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7월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표현의 자유를 처벌하는 나라, 이대로 괜찮은가’ 온라인 입틀막법 폐지 촉구 토론회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photo 뉴시스어릴 때 이야기다. 왜 제사를 지낼 때 절을 두 번 해야 하는지 아버지께 물어본 적이 있다. 순수하게 궁금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시원한 대답이 아니라 얼얼한 핀잔이었다. 아직 컴퓨터도 제대로 다룰 줄 모르던 나이였던지라, 혼자 의문을 풀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그렇다고 반복해서 물어보면 어떻게 될지는 뻔했다. 그 뒤로 제사는 조상님에 대한 감사함이 아니라 의문으로 가득한 행사가 되었다. 곧 의문조차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관심이 사라졌고, 10여년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부터는 아예 모든 제사에 참여하지 않기로 했다. 마침 외가가 가톨릭 집안이어서 신앙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물론 내가 마지막으로 성당에 나간 것은 중학생 때,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이다.
만약 단 한 사람이라도 두 번 절하는 것의 역사와 의미에 대해 시원하게 알려줬더라면, 나도 제사에 좀 더 관심을 가졌을지도 모르겠다. 사람은 너무 모르는 것과 너무 잘 아는 것 사이에서 흥미를 느끼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성당에 나가지는 않지만 가톨릭을 포함한 기독교 자체는 지금까지 공부하고 있다. 통념과 다르게, 기독교는 수많은 의문에 답을 내놓기 위해 고민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서기 2세기에서 3세기 즈음, 고대 기독교인은 로마 시민들의 의구심에 이성적으로 답하기 위해 노력했다. 당시 로마제국, 특히 그리스에서는 뛰어난 철학자들이 기독교의 정당성을 흔들었고, 심지어 같은 기독교인끼리도 성경 해석을 두고 다투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사람들의 의문에 불성실하게 대응할 수 없었을 것이다. 충분히 답하지 못하면 순식간에 외면당할 테니까.
그래서 고대 기독교인은 그리스 철학을 받아들여서 신학을 정립했다. 왜 여러 신이 아니라 유일신이 존재하는지, 왜 유일신을 믿어야 하는지를 두고 경쟁자들과 논쟁하며 기독교를 정교한 종교로 다듬었다. 대표적인 변론이 '최초의 원인'이다. 모든 것에 원인이 있다면, 어딘가에는 원인들의 원인이 있어야만 한다. 그 첫 번째가 유일신이라는 이야기다. 시간이 흐르면서 고대 신학의 권위는 점차 무너졌지만, 당시에는 논쟁의 최전선에서 도출된 결과물이었다. 이 최전선에서 활약한 신학자들은 지금도 '교부', 즉 초기 교회의 아버지라 불리며 존경받는다.
박근혜·박정희 패륜 그림은 가능?
어쩌면 요즘 청소년과 청년에게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존경심이 부족해 보이는 것은 고대 교부와 같은 성실한 '노무현 변론가'들이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평가가 엇갈릴 수밖에 없는 현대 정치인이다. 기성 진보주의자에게는 큰 족적을 남긴 인물일지 몰라도,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저 실패한 정치인 중 하나로 보일 수 있다. 실제로 노 전 대통령은 부동산 불로소득을 잡겠다면서 오히려 부동산 가격을 폭등시켰고, 비정규직 차별을 막겠다면서 비정규직을 양산했다. 민간 보험사가 실손의료보험을 팔 수 있게 해서 의사와 간호사를 과로시킨 것도 노 전 대통령이고, 길목마다 박사 학위자가 있는 학력 인플레를 막지 못한 것도 노 전 대통령이다. 고졸자 차별을 사회문제로 끌어올렸지만 해결하지 못한 것, 치솟는 등록금과 사교육비를 막지 못한 것 역시 노 전 대통령이다. 의도는 있었지만, 결과가 없었다.
