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교도소에서 누가 돌아왔게… 돌연 절필했던 '시인'이 돌아왔다

[기원석 시인 겸 교도관]
산문집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거짓말’
등단 직후 절필 결심… 교정공무원 입직
수형자 상담하며 인간의 변화 가능성 고민
‘시적 공간’ 교도소에서 다시 시작한 詩作
기원석 시인이 지난달 31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에서 본보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박지연 인턴기자 기원석 시인이 지난달 31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에서 본보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박지연 인턴기자

시인, 교도관, 상담사. 나란히 놓기도 생경한 직업 셋을 동시에 소화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 등단 직후 시를 포기하고 교도소로 향한 젊은 시인 기원석(36·필명)이다.

그는 시인이 된 다음 공무원 시험을 쳐 교도관이 됐고, 그곳에서 심리치료 명령을 받은 수형자 상담을 시작했다. 교도소에서 일하며 첫 시집을 냈고, 최근에는 상담사로서의 경험을 토대로 산문집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거짓말’(달 발행)을 펴냈다.

지그재그 행로가 신기해 보였지만, 그는 오히려 교도소를 ‘시적 공간’으로 표현한다. “삶의 서사가 많이 응축되어 있는 순간을 저는 시적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지난달 31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에서 기원석 시인을 만났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거짓말·기원석 지음·달 발행·220쪽·1만6,800원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거짓말·기원석 지음·달 발행·220쪽·1만6,800원

“서른이 되던 해, 나는 내 삶에게 기소되었다. 삶이 나에게 추방형을 선고했다. (…) 몇 안 되는 원고 청탁을 거절하고, 핸드폰 번호를 바꿨다. 아끼던 책들을 내다버렸다. 시 같은 건 다시는 읽지도 쓰지도 않겠다고 다짐했다. 등단한 지 육 개월도 지나기 전이었다.”

그의 산문집은 이렇게 시작한다. 2018년 시인수첩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한 직후, 시인은 시와 절연했다. 고려대 국문과 학사, 석사를 졸업하고 현대시 공부를 이어가려 동 대학원 박사과정 입학을 앞두고 있었다. 그러나 충동적으로, 학교에 돌아가지 않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때에는 내가 시를 잘 쓰는 것만의 문제가 아니구나, 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시인은 말했다. 문단에 입성하자마자 얼마나 좁은 판인지를 깨달았다. 영향력 있는 이들의 ‘술자리에 오면 끌어 주겠다’는 식의 말이 판쳤다. ‘작품보다 사회생활이나 인맥이 더 중요한가’ 회의감이 밀려왔다. 등단에 대한 열망을 너나없이 공유했기 때문인지, 자신이 먼저 등단하자 친구들이 하나둘 연락을 끊은 것도 견디기 힘들었다. 그러잖아도 문단 내 성폭력과 미투 운동으로 문단이 흔들거리던 시기였다. 시에 대한 사랑 하나로 걸어온 길인데, 언제부턴가 시를 떠올리면 지긋지긋한 감정이 따라붙었다. 그만두겠다는 결심이 섰다.

절필을 하려니 서른의 나이에 남은 게 없었다. 시 공부며 등단이며 그간 쌓아온 것이 모두 무용해졌다. 본업을 갖고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으로 공무원 수험서부터 샀다. “너무 제 앞가림을 못하고 산다는 것에 대한 죄의식이 가장 컸어요. 부모님이 계속 저의 뒷바라지를 하고 계시니까요.”

기원석 시인이 지난달 31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에서 본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박지연 인턴기자 기원석 시인이 지난달 31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에서 본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박지연 인턴기자

2021년 교도관에 입직한 그는 1년 만에 상담 자격증을 취득하고, 심리치료센터에 자원해 상담사 교도관이 됐다. 성폭력 범죄를 저질러 법원이 심리치료를 명령한 수형자들을 맡았다. (심리치료라곤 하지만 의학적 개입이 불가능하고, 의미상으로도 ‘상담’이 더 들어맞기 때문에 시인은 ‘심리치료’보다 ‘교정상담’이라는 용어를 선호했다) 산문집에 담긴 대부분의 내용은 상담사로서의 경험을 담았다. 개인이 특정되지 않도록 수형자들의 이야기나 특성을 섞고 덜어내고 가미했지만, 생생한 통찰만은 그대로다.

