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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 반입’ 목청 키우는 일본…‘안보 딜레마’ 커지는 동아시아

미 해군의 원자력 추진 순항미사일 잠수함(SSGN) ‘오하이오함’이 2021년 2월 일본 오키나와 남단 필리핀해에서 미 해병대 정찰부대와 합동훈련을 하고 있다. 미 해병대 제공 미 해군의 원자력 추진 순항미사일 잠수함(SSGN) ‘오하이오함’이 2021년 2월 일본 오키나와 남단 필리핀해에서 미 해병대 정찰부대와 합동훈련을 하고 있다. 미 해병대 제공

일본은 비핵지대다. 이른바 비핵 3원칙(핵무기를 제조하지도, 보유하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을 안보 정책의 근간으로 삼는다.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이 원칙을 표명했고, 1971년 중의원(하원) 결의를 통해 정부의 준수 방침을 확정했다. 일본의 3대 안보문서(국가안전보장전략·국가방위전략·방위력정비계획)에도 “(비핵 3원칙을) 견지한다는 기본방침은 앞으로도 변하지 않는다”는 문구가 담겨 있다.

일본이 3대 안보문서를 개정해 59년간 지켜온 ‘핵무기 반입금지’ 원칙을 허물려 한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는 지난해 방위력 강화와 방위비 증액을 위해 3대 안보문서 개정을 지시했는데, 비핵 3원칙도 손 볼 가능성이 높다. 일본은 오는 12월 각료회의(국무회의)에서 수정된 안보문서를 공식 발표한다. 여기엔 핵무기 반입금지 원칙이 빠진 채 ‘비핵 2원칙’만 담길 가능성이 있다.

다카이치 총리가 방아쇠를 당기자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이 적극 나섰다. 그는 지난 7월 22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사무총장과 회담 후 취재진에게 “어떠한 금기도 두지 않고 논의하지 않으면, 어느 나라도 혼자 안보를 확립할 수 없다”고 했다. 지난 7월 18일 한 인터넷 방송에서도 “논의하기 어려운 과제이지만,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핵”이라고 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프랑스가 핵전력을 늘리고, 핀란드가 핵무기 반입 등을 금지한 법안을 폐기한 것을 예로 들었다. 연립 여당인 일본유신회도 지난 6월 핵무기 반입금지 원칙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제언서를 정부에 제출했다.

사실 다카이치 총리는 취임 전부터 반입금지 원칙 재검토를 주장했다. 그는 지난해 10월 자유민주당 총재 선거 전 출간한 저서에서 “(핵무기)보유와 제조 금지는 계속 견지하더라도, 반입금지는 미국의 확장 억지를 기대한다면 현실적이지 않다”고 밝혔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 8월 6일 히로시마에서 열린 평화기념식에서 일본은 “비핵 3원칙을 견지하는 중”이라며 원론적인 입장만 밝혔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지난 3월 도쿄에서 열린 참의원(상원) 예산위원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지난 3월 도쿄에서 열린 참의원(상원) 예산위원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중국 위협 확대, 확장억지는 ‘글쎄’
일본이 핵 반입금지 원칙을 허물려는 이유는 미국의 확장억지를 높이기 위해서다. 핵 반입금지 원칙을 없애면, 핵무기를 탑재한 미국의 잠수함이나 폭격기가 일본 내에서 자유롭게 오갈 수 있게 된다. 미국의 핵 억지력이 강해지는 것이다. 다카이치 총리의 주장처럼 핵 반입금지 원칙하에 미국 핵전력의 운용 범위를 제약하면서 “미국의 확장억지를 기대하는 건 모순”이 될 수 있다. 여기엔 현 상태에서 미국의 확장억지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는 불신이 깔려 있다.

확장억지 확대가 필요해진 이유는 북·중·러의 위협 때문이다. 중국의 해양군사력 확대와 북한의 미사일 도발, 러시아의 동북아 군사 활동 확대가 일본의 안보 불안을 부추기고 있다. 지난 7월 6일 중국 전략핵잠수함이 남태평양을 향해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발사하자, 일본 정부가 “안보 환경이 엄중해지고 있다. 3대 안보문서 개정을 속도감 있게 임할 생각”이라고 반응한 것이 일본의 불안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중국 위협에 대한 불안이 가장 크다. 2010년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분쟁 이래 중국의 위협이 커지자, ‘평화국가’ 일본은 ‘전쟁할 수 있는 보통국가’로 전환을 시작했다. 2014년 아베 신조 당시 총리는 헌법 제9조에 대한 해석을 변경해 일본이 직접 공격받지 않더라도 자위대가 무력을 쓸 수 있는 길을 열었다. 같은 해 1967년 이래 큰 틀에서 이어져온 무기 수출금지 원칙도 폐기했다.