그래서 노 전 대통령은 비극을 겪기 전까지 기성 진보주의자들로부터도 거세게 공격받았다. 보수가 북한에 관대하고 반시장적이라며 노무현 대통령을 비난했다면, 기성 진보는 노 전 대통령이 반노동, 친기업, 반민족, 친서방 정책을 편다며 힐난했다. 지금 '노무현 정신'을 외치는 진보 단체와 언론 상당수도 노 전 대통령을 외면했던 곳이다.
물론 노 전 대통령은 여러 업적도 남겼다. 호주제를 폐지했고, 국방비와 복지 예산을 크게 늘렸다. 개인회생제도를 도입해 많은 채무자를 살렸으며, 코로나 팬데믹 때 활약한 질병관리본부를 세운 것도 그다. 경제학자들에게 매우 효율적인 소득재분배 정책으로 평가받는 근로장려금도 참여정부 시절 법적 기반이 마련되어서 이명박 대통령 집권 초에 곧바로 시행될 수 있었다.
하지만 후임자인 이명박 전 대통령도 뚜렷한 성과를 이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공공기관이 고졸자를 채용하도록 유도했고, 최근 학부모로부터 주목받는 충북반도체고등학교 등 마이스터 고등학교를 도입했다. 또한 EBS와 수능 간 연계를 강화해 사교육비를 억제했고, 협동조합법을 제정해 사회적 경제 영역을 크게 확대했다. 한국장학재단을 설립하고 취업 후 상환 제도를 도입해 부족하게나마 교육받을 기회를 확대했다. 신자유주의적이라는 평가와 다르게 복지 예산도 매년 늘렸다.
그럼에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극에 연루되었다는 등 여러 이유로,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조롱과 증오는 수위 높게 반복되었다. 이 전 대통령 얼굴에 쥐를 합성한 이미지는 지금도 검색된다. 이런 행동이 일베의 노무현 조롱과 어디가 다를까. 노 전 대통령이 고인이라서 다르다고 한다면, 박정희 전 대통령은 어떨까. 관점에 따라서 박정희 전 대통령과 그 일가는 노무현 전 대통령 이상으로 큰 비극을 겪었다. 그런 박정희 전 대통령 일가를 기성 진보는 마음껏 모욕해 왔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박정희 전 대통령을 출산하는, 옛 윤리관으로 보면 패륜적인 그림도 표현의 자유라며 옹호했었다. 고인을 모독하는 것이 도덕적 잘못이라면, 이 고인과 저 고인의 차이는 무엇일까. 어떤 고인은 모독해도 된다면, 그 기준이 무엇일까. 연쇄살인마에게도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는데, 왜 특정 정치인에게는 없을까.
이 논리 공백에 대해 이성적으로 설명할 줄 아는 기성 진보 정치인은 본 적 없다. '상식이다' '당연하다' 같은 요즘 시대에 통하지 않는 변론만 반복될 뿐이다. 이런 날것 그대로의 부조리를,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개인 서사에 완전히 빠져들지 않은 사람들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혐오표현 처벌의 이중잣대
표현을 처벌하는 일은 정파적으로 변질되기 쉽다.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혐오표현을 막아야 한다고 하지만, 약자와 강자 역시 상황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다. 삼성그룹의 오너도 트럼프 행정부나 사우디 왕세자 앞에서는 철저한 약자다. 급진적인 페미니스트는 같은 소득, 같은 학력을 갖고 있더라도 남자를 여자보다 강자로 여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청년기에 아버지만 잃은 남성이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30대가 되기도 전에 부모의 암살을 겪은 여성이다. 관점에 따라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상대적 강자일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약자와 강자에 절대적인 기준이 없기 때문에, 혐오표현 처벌은 악용될 위험이 크다. 훗날 사회 분위기가 보수 우위로 돌아서면, 그 기준이 어떻게 바뀔지 알 수 없다. 그때 기성 진보가 표현의 자유를 다시 꺼내 봐야 설득력이 없을 것이다. 정보로 가득한 시대에 노무현 전 대통령을 변론하려면, 고대 교부보다 지적으로 성실해져야 한다. 가부장적으로 의문을 억누를 수 있는 시대는 진짜 민주화 유공자들이 끝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