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바지 출근을 비롯해 복장 자율화 논쟁, 백화점이나 지하로 연결된 쇼핑몰에서 점심을 보내는 '몰캉스'까지 새로운 직장 문화가 확산하는 모습이다.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도 반바지 출근을 둘러싼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등 폭염이 직장 풍경 전반을 바꾸고 있다.
■ "핫팬츠에 크록스, 오프숄더 상의?"…폭염이 불붙인 출근복 논쟁
이해를 돕기 위한 AI 생성 이미지폭염의 영향으로 직장인들의 출근 복장이 눈에 띄게 달라지고 있다.반바지와 샌들, 크록스 등 시원한 옷차림으로 출근하는 직장인이 늘어난 것이다.
이에 회사에서는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는지를 두고 온라인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최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회사 출근복장 어디까지 OK?'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글쓴이는 "다시 서울로 출근하기 시작했는데 내가 이제 꼰대가 된 건지 예전에는 '저걸 입고 회사에 간다고?' 싶었던 복장들이 많이 보인다"며 "요즘은 어디까지 허용되는 분위기인지 궁금하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시대가 바뀐 만큼 나 역시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며 자신의 세대에서는 다소 파격적으로 여겨졌지만 이제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 복장으로 무릎 위 데님스커트와 너무 짧지 않은 반바지를 꼽았다.
다만 연일 이어지는 폭염으로 가벼운 옷차림이 늘어난 점은 이해하면서도, 실제 회사 건물에서 본 일부 복장은 여전히 낯설었다고 했다.
글쓴이가 놀랐다고 밝힌 복장은 호피무늬 쉬폰 미니스커트와 어깨가 모두 드러나는 오프숄더 상의, 슬리퍼와 크록스, 지나치게 짧은 핫팬츠, 나시, 모자 등이었다.
작성자는 "홍대나 패션업계처럼 자유로운 분위기의 회사라면 이해할 수 있지만 일반 사무직 회사에서는 조금 의아했다"며 "옷에도 엄연히 TPO(시간·장소·상황)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회사 건물이 모두 사무실인 빌딩인데 실제로 이런 복장을 많이 봤다"며 "혼자 속으로 '요즘은 정말 많이 달라졌구나'라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남의 복장에 관심꺼라" vs "이건 좀 아니다"
네이트판 캡처해당 글은 8만 회가 넘는 조회 수를 기록하며 직장인들의 관심을 모았고, 댓글에서도 다양한 의견이 이어졌다.많은 누리꾼들은 최근 이어지는 폭염으로 출근 복장이 한층 자유로워진 데에는 공감하면서도 회사의 업종과 조직 문화, 업무 특성에 따라 기준은 달라질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한 누리꾼은 "회사 업종과 사내 분위기에 따라 다르겠지만 일반 사무 오피스라면 핫팬츠나 어깨가 드러나는 상의, 모자는 아닌 것 같다"며 "슬리퍼나 크록스, 뮬, 샌들은 출근 후 사무실에서 실내용으로 갈아 신는다면 문제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또 다른 누리꾼은 "누가 봐도 '이건 좀 아니다' 싶은 복장은 있는 것"이라며 "출퇴근 시간에 공공기관이나 삼성, SK하이닉스 같은 대기업 앞을 보면 본문에서 언급한 복장으로 다니는 직원은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반면 "사무실 빌딩에는 다양한 업종의 회사가 입주해 있는 만큼 우리 회사 직원이 아니라면 그냥 그러려니 하면 된다"며 회사마다 문화가 다르다는 의견도 나왔다.
작성자를 향한 비판도 적지 않았다.
한 누리꾼은 "회사 대표도 아닌데 왜 남의 복장에 신경을 쓰느냐"며 "회사에서 아무도 문제 삼지 않는데 인터넷에서 허용 여부를 따질 필요가 없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누리꾼도 "같은 월급쟁이라면 다른 사람 복장에는 신경을 끄는 것이 맞다"며 "회사마다 복장 규정과 분위기가 모두 다르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판단할 문제는 아니다"라고 했다.
논란이 이어지자 작성자는 추가 글을 올리고 특정 세대를 비판하려는 의도는 아니었다고 강조했다.
