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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한가 두번 터져야 원금 회복”…홀짝판 증시에 개미들 비명

코스피 한 달새 40% ‘뚝’…외신 “투자 부적합 국가” 경고
예탁금·빚투잔고 감소세…일각에선 W자형 박스권 우려
7월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부근에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상장 폐지를 촉구하는 근조화환이 설치돼 있다. 연합뉴스 7월 2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부근에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상장 폐지를 촉구하는 근조화환이 설치돼 있다. 연합뉴스

코스피가 폭등한 지난 7월 31일 직장인 A씨(35)는 삼성전자를 비롯해 갖고 있던 다른 종목의 주식을 모두 익절했다. 손실을 보고 있는 SK하이닉스의 평균 매입 단가를 낮추기(물타기) 위한 실탄(현금) 확보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A씨는 “조급한 마음에 고점에서 하이닉스를 추매해 원금 손실을 만회하려면 상한가가 두번은 나와야 하는 상황”이라며 “나중에 목표로 한 저점이 오면 물타기로 원금만 회수해 국장을 정리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고점 매수는 제 책임이고 주가가 오르고 내리는 것도 당연하지만, 하루에도 수차례 매수·매도 사이드카가 발동하는 변동성은 견디기가 힘들다”며 “명확한 이유 없이 주가가 홀(급등) 아니면 짝(급락) 도박판처럼 널뛰는 국내 증시가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원금 회수 후에는 다시 미국 증시로 돌아갈 예정이다. A씨는 “반도체 쏠림 수급에 삼성전자·SK하이닉스(삼전닉스) 단일종목 레버리지ETF(이하 레버리지)로 변동성마저 극대화되면서 다른 종목들이 이유 없이 주가가 빠질 때마다 ‘억까’(억울하게 까이거나 손해를 보는 상황)당하는 것 같았다”며 “장기간 주식을 보유하고 분산할 수 있는 시장에서 투자하고 싶다”고 했다.

식당을 운영하는 자영업자 B씨(49)는 올해 6월 처음 주식을 시작했다. B씨는 “상반기 내내 식당에 오는 손님들과 인근 상인들 모두가 주식 얘기만 했다”며 “뉴스와 유튜브에서도 반도체 기업이 돈을 잘 번다는 소식이 계속 나와 예금을 깨 삼전닉스만 샀다”고 말했다.

예상대로 실적은 잘 나왔지만 주가는 고꾸라졌다. B씨의 계좌는 반토막이 났다고 한다. 그는 “지금 보니 가장 비쌀 때 산 것 같아 후회가 된다”며 “가족에게 미안해 스트레스로 잠을 못 자고 있다”고 했다. 이어 “수천만원이 손실구간에 있어 팔지도 사지도 못하고 있다. 주식 창을 보는 것조차 화가 나 최근엔 앱을 삭제했다”며 “나중에 8000선으로 오르면 그때 다 팔고 다시는 주식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7월 코스피 22% 급락, 세계 주가 중 최대 낙폭
코스피가 한 달새 고점 대비 40% 급락했다가 반등하는 역대급 변동성을 보이자 개인투자자들의 시름도 깊어지고 있다. 7월 한 달만 보면 코스피는 전달 대비 22.19% 급락했다. 이로 인해 코스피·코스닥 시장 전체 종목(2645개)의 70%가 마이너스(-) 수익률을 냈다. 같은 기간 세계 주요 주가지수 중 가장 큰 하락률이다.

금융위기로 어려움을 겪었던 2008년 10월 이후 가장 큰 낙폭으로, 상반기 101% 급등하며 세계 상승률 1위를 기록한 증시가 한 달새 급변한 것이다. 이 같은 하락과 변동폭은 기업가치 변화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수준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각종 주식 카페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수천만원에서 수십억원이 녹아내린 주식계좌 인증과 함께 우울·불면증 등을 호소하는 글이 넘쳐난다.

초보 투자자의 생존기를 담은 예능도 등장했다. 넷플릭스는 8월 3일 예능 방송 <개미 김원훈: 주식의 세계>를 공개했다. 방송은 주가 등락과 함께 일상이 흔들리는 모습을 담았다. 코미디언 김원훈씨는 투자 시작 2주 만에 2400만원의 손실을 봤다. 그는 “피폐하고 살도 2㎏이 빠졌다”며 “식욕도 없고 의욕도 없다. 어딜 다녀도 좀비처럼 다니게 된다”고 말했다.

유례없는 장세에 외신도 하루가 멀다고 국내 상황을 보도하고 있다. 외신들은 “정부가 추진한 증시 부양책이 정치적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코노미스트는 “금융당국이 이제 와서 아무리 후회해도 한국 투자자들을 카지노(한국 증시) 밖으로 끌어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투자자들의) 막대한 손실은 이 대통령에게 정치적 위협이 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미 경제매체 블룸버그 칼럼니스트 슐리 렌은 ‘코스피 변동성’을 지적하며 “한국이 투자에 부적합한 시장”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레버리지 신상품 도입과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비중 상향 조정 등 코스피 부양을 위한 정부의 어설픈 개입”을 변동성 원인으로 꼽았다.

보도가 확산되자 금융위원회는 8월 4일 밤 10시쯤 ‘국내 증시에 대한 정부의 입장’ 이라는 설명자료를 통해 블룸버그를 반박하는 입장문을 냈다. 당국이 외신 칼럼에 반박 자료를 내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금융위는 “한국이 글로벌 AI 시장의 대체 불가한 공급망이자 투자처로 부각되고 있는 상황에서 투자 부적격 국가로 평가될 우려는 전혀 없다”고 밝혔다.

