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해군의 장영실급 잠수함. 해군 제공 |
‘잠수함 인력’ 유지 위한 독일의 노력독일은 승전국의 압박에도 잠수함 명맥을 잇고자 노력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베르사유 조약에 따라 자국 내에서 잠수함 개발 및 건조가 금지되자 네덜란드에 위장 회사를 차리는 것으로 대응했다. 다른 나라 잠수함을 대신 건조해주는 방식으로 기술자들을 유지한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연합국은 더 강한 수를 내놓았다. 독일 내 잠수함 관련 시설을 폐쇄하고 전문 인력은 자기네 나라로 데려간 것이다. 하지만 독일은 울리히 가블러, 프리츠 엡슈너 등 남은 잠수함 기술자를 모아 상선이라도 만들게 하며 조선업 명맥을 유지했다. 1958년 뤼베크 엔지니어링 사무소 개소를 계기로 독일은 잠수함 산업 복원에 나섰다. 미국 등 해외에서 돌아온 왕년의 전문가들은 201형 잠수함이라는 시행착오를 거친 뒤 205형을 개발해 독일과 덴마크에 납품하는 데 성공했다. 이를 바탕으로 독일은 1960년대 후반 209형 잠수함이라는 걸작을 내놓을 수 있었다. 이처럼 두 차례 패전과 이어진 견제에도 독일이 서방 재래식 잠수함 시장을 평정한 비결은 ‘사람’에 있었다. 설계, 건조, 운용 인력을 어떻게든 유지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 유보트. GETTYIMAGES |
결국 한국은 납기 지연이나 결함 이슈 없이 잠수함을 빠르게 전력화해 독일 스승들을 놀라게 했다. 이 같은 성공을 토대로 추진된 것이 ‘장보고-Ⅱ 사업’이다. 209형 후속 모델인 214형 잠수함을 추가로 도입하는 게 뼈대였다. 214형 잠수함은 공기불요추진(AIP) 시스템을 도입한 모델이다. 기존 배터리뿐 아니라 연료전지를 사용한 덕에 수중에서 전력을 직접 생산해 동력에 보탤 수 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한국이 214형 잠수함을 차세대 잠수함으로 선정했을 당시 동형 잠수함을 먼저 도입해 건조 중이던 그리스에서 온갖 기술 결함 논란이 제기됐다는 것이다. 한국 기술자들은 그리스에서 발견된 치명적 설계 결함을 모두 해결한 것은 물론, 먼저 계약한 그리스보다 빨리 잠수함을 만들어 해군에 납품했다. 그리스가 6년을 매달려 잠수함 1척을 겨우 인수했을 때 한국은 이미 잠수함 3척을 전력화한 상태였다.
독일 기술을 완전히 자기화한 한국은 세계 잠수함 시장에서 스승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독일의 지도를 받아 장보고급 9척을 건조한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은 209형을 대폭 개량한 수출형 모델 DSME1400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DSME1400은 인도네시아의 잠수함 도입 및 창정비 사업 공개경쟁 입찰에서 독일 티센크루프 마린 시스템스(TKMS)를 꺾어 세계를 놀라게 했다.
TKMS가 한국 조선업계를 강력한 경쟁자로 인식한 계기는 인도 해군 P75I 잠수함 사업 때인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사업은 90억 달러(약 13조3000억 원)를 투입해 AIP 잠수함 6척을 기술 도입 생산 방식으로 확보하는 대규모 프로젝트였다. 독일, 스페인, 프랑스, 한국 등 여러 나라가 출사표를 던졌지만 한화오션은 대형 선체와 지속 잠항 능력, 강력한 무장을 앞세워 기선을 제압했다. 이 사업은 인도 측이 제시한 무리한 요구에 한화오션이 사업 철수를 결정하며 TKMS가 따냈다. TKMS는 한때 자기네가 가르친 ‘아시아의 후발 주자’가 더 뛰어난 잠수함을 만들고 있음을 절감했다.