작성자는 "인터넷 커뮤니티는 사람 사는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 아니냐"며 "요즘 사람들의 생각이 궁금해서 올린 글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또 "세대교체가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 신기했을 뿐"이라며 "오히려 MZ세대 문화의 장점도 많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예전에는 혼자 칼퇴하면 눈치를 많이 봤는데 지금은 다 같이 정시에 퇴근하는 분위기가 돼 오히려 좋다"며 "길을 가다가 '저 나무 이름이 뭘까' 하고 궁금해하는 정도의 가벼운 호기심이었다"고 했다.
작성자는 또 "참고로 회사는 서울 가산디지털단지에 있으며 건물마다 입주한 회사의 업종이 다양하다"고 덧붙였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TV조선과의 인터뷰에서 출근 복장의 기준 역시 회사의 문화와 업무 환경에 따라 다양하게 변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폭염 속 시원한 복장을 원하는 직장인들이 늘어나면서 복장 자율화가 확산하는 가운데서도 업무 특성과 회사 문화, 때와 장소를 고려한 출근 복장에 대한 인식 차이가 여전히 존재한다"고도 했다.
결국 업무 특성과 조직 문화, 대외 업무 여부 등을 다양하게 고려한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 "밥 먹고 백화점?"…폭염이 바꾼 점심시간 '몰캉스' 열풍
직장인들의 점심 시간 풍경도 빠르게 달라지고 있다.
점심 메뉴나 맛집보다 '얼마나 덜 걷는지', '실내에서 이동이 가능한지', '냉방이 잘되는지'가 식사 장소를 결정하는 새로운 기준으로 떠오르고 있다.
과거에는 점심시간마다 회사 밖 맛집을 찾아 나서던 직장인들이 이제는 구내식당이나 대형 쇼핑몰, 지하상가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
식사와 휴식, 여가를 한 번에 해결하는 이른바 '몰캉스(쇼핑몰+바캉스)'가 올여름 직장인들의 새로운 점심 문화로 자리 잡는 모습이다.
실제로 여의도 직장인들에게는 지하철역에서 IFC몰을 거쳐 더현대 서울 백화점까지 이어지는 지하 통로는 폭염을 피하면서 식사와 휴식을 해결할 수 있는 곳이 대표적인 동선으로 꼽힌다.
잠실역 일대도 상황은 비슷하다.
롯데월드몰과 롯데백화점 잠실점은 지하철 2·8호선 잠실역과 연결돼 있어 점심시간마다 직장인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몰캉스의 장점은 단순히 시원한 공간에서 식사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식사 후 쇼핑몰을 산책하거나 팝업스토어를 둘러보고, 전시를 구경하며 짧은 휴식을 취할 수 있다는 점이 직장인들의 발길을 붙잡고 있다.
반면 평소 점심시간이면 직장인과 관광객으로 붐비던 서울 시청 주변과 광화문, 종로와 서촌 일대는 예년보다 유동 인구가 눈에 띄게 줄었다.
기록적인 폭염이 이어지면서 직장인들의 점심시간 선택 기준도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맛집을 찾아 이동하기보다 냉방이 잘되는 실내에서 식사와 휴식, 여가를 함께 해결하는 '몰캉스'가 올여름 직장인들의 새로운 일상으로 자리 잡고 있다.
■ "더는 못 참겠다"…폭염에 남성들, 반바지 출근 늘었다
티비조선 방송화면 캡처남성 직장인들의 출근 복장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과거에는 퇴근 후나 휴일에 주로 입던 반바지가 이제는 셔츠와 재킷을 매치한 '출근복'으로 자리 잡고 있다.
기업들의 복장 자율화와 맞물리면서 패션업계도 출퇴근용 반바지 제품을 잇달아 선보이고 있다.
7일 패션업계에 따르면 올여름 폭염이 이어지면서 남성 반바지 수요가 크게 늘었다.
LF몰의 지난달 '남자 반바지' 검색량은 전달보다 약 30% 증가했다.
삼성물산 패션부문도 남성 반바지 판매의 현재까지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약 30% 증가했다.
2016년부터 삼성전자는 남성 직원의 반바지 출근을 허용했고, LG전자는 2018년, 현대자동차는 2019년부터 복장 자율화를 시행했다.
계속되는 폭염과 기업들의 복장 자율화가 맞물리면서 남성 직장인의 출근 복장도 변화하면서 단정한 디자인의 반바지가 '출근복'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인다.
