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매수여력 바닥…매도 물량도 말랐다
디레버리징 종료·숏커버링에 급등폭 확대
추세 반등은 아직…W자형 박스권 전망도
7월 들어 힘을 못 쓰던 코스피 지수가 31일 장중 17% 넘게 튀어 오르며 역대 최대 상승률을 기록했다. 투자자들은 이번 반등이 ‘추세 전환의 신호탄’이라는 낙관적 전망을 펼치지만, 시장 전문가들은 오히려 약해진 국내 증시의 체력이 드러난 결과라고 진단했다. 외국인 수급에 따라 급등락하는 취약한 구조가 확인된 만큼, 이번 반등이 ‘데드캣 바운스(Dead Cat Bounce·급락 후 일시적 반등)’에 그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코스피가 장중 6500선을 돌파한 31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전광판에 코스피 지수가 나타나고 있다. 코스피가 장중 17% 이상 오른 것은 역대 최대 수준이다./뉴스1 제공.거센 외국인 매수세에 ‘갭상승’한 코스피
31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 지수는 전 거래일 대비 1001.89(17.91%) 오른 6595.45에 마감했다. 시가총액이 1000조원을 넘는 SK하이닉스를 비롯해 SK스퀘어, 삼성전기가 상한가(일일 가격 제한 폭 최상단)에 마감했다. 삼성전자도 28% 급등해 26만원선을 회복했다.
이날 증시는 ‘갭상승’ 출발했다. 장 초반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시가총액 상위 종목에 ‘정적 변동성완화장치(VI)’가 발동됐다. 2분 동안 단일가 매매가 풀리자마자 5600선에 있던 지수는 곧바로 6600선으로 1000포인트 성큼 올라섰다.
외국인의 매수세가 거셌다. 외국인은 장 시작 2분여 만에 1조6000억원을 순매수했다. 이날 하루 동안 외국인이 산 금액은 7조1800억원으로, 역대 순매수 1위에 해당한다. 개인은 이날 8조2000억원을 순매도하며 역대 최대 폭의 순매도세를 보여줬다.
바닥난 증시 체력…‘빈집’ 증시에 외국인 숏커버링까지
전날 밤 미국 증시가 상승 마감하면서 투자 심리가 회복됐다. 오픈AI 출신 연구원 레오폴드 아셴브레너(Leopold Aschenbrenner)가 설립한 인공지능(AI) 전문 헤지펀드 시추에이셔널 어웨어니스(Situational Awareness)가 마진콜에 직면하자 씨타델(Citadel)이 160억달러 규모의 주식 포지션을 인수했다.
이에 따라 시장에서는 AI 반도체주를 중심으로 한 강제 청산(디레버리징)이 사실상 마무리됐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필라델피아반도체지수(SOX)는 8.19% 급등하며 2025년 4월 9일(18.73%) 이후 1년 3개월 만에 최대 상승 폭을 기록했다.
외국인의 숏커버링(공매도 포지션 청산)도 급반등의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자산운용사 임원은 “정부가 31일부터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규제를 시행한다고 예고하면서 외국인 헤지펀드와 글로벌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시행 전까지 수십조원 규모의 강제 매도 물량이 출회될 것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며 선제적 공매도 포지션을 형성했고 증시 낙폭이 과도하게 확대됐다”며 “규제 시행일인 이날부터는 디레버리징이 사실상 마무리됐다는 판단이 확산되면서 공매도 포지션을 청산하는 숏커버링과 외국인 매수세가 맞물려 급반등이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매물 공백은 상승 폭을 키웠다. 이채원 라이프자산운용 의장은 “최근 급락 과정에서 장중 18% 하락을 기록하는 등 손절매와 반대매매에 따른 이른바 ‘약한 손(Weak hands)’의 매물이 대부분 소화되면서 시장에 남은 매도 대기 물량이 크게 줄었다”며 “이후 숏커버링과 외국인 매수세가 유입됐지만 이를 받아줄 매물이 부족해 매수호가가 빠르게 높아졌고, 그 결과 주가가 큰 폭으로 뛰었다”고 설명했다.
밸류에이션(기업 실적 대비 주가 수준) 매력도 높았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PER)은 3~4배 수준까지 하락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보다도 낮은 수준으로, 극단적인 저평가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PER은 주가를 주당순이익(EPS)으로 나눈 값으로, 기업의 이익 대비 주가가 얼마나 비싼지 또는 싼지를 나타내는 지표다. PER이 3배라는 것은 현재 예상되는 이익이 3년간 유지되면 시가총액에 해당하는 이익을 벌어들일 수 있는 수준이라는 뜻이다.
추세적 반등 단정은 이르다
전문가들은 이날 급등만으로 증시가 본격적인 상승 국면에 진입했다고 판단하기에는 이르다고 입을 모은다. 단기 급락에 따른 기술적 반등과 저가 매수세가 맞물린 결과일 뿐, 본격적인 추세 전환 여부는 추가 확인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또 다른 자산운용사 임원은 “연초 이후(YTD) 수익률이 50% 가까이 하락한 만큼 낙폭의 절반가량을 되돌리는 기술적 반등이 나타났을 가능성이 있다”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밸류에이션이 극단적인 저평가 구간에 진입하면서 가치 투자자들의 매수세가 유입될 경우 공매도 포지션을 유지할 실익이 줄어든다. 이에 따라 숏 포지션을 정리하려는 움직임도 반등 폭을 키운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 의장은 “이번 반등이 일시적인 기술적 반등인지, 추세적인 상승장의 출발점인지는 아직 단정하기 어렵다”며 “결국 핵심은 반도체 업황이다. 시장은 높은 영업이익률이 지속될 수 있을지 의문을 갖고 있는 만큼 앞으로 6개월간 2028년 이후에도 반도체 병목 현상이 이어질지 여부를 확인하면서 투자 판단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증시 급등락으로 시장이 신뢰를 잃으면서 ‘W자형’ 박스권 장세를 이어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증시 급등 과정에서는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와 초단기 매매가 확산되며 단기 차익을 노리는 투자 문화가 자리 잡았고, 급락 국면에서는 단기간에 큰 손실을 경험한 투자자가 늘면서 주식을 장기 투자 대상보다 ‘위험자산’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해졌다는 것이다. 결국 지수가 특정 수준에 도달하면 매도세가 쏟아지며 상승을 제한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또 다른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최근 개인 투자자들은 초단타와 레버리지 투자를 통해 시장에 진입한 경우가 많아 장기 투자 성향이 약하다”며 “현재 고점에서 물린 개인 투자자들은 지수가 전고점인 8000~9000선에 근접하면 차익실현 매물을 쏟아내며 상승세를 제약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날 개인 투자자는 8조원의 매물을 쏟아내며 차익 실현에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