이처럼 한국 잠수함 기술이 명가 독일을 위협하는 수준까지 발전한 것은 조선소와 해군 기술자들의 피, 땀, 눈물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우리 기술자들은 40여 년 전 잠수함 불모지에서 돌고래급 잠수정을 만들어냈다. 35년 전 독일에 파견된 기술자들은 잠을 줄여가며 좁고 어두운 잠수함 내부와 도크에서 악전고투했다. 이들의 헌신 덕에 한국은 독일로부터 잠수함을 사들인 여러 나라 중 유일하게 독자적인 잠수함 설계·건조 능력을 보유하게 됐다. 한국은 지난 30년간 거의 매년 잠수함을 건조하며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 그 실력을 유지해왔다.
2022년 북한이 공개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발사 모습. 조선중앙TV 캡처 |
해외 수주에 실패함으로써 현재 확정된 일감은 장영실급 2·3번함이 전부다. 필리핀, 그리스, 사우디아라비아, 페루 등에서 잠수함 수주전이 한창이지만 여의치 않아 보인다. 페루의 잠수함 사업은 공동개발 및 현지 건조 형태라 국내 잠수함 전문 인력과 인프라 유지에 크게 기여하기 어렵다. 그리스와 사우디 사업 수주 전망은 그리 밝지 못한 듯하다. 그런 점에서 올해 하반기 사업자가 선정되는 필리핀 잠수함 사업이 관건이 될 전망이다. 현재 한국은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등과 경합 중인데 이 사업을 수주하지 못하면 국내 잠수함 건조 시설은 장영실급 3번함이 진수될 예정인 2029년부터 텅텅 비게 된다.
한국 잠수함 산업의 일감이 몇 년 안에 동날 우려가 나온 데는 우리 해군 잠수함 프로젝트의 스텝이 꼬인 것도 한몫했다. 당초 한국 해군의 장보고-Ⅲ 배치(Batch)-Ⅱ 사업이 끝나면 바통을 이어받아 배치-Ⅲ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원자력 잠수함 도입 사업이 추진되면서 기존 재래식 잠수함 프로젝트인 배치-Ⅲ 사업을 사실상 대체해버렸다. 원잠은 우리 안보에 필요한 중요한 무기체계임에 분명하다. 그런데 원잠 건조를 시작하려면 미국이 한국에 ‘군사 목적 원자로 사용’과 ‘핵연료 조달·운용’을 승인해야 한다. 또한 이를 위해 한미원자력협정과 국내 관계 법령을 개정해야 한다. 이 문제와 관련해 양국 대표단은 상견례 성격의 접촉만 했을 뿐, 실무 협상은 아직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오늘 당장 미국이 한미원자력협정 개정안에 서명하더라도 한국 원잠이 진수되려면 최소 10년 정도는 소요될 것이다. 한국은 원자력 기술 강국이지만 잠수함용 원자로 제작 경험은 없다. 잠수함이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쓰이는 원자로를 새로 개발하는 난도를 감안하면 10년 안에 한국형 원잠을 진수하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우리처럼 잠수함용 원자로 설계에서부터 시작하는 호주는 ‘2030년대 후반 초도함 건조 착수→2040년대 초반 진수’ 일정에 따라 원잠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2021년 오커스(AUKUS: 미국·영국·호주 3개국 안보협의체) 출범에 따라 미국과 영국이 사실상 떠먹여 주는 식으로 원잠 건조를 준비하고 있음에도 말이다.
한국이 1980년대에 첫 개발한 돌고래급 잠수정. 해군 제공 |
잠수함 전력 강화는 비단 K-방산의 경쟁력 유지뿐 아니라, 우리 안보를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북한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전력 강화 등 새로운 위협에 맞서려면 잠수함 수량 자체를 늘리는 동시에 원잠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만약 원잠 도입이 더 지체될 것 같다면 기존에 검증된 재래식 잠수함이라도 추가로 확보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를 위해 오랫동안 그대로였던 해군 정원(定員)을 늘리고 건함 예산도 크게 증액하는 게 첫걸음이다.
한국 해군의 장영실급 잠수함. 해군 제공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 유보트. GETTYIMAGES
2022년 북한이 공개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발사 모습. 조선중앙TV 캡처
한국이 1980년대에 첫 개발한 돌고래급 잠수정. 해군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