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닮은 숏 포지션…커지는 엔 캐리 청산 우려
엔 캐리 자금은 줄었다…“시장 충격은 제한적”
30년 만의 미·일 공조에 엔화가 급격히 강세로 돌아섰다. 엔화 하락에 베팅한 숏 포지션이 2024년 7월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 직전 수준까지 늘어나면서 금융시장 전반으로 충격이 퍼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다만 일각에서는 엔 캐리 트레이드 자금 자체는 당시보다 적어 엔화가 다시 강세로 돌아서더라도 시장 충격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7일 블룸버그(Bloomberg)에 따르면, 이날 오후 달러·엔 환율은 158.4엔 안팎에서 거래됐다. 미국과 일본의 공동 개입 직전인 7월 말 164엔 부근까지 올랐던 환율은 개입 이후 156엔대로 떨어졌지만, 이후 상승하며 낙폭의 절반가량을 만회했다.
美·日 공조로 엔화 단기 급등
미국과 일본의 공조 개입 이후 엔화는 급격한 강세를 보였다. 양국의 환율 공조 개입은 1998년 이후 30년 만이다. 뉴욕연방은행은 지난달 31일 미국 재무부를 대신해 달러를 매도하고 엔화를 매수하는 거래를 집행했고, 일본은행(BOJ)도 이틀 연속 엔화 매수에 나섰다. 신한투자증권에 따르면 이번 개입 규모는 약 13조7000억엔이다.
양국은 동시에 FIMA(Foreign and International Monetary Authorities) 레포 기구 한도 확대도 검토하고 있다. FIMA는 각국 외환당국이 뉴욕연은에 예치한 미국 국채를 담보로 최대 600억달러(약 9조5000억엔)를 조달할 수 있는 제도다. 시장에서는 이 정도 규모면 달러·엔 환율의 추세를 바꾸기에는 부족하지만 단기적으로는 엔화 약세를 완화하는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일본은 지난 4월 말과 5월 초 엔화 방어를 위해 약 700억달러를 투입한 바 있다.
미국의 이례적인 개입은 미국 국채시장의 안정을 위한 조치로 분석된다. 차영후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일본은 약 1조1400억달러의 미국 국채를 보유한 최대 해외 보유국”이라며 “엔화 방어 과정에서 미국 국채 매각이 발생하면 금리에 부담이 되는 만큼, 미국 국채를 팔지 않고 달러를 조달할 수 있는 FIMA 레포 한도 확대 필요성을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2024년 닮은 숏 포지션… 커지는 엔 캐리 청산 우려
시장에서 우려하는 대목은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이다. 엔화 약세가 지속되고 환율 변동성이 낮을수록 낮은 금리의 엔화를 빌려 해외 위험자산에 투자하는 엔 캐리 트레이드의 매력은 커진다. 실제 달러·엔 환율이 160엔 안팎을 유지했던 7월 초 골드만삭스는 “20여 년 만에 캐리 트레이드 환경이 가장 우호적”이라며 엔화를 가장 유망한 조달 통화로 제시했다. 엔화 가치는 40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진 반면 미 국채 금리는 고점을 유지하면서 양국 간 금리 격차가 크게 벌어진 탓이다.
특히 엔화 숏 포지션이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 당시와 유사한 규모로 쌓여 있다는 점이 우려 요인이다. 숏 포지션은 엔화가 하락할 것에 베팅한 투자자를 의미한다. 엔화가 강세로 돌아서면 투자자들이 숏 포지션을 정리하기 위해 글로벌 위험자산을 매도할 유인이 커진다. 실제로 엔 캐리 청산이 일어난 2024년 당시에는 7월 18만계약 순매도였던 포지션이 5주만에 2만계약 순매수로 뒤집혔고, 나스닥 지수는 3.43%, 코스피는 8.77% 급락했다.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 투자자별 포지션 보고서(COT)에 따르면, 지난달 28일 기준 엔화에 대한 투기적(비상업용) 순포지션은 마이너스 16만3400계약이다. 숏이 롱(매수)을 크게 웃돈다. 통화선물 1계약 단위가 1250만엔이라는 점을 대입하면, 현재 시장에 쌓인 엔화 순매도 포지션은 이미 2조엔을 넘어섰다. 엔 캐리 트레이드가 청산되기 전인 2024년 7월 초 순매도 포지션 2조3000억엔과 유사하다.
엔 캐리 청산 가능성 낮은 이유는
다만 증시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캐리 트레이드 자금이 당시보다 적기 때문이다. 하건형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2024년 충격이 일본 내 자산시장뿐 아니라 전방위로 번진 이유는 환율 변화보다 레버리지 청산과 변동성 급등에 따른 기계적 디레버리징이 겹친 결과”라며 “2026년에는 일본 금융시장의 레버리지가 미미한 데다, 엔화 조달 자금이 해외 위험자산에 들어가 있지 않아 일본에서 시작된 매도가 다른 시장 매도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본 결제성 자금 제외 기타투자 자산과 부채./CEIC 신한투자증권 제공.신한투자증권에 따르면 2024년 당시 결제성 자금 제외 기준 기타투자 부채는 2월 61조8000억엔으로 단기 정점을 기록했다. 그러나 2026년 5월 해당 항목은 1조7000억엔 순감해 정점 대비 60조엔 넘게 줄었다. 외국인이 일본에서 엔화를 빌려 해외 자산에 투자한 자금 규모가 2024년 당시보다 대폭 축소됐다는 뜻이다.
특히 엔화 자체가 강세 추세로 돌아설지도 미지수다. 이진경 신한투자증권 이코노미스트는 “과거 사례를 보면 대규모 개입에도 구조적 금리 요인의 변화가 뒷받침되지 않는 한 6개월 내 효과가 소진되고 엔화는 다시 신저점을 향해 움직였다”며 “추세적 전환을 위해서는 BOJ가 추가 금리 인상과 연준 긴축 완화에 따른 금리차 축소가 필요하다”고 전망했다. 실제로 달러·엔 환율은 양국 개입 이후 3일까지 하락했으나, 4일부터 3거래일 연속 오름세다.
캐리 트레이드의 조달 통화가 엔화에서 다변화된 점도 엔 캐리 자금 감소의 배경으로 꼽힌다. 다니엘 토븐 시티그룹 전략가는 블룸버그 인터뷰에서 “모든 자금이 엔화로 조달되던 2024년과는 상황이 다르다”고 평가했다. 골드만삭스도 지난 7월 말 보고서에서 엔화 강세 가능성을 고려해 스위스프랑, 유로, 캐나다달러 등으로 조달 통화를 분산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