한국형 녹색 대전환(K-GX)’ 전략은 2035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달성하면서, 그 과정에서 새로운 녹색산업과 시장을 만들겠다는 국가전략이다.
주요국 역시 녹색산업을 국가정책의 핵심으로 삼고 있다. 2050 탄소중립이라는 시한이 있는 국가목표를 달성해야 할 뿐 아니라, 녹색기술은 시장에만 맡겨두면 필요한 속도로 커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기업의 설비, 연구개발, 숙련인력, 공급망은 이미 오래된 산업구조에 맞춰져 있기에 그것만으로 화석연료 중심의 기술경로가 저절로 바뀌지는 않는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핵심 청정에너지 기술 시장이 2023년 약 7000억 달러에서 2035년 2조 달러 이상으로 커져, 세계 원유시장에 맞먹는 규모가 될 수 있다고 전망한다.
따라서 바람직한 녹색산업정책은 지원사업의 나열이 아니라 명확한 미션에서 출발해야 한다. 유럽연합(EU)은 2030년까지 핵심 넷제로 기술 수요의 최소 40%를 역내 제조역량으로 충당하겠다는 목표를 세웠고, 미국은 인플레이션감축법을 통해 청정에너지와 전기차·배터리 공급망의 국내 구축, 양질의 일자리 창출, 에너지 전환지역 투자를 유도했다. 일본은 GX 추진법을 바탕으로 20조 엔 규모의 전환채를 발행해 150조 엔 규모의 민관 GX 투자를 끌어내고 있다. 국가가 먼저 키울 산업과 만들 시장의 방향을 제시하고, 그 목표 아래 에너지와 원료 조달, 지원 및 수요 정책, 투자 위험을 줄일 금융이 함께 설계돼야 한다. 정부가 모든 것을 대신 결정하라는 뜻은 아니다. 민간과 함께 병목을 찾고, 여러 기술과 사업모델을 실험하며, 성과가 확인된 곳으로 자원을 옮기는 학습형 정책역량이 필요하다. 동시에 공적 자금과 인프라 지원의 이익이 일부 기업에만 사유화되지 않도록 감축성과, 양질의 일자리, 지역 편익, 기술 확산 같은 공공적 보상을 제도화해야 한다.
그런데 현재 발의돼 K-GX 전략의 근간이 될 관련 법안들을 보면 우려가 된다. 기후에너지환경부 주관 법안과 산업통상부 주관 법안은 기존 다배출 제조업의 전환을 위해 재정·금융·세제 지원, 규제특례, 인력양성, 정보관리, 전담기관 설치 등을 각각 규정하고 있다. 기후부와 산업부가 유사한 지원체계를 각자 만드는 모양새인데, K-GX가 부처별 지원사업의 묶음으로 흩어지면 한정된 자원 안에서 지원이 중복될 수 있고, 성과 판단과 지원 재배치도 어려워질 뿐 아니라, 기업이 체감하는 정책은 오히려 더 복잡해질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무게중심이다. 현재 법안들의 중심은 새로운 녹색산업 시장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보다, 기존 산업의 탈탄소 비용을 어떻게 지원할 것인가에 쏠려있다. 기존 산업의 전환 지원은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K-GX가 성장전략이 되기 어렵다. 앞으로 세계시장에서 커질 녹색기술과 녹색산업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어떤 기술을 확보하고 어떤 부품·소재·장비 공급망을 국내에 구축할 것인지가 분명해야 한다.
녹색산업은 완제품 기업 혼자 만들 수 없다. 배터리는 소재·부품·장비·재활용 기업이 필요하고, 전력망은 변압기·전선·전력반도체·소프트웨어 기업이 필요하며, 히트펌프와 재생에너지 산업도 수많은 중소·중견 협력기업이 함께 움직여야 한다. 정부 지원은 전환에 참여하는 중소기업의 기술개발, 인증, 설비투자, 인력전환, 해외시장 진출까지 연결돼야 한다. 또한 지원 기업이 만든 성과가 협력사 거래 개선, 지역 일자리, 소비자 부담 완화, 기술 확산으로 이어지도록 조건을 붙여야 한다. 그래야 K-GX가 일부 기업의 비용 보전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녹색 전환 역량을 키우는 전략이 된다.
K-GX는 대기업 지원책에 그칠 수도, 탄소중립을 산업 경쟁력으로 바꾸는 전략이 될 수도 있다. 이를 하나의 전환전략으로 만들려면 법안 간 중복과 충돌을 해소하고, 녹색산업 육성 목표와 공공지원의 사회적 환류 장치를 분명히 해야 한다.
지현영 서울대학교 환경에너지법정책센터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