대부분의 수형자는 처음에 상담을 받는 것에 불만을 갖고 저항한다고 한다. 자의가 아닌 타의, 법원 판결로 시작되는 상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수형자들은 정말로 다른 삶을 살 수 있다는 의지를 갖고 나간다. 그는 출소한 한 수형자에게 받은 편지를 떠올렸다. “제 경험상 교정 교화는 무척이나 이상적 단어라고 느꼈지만, 교도관의 친절함은 휴대폰 플래시 같은 것이었어요.”

그는 결코 온정주의자가 아니다. 반성 않는 수형자들을 지근거리에서 대하는 직업이니 어찌 보면 당연하다. 다만 시인은 수형자들이 바뀌는 것도 드물게나마 봤다고 말한다. 성폭력 범죄 재범률도 증명해 준다. “재범률이 20% 정도인데, 프로그램을 마치면 재범률이 10%가 돼요. 그러니까 10명 중 1명은 이 프로그램을 받지 않았으면 재범을 했을 사람들인 거죠.” 그가 생각하기에 수형자들을 바꾸는 건, 믿어주는 사람의 존재다. 자신조차 믿지 않는 경우가 가장 위험하고, 상담사가 믿어주면 그들도 용기를 낸다.

“그냥 ‘나는 그런 사람이니까 그렇게 살게’라고 자포자기해 버리는 상태를 많이 봤어요. 그 안에 절망이 자동으로 깔려 있고, 그들은 서로 호흡하듯 절망을 공유해요. 그 상태가 가장 재범으로 직결되는 마음의 상태가 아닐까, 생각해요.”

내담자를 믿어야 하는 상담사와 대중의 입장은 또 다를 것이다. 일반인들이 수형자 내지는 전과자들을 어떤 태도로 바라보는 게 이상적일지 물었다. 시인은 신중하게 생각했다. 그가 가장 길게 고민한 질문이었다.

“‘조금만 더 지켜보자’가 가장 가까울 것 같아요. 자비나 관용을 가질 필요는 없죠. 다만 적어도 문제를 일으키기 전에 그 사람을 비난하지 않을 수 있다면, 그 사람의 입장에서 그건 침묵의 시간인 거죠. 실제로는 ‘내가 널 비난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당장은 아무 문제를 만들지 않았으니 지켜보겠어’일지라도요. 그 침묵이 그 사람에게는 더 좋은 교훈이 되고 ‘내가 더 정신 차리고 살아야겠구나’ 느끼게 하는 발판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기원석 시인이 지난달 31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에서 본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박지연 인턴기자 기원석 시인이 지난달 31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에서 본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박지연 인턴기자

교도소는 그에게도 치유의 장소였다. 문단과 거리 두기를 할 수 있는 공간이자, 문학으로 돌아오는 길이 됐다. 2019년 시를 포기했던 시인은 2024년 비로소 첫 시집 ‘가장낭독회’(아침달 발행)를 냈다. 문단이 싫었던 그는 “교도관이나 상담사로서 문단에서 떨어져 나와 있기 때문에, 덜 소속되어서 덜 괴로운 것 같다”고 했다.

“일하면서 재미있는 희곡을 많이 읽었어요. 그 영향으로 공연하듯이 시를 썼고, 제가 원래 쓰고 있던, 시라고 할 때 드는 감정으로부터 멀어질 수 있어서 그게 재미있었어요. 그리고 사실, 창작 욕구는 전혀 줄어들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의 삶을 듣고 나니 산문집의 제목이 ‘사람은 변화할 수 있다’는 메시지라는 건 당연해 보였다. 시인은 책날개에서 이렇게 자신을 소개했다. 시인, 교도관, 교정상담이라는 이목을 끄는 이력보다도 더 앞에 세운 문구다.

“더 나은 삶을 믿고, 더 나은 삶을 향해 애쓰는 사람을 믿으며, 다른 누구의 것도 아닌 자기 손에 달린 가능성을 믿는다. (…) 더 나은 사람이 되려는 모든 이를 응원한다. 나 자신까지 포함해서.”

그냥 목록으로
원문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