■ "반바지? 남성 다리털 먼저 떠올라"…일본서도 시민들 '갑론을박'
BBC웹사이트 캡처기록적인 폭염이 이어지는 건 일본도 마찬가지다.도쿄도는 올여름 폭염에 대응하기 위해 공무원들에게 반소매 셔츠와 반바지, 운동화 등 보다 가벼운 복장으로 근무할 수 있도록 했다.
이번 조치는 일본 정부가 여름철 에너지 절약을 위해 시행해 온 '쿨비즈(Cool Biz)' 캠페인을 한층 확대한 것이다.
기존에는 재킷과 넥타이를 착용하지 않는 수준이었다면, 올해는 반바지까지 허용 범위를 넓혔다.
도쿄도 환경국 기후변화대책과 와타나베 노보루 과장은 "기존 복장 외에도 폴로셔츠와 티셔츠, 청바지, 운동화는 물론 업무 내용에 따라 반바지 역시 선택할 수 있도록 권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시원한 근무 환경을 만들기 위해 재택근무와 원격근무, 조기 출근도 함께 장려하고 있다"며 "일상에서도 더위를 조금이나마 덜 느낄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라고 외신에 전했다.
그런데 일본 시민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일부는 "폭염인 만큼 실용적인 선택"이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부동산업계 종사자 코이케 사치에는 "티셔츠 정도는 괜찮지만 반바지는 남성들의 다리털이 먼저 떠오른다"며 "개인적으로는 청결해 보이지 않는 느낌이 있어서 어느 정도는 자제했으면 좋겠다"고 외신에 전했다.
현재 일본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폭염인데 반바지 정도는 당연히 허용해야 한다", "업무 효율이 올라간다면 문제없다"는 의견과 "공무원은 신뢰감을 주는 복장이 필요하다", "민원인을 상대하는 직업 특성도 고려해야 한다"는 반응이 맞서고 있다.
■ 무조건 회사로?…직장인 44% "근무방식 조정 못 받아"
서울과 경기도 곳곳에 폭염중대경보가 내려진 지난 4일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수도권기상청에서 예보관이 체감온도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연합뉴스기록적인 폭염이 이어지는 가운데 직장인 10명 중 4명 이상은 재택근무나 출퇴근 시간 조정 등 별다른 근무 방식 변경 없이 평소처럼 출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특히 비정규직일수록 폭염 등 자연재해 상황에서도 근무 조정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직장갑질119가 26일 공개한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직장인 1000명 가운데 43.8%는 등 자연재해 상황에서도 재택근무나 시차 출퇴근 등 근무 방식 변경이 보장되지 않는다고 답했다.
비정규직의 경우 이 같은 응답 비율은 49.8%로 정규직(39.8%)보다 10%포인트 높았다.
비정규직 가운데서는 일용직(58.5%), 파견·용역·사내하청(58.3%), 프리랜서·특수고용 노동자(55.3%)는 절반 이상이 폭염 등 재난 상황에서도 근무 조정을 받지 못한다고 답했다.
여성(53.4%), 비사무직(50.6%), 일반 사원급(52.4%), 숙박·음식점업 종사자(56.7%), 저임금 노동자와 소규모 사업장 근무자 역시 근무 방식 변경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응답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정부가 폭염이나 집중호우 등으로 재택근무와 시차 출퇴근을 권고한 상황에서도 직장인 38.4%는 회사 지시에 따라 평소처럼 출근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폭염 등 자연재해 상황에서 지각했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경험했거나 이를 목격했다는 응답도 적지 않았다.
응답자의 15.3%는 자연재해로 지각한 뒤 괴롭힘이나 인사상 불이익을 경험했거나 동료가 그런 일을 겪는 것을 봤다고 답했다.
직장갑질119는 "직장인 7명 중 1명 이상이 불가항력적인 재난 상황에서도 지각을 이유로 불이익을 경험하거나 목격한 셈"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현재 정부가 권고하는 재택근무와 시차 출퇴근은 강제력이 없고, 일반 노동자를 대상으로 자연재해 시 지각·결근 처리 기준을 규정한 법도 없어 노동자들이 불이익에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산업안전보건법상 작업중지권에서 나오는 '급박한 위험'의 기준이 모호하고, 작업중지권을 행사한 노동자에게 불이익을 준 사업주를 처벌하는 규정도 부족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주장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