외신 질타 “증시 부양책이 정치 부메랑으로”
금융위는 “한국 경제는 국내총생산 성장률과 경상수지 등 펀더멘털 측면에서 어느 때보다 견고한 모습을 보인다”며 “AI 및 반도체 산업에 대한 기대로 국내 기업의 예상 실적은 주가가 고점인 때에 비해 높아진 상황”이라고 반박했다. 변동성에 대해선 “복합적 요인에 기인한 것이며 최근 투자 심리가 회복되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며 “(레버리지 관련) 우려도 보완대책을 통해 안정화하는 등 변동성 관리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했다.

한국거래소 등에 따르면 8월 5일 기준 레버리지의 거래대금은 1조원 아래로 떨어졌다. 기본예탁금 상향 조정 등 규제를 시행한 지 4거래일 만이다. 이날 레버리지 거래대금은 9198억원으로, 규제 시행 전에 비해 10분의 1수준으로 급감해 투자 과열이 일부 완화되는 모습을 보였다.

김재승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레버리지 상품 규제 후 상품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이 하락하고 있다”며 “투자요건 강화 조기 시행으로 시총 상위 2개사에 쏠렸던 자금이 점차 다른 업종과 전략으로 이동하는 모습이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를 뒤집으면, 대책이 더 빨리 나왔다면 시장 왜곡과 투자자 손실이라는 부작용을 상당 부분 줄일 수 있었다는 얘기다.

금융당국은 레버리지 투자 총량 규제, 운용사·증권사 괴리율 관리 책임 강화 등 추가 조치도 예고했다. 시장 급변 시 레버리지 배율을 조정할 수 있는 긴급조치권을 자본시장법에 도입하는 방안도 준비 중이다. 상황에 따라 현재 2배인 레버리지 배율을 1.5배나 1.1배 등으로 일시 조정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넷플릭스가 8월 3일 공개한 예능 방송 &lt;개미 김원훈: 주식의 세계&gt; 한 장면. 넷플릭스 갈무리 넷플릭스가 8월 3일 공개한 예능 방송 <개미 김원훈: 주식의 세계> 한 장면. 넷플릭스 갈무리

금융위의 입장대로 증시 변동성이 큰 배경에는 여러 이유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반도체·AI 투자에 대한 지속가능성과 중국 반도체 굴기, 미국·이란 전쟁 등 각종 대외 변수가 증시 급락의 방아쇠 역할을 했다. 하지만 시장 과열을 불러온 레버리지 상품을 허용한 정부 정책이 변동성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에 여권에서도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의 책임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다만 이재명 대통령이 김 실장을 교체할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알려졌다. 성기홍 청와대 홍보소통수석은 8월 6일 CBS라디오 <박성태의 뉴스쇼>를 통해 “지금은 시장을 일단 유의 깊게 살피면서 대책을 챙기는 것이 더 중요한 사항”이라며 책임론에 선을 그었다. 성 수석은 “필요하다면 추가 대책도 검토하고 있는 게 사실”이라며 추가 규제가 시행될 수 있음을 예고했다.

증시가 8월 들어 반등을 시도하고 있지만 변동성 장세는 여전하다. 시장에 대한 불안감으로 투자심리가 위축되면서 ‘빚투’(빚내서 투자) 지표인 신용거래융자 잔고는 올해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8월 4일 기준 신용거래융자 잔고는 27조4038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12월31일 27조2865억원 이후 가장 낮다. 신용거래융자 잔고는 투자자가 주식 투자를 위해 증권사로부터 돈을 빌린 뒤 갚지 않은 금액이다. 통상 상승장일때 잔고가 늘어난다.

증시체질 개선하고 장기투자 환경 조성해야
‘개인투자자 실탄’인 투자자 예탁금은 5월 29일 131조원 규모에서 8월 4일 110조원대로 줄었다. 투자자 예탁금은 투자자가 주식을 사기 위해 증권사 계좌에 입금해둔 자금 중 아직 주식을 매수하지 않은 현금을 뜻한다. 주가 하락에 베팅하는 대차거래 잔고는 같은 날 155조2734억원이었다. 대차거래 잔고는 7월 30일 133조4126억원까지 떨어졌다가 150조원대로 올라서며 주가가 내릴 것으로 예측하는 투자자가 우세한 것으로 나타났다.

일각에선 한국 증시가 투자자에게 신뢰를 잃으면서 ‘W자형 박스권 장세’를 이어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레버리지와 초단기 매매로 단기 차익을 노리는 투자 문화가 만들어져, 지수가 특정 수준에 달하면 고점에 물린 개인들이 차익을 실현해 상승을 제한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AI 과잉 투자에 대한 의문이 명확히 풀리지 않은 상황이라 유사한 악재가 발생하면 시장은 또 흔들릴 수 있다.

레버리지 외에도 삼전닉스가 시총의 절반 이상(55%)을 자치하는 과도한 쏠림 문제와 개인투자자 비중이 미국보다 3배 이상 높은 시장의 구조적 취약성도 변동성을 키우는 요인이다. 전문가는 이번 논란을 증시 구조를 개선하고 자본시장의 건전성을 높이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제언한다.

장근혁 자본시장 선임연구위원은 “단기적으로는 주가지수연계 투자상품이 특정 종목에 편중되지 않도록 설계하고, 기관 간 대량매매 플랫폼을 활용해 대규모 거래의 가격 충격을 흡수하는 조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장기적으로는 개인들의 투자 문화도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장 연구위원은 “개인투자자의 투자금이 직접투자를 넘어 퇴직연금과 개인연금, 장기 공모펀드 등의 간접투자를 통해 장기 투자금으로 축적되는 기반을 조성해야 한다”며 “이를 통해 안정적인 투자금 유출입 구조를 만들고 투자 성과를 개선하는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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