일본과 중국 사이에 골은 더 깊어지고 있다. 2022년 중국은 대만 문제를 두고 “무력 사용 포기를 절대로 약속하지 않겠다”고 천명했다. 일본은 3대 안보문서에 중국을 ‘최대의 전략적 도전’ 국가로 규정하고, ‘적 기지 공격능력(반격능력)’을 도입했다. 이어 중국을 겨냥할 수 있는 일본산 장거리 미사일과 미국산 토마호크 순항미사일을 배치하고 있다. 1957년 이래 이어져온 전수방위(공격받았을 때만 무력행사) 원칙이 형해화돼가고 있다.

2025년 6월 중국 인민해방군 해군 소속 항공모함 ‘산둥함’이 동중국해에서 작전을 수행하고 있다. 중국 인민해방군 제공 2025년 6월 중국 인민해방군 해군 소속 항공모함 ‘산둥함’이 동중국해에서 작전을 수행하고 있다. 중국 인민해방군 제공

특히 지난해 다카이치 정부 출범 후 중·일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지난해 11월 다카이치 총리가 대만 유사시 자위대가 개입할 수 있다는 취지로 발언하자 중국은 경제제재를 단행했다. 지난 4월에는 자위대 함정이 대만해협에 진입해 중국의 강한 반발을 샀다. 반대로 지난 7월 중·러 함정은 일본이 배타적경제수역(EEZ)이라고 주장하는 해역에서 실사격 훈련을 해 일본의 강한 반발을 샀다.

중국과 손을 잡은 러시아·북한도 일본을 압박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 5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공동성명에서 “일본의 급속한 재무장 노선은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심각하게 위협한다”고 밝혔다. 북한도 일본의 비핵 3원칙 개정 움직임에 “핵무장화 야망”이라고 비판했다.

일본을 대중국 견제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미국의 구상은 이 같은 대립구도를 더 가파르게 만든다. 실제 미국은 2010년대 외교·군사력을 중국 견제에 집중하려 했고, 이에 맞춰 아베 정권은 2015년 제2차 미·일 방위협력지침 개정을 통해 자위대의 활동 범위를 크게 넓혔다. 현재 미국은 대만해협과 제1도련선(오키나와~대만~필리핀~믈라카 해협) 방어에 힘을 쏟는다. 이에 맞춰 일본은 지난 3월 통합작전사령부를 창설해 주일미군과 연합지휘·정보공유 구조를 강화했다.

결국 북·중·러의 위협 확대에 일본은 미·일동맹의 틀을 활용해 자국의 군사적 자율성을 극대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강경 대구가톨릭대 군사학과 교수는 “미국이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막기 위해 일본에 ‘골목대장’ 역할을 주문했고, 일본은 이를 기꺼이 받아들인 셈”이라고 말했다.

반핵 정서·지지율·당 역학관계가 변수
다만 핵무기 반입금지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여론도 만만치 않다. 원폭 피해지역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과거 미국의 핵무기가 배치됐던 오키나와를 중심으로 원칙 개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목소리가 퍼지고 있다. 반핵운동 단체인 니혼히단쿄(일본 원수폭피해단체협의회)가 2024년 노벨평화상을 받을 만큼 일본에는 전통적인 반핵 정서가 있다.

최근 하락세를 보이는 다카이치 총리의 지지율도 변수다. 장기화한 엔화 약세로 물가와 월세가 크게 올랐는데도 실질 임금은 오르지 않았다. 그러나 다카이치 정권은 일본판 중앙정보국(CIA)으로 불리는 ‘국가정보국’ 출범, 여성 천황을 허용하지 않은 왕위계승법 개정 등에 힘을 쏟았다.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는 “다카이치 정권은 국민이 힘들어하는 민생 이슈보다 이념·안보 이슈에 몰두해 있다”며 “이것이 지지율 하락에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5월 3일  일본 도쿄에서 시민들이 다카이치 정권의 ‘평화헌법’ 개정 움직임과 군사력 확대에 반대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5월 3일 일본 도쿄에서 시민들이 다카이치 정권의 ‘평화헌법’ 개정 움직임과 군사력 확대에 반대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일본 정부는 현재 가동 중인 전문가 회의의 결과를 토대로 3대 안보문서 개정 원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정부 원안을 여당과 최종 조정해 오는 12월 각료회의에서 새로운 안보문서를 발표한다. 여기엔 반입금지 원칙 개정은 물론 ‘나토식 핵공유’까지 주장하는 유신회의 입김이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핵무기 반입금지 원칙 개정과 별개로 원자력(핵) 추진 잠수함 도입도 논의될 가능성이 있다. 유신회는 “원자력 잠수함을 조속히 도입해야 한다”며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이밖에 방위장비 수출 제한 완화, 장사정 미사일 전력화 가속 등도 이번 안보문서 개정에서 다뤄질 것으로 보인다.

승자 없는 안보 딜레마, 한국은?
북·중·러와 일본의 안보 딜레마는 한국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중국과 러시아가 각각 대만해협과 홋카이도 북부지역에서 영향력을 넓히면 일본은 이에 대응키 위해 군비를 증강할 수밖에 없는 악순환에 빠지게 되고, 한국도 이 상황을 모른 척할 수만은 없게 된다. 안보 딜레마는 한 국가의 군사력 증강이 주변국의 군비 경쟁을 유발해 결국 모든 국가의 안보가 나빠지는 것을 말한다.

한국은 일단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고 있다. 한국에게는 대만 유사시 주한미군이 분쟁에 투입되는 시나리오를 막는 것이 급선무다. 이 때문에 지나치게 한쪽에 기울지 않으려는 것이다. 대만해협 긴장을 두고 미·일에는 ‘평화 지지’를, 중·러에는 ‘일방적인 현상 변경 반대’를 표명한다. 이는 한·미동맹을 주축으로 삼으면서도 중국과 관계를 고려해야 하는 한국이 취할 수 있는 원론적 대응이다.

그러나 동아시아의 긴장 수위가 임계점을 넘게 되면, 지금과 같은 전략적 모호성만으로는 버티기 어려울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오사카 총영사를 지낸 조성렬 경남대 교수는 “한국이 어느 한쪽에 지나치게 기울어서는 안 되겠지만, 중국의 군사력 확장은 우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이 동아시아에서 해상 패권을 장악할 경우 한국은 중국의 강압외교에 순응할 수밖에 없는 처지로 몰릴 것”이라고 했다.

한·미·일이 2024년 6월 제주도 남방 공해에서 ‘프리덤 에지’ 훈련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은 미 해군의 항공모함 ‘시어도어 루스벨트’함에서 전투기가 출격하는 모습이다. 합동참모본부 제공 한·미·일이 2024년 6월 제주도 남방 공해에서 ‘프리덤 에지’ 훈련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은 미 해군의 항공모함 ‘시어도어 루스벨트’함에서 전투기가 출격하는 모습이다. 합동참모본부 제공

2023년 캠프 데이비드 합의 이후 한·미·일 안보 협력은 한층 긴밀해졌지만, 넘어야 할 벽이 높다. 한·미·일은 중국 해상력에 대응하기 위해 ‘프리덤 에지’ 훈련을 정례화했다. 하지만 일본이 원하는 한·일 상호군수지원협정(ACSA) 체결까지는 어렵다. 식민지배를 사과하지 않는 일본에 대한 반감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6월 이재명 대통령은 ACSA 체결에 대해 “현실적으로 필요성이 있다”면서도 “우리 국민 정서상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갈등의 뿌리는 식민지배에 대한 책임을 묻지 않은 1952년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이다. 하루아침에 해결되기 어렵다는 뜻이다.

양기호 교수는 “일본은 여전히 한국과 역사 인식을 공유하지 못하고 있고, 중국은 한국에 대한 불신을 키워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한·일, 한·중 관계에서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한국의 실용외교 노선을 냉정하게 점검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안보 딜레마를 완전히 없앨 순 없지만, 조절할 수는 있다. 북·중·러 연대가 공고해지는 상황에서 한국은 이를 되돌릴 수 있는 지렛대를 확보하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조진구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은 “군사력 강화로 어느 정도 억지력을 다지되, 지속적인 대화를 통해 상대국과 신뢰를 형성해야 한다”며 “긴장 완화를 위한 모멘텀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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