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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업 기반 갖춘 한국, 피지컬 AI 세계 1강 될 역량 충분”

장병탁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 “지금은 실패 두려워 않는 과감한 투자 필요한 때”

장병탁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오른쪽)와 장 교수가 대표로 있는 투모로로보틱스가 레인보우로보틱스와 함께 개발 중인 산업용 로봇. 조영철 기자 장병탁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오른쪽)와 장 교수가 대표로 있는 투모로로보틱스가 레인보우로보틱스와 함께 개발 중인 산업용 로봇. 조영철 기자
“피지컬 인공지능(AI)이 발전하면 사람은 육체노동에서 해방될 수 있습니다. 힘들고 하기 싫지만 해야만 했던 일을 AI에게 맡기고 좀 더 인간다운 삶을 사는 데 집중할 수 있게 되는 거죠. 그런 세상을 앞당기는 데 기여하고 싶습니다.”

팔다리를 가진 챗GPT장병탁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가 인터뷰에서 밝힌 포부다. 서울대를 졸업하고 1992년 독일 본대에서 컴퓨터과학 박사학위를 받은 장 교수는 AI라는 용어가 생소하던 시절부터 피지컬 AI를 연구해왔다. ‘사람 같은 지능을 갖고 현실 세계에서 움직이는 기계’를 만들겠다는 꿈을 30년 넘게 품어왔다. 서울대 AI연구원 초대 원장을 지내는 등 연구에 몰두하면서 동시에 로봇 뇌를 연구하는 스타트업 투모로로보틱스를 창업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학계와 산업계 양쪽에서 국내 피지컬 AI 발전을 선도해온 장 교수를 만나 피지컬 AI가 중요한 이유와 향후 전망에 대해 들었다. 그와의 인터뷰 자리에는 투모로로보틱스가 레인보우로보틱스와 함께 개발 중인 산업용 로봇이 동석했다.

챗GPT가 촉발한 AI 혁명의 다음 주인공은 피지컬 AI가 될 것이라고 전망하는 사람이 많다. 피지컬 AI가 정확히 뭔가.

“지금 내 뒤에 있는 로봇이 바로 피지컬 AI다. 눈이 있고 팔도 있다. 현실의 물리적(피지컬) 세계를 직접 보고, 건드릴 수 있는 셈이다. 챗GPT와 비교해보자. 챗GPT가 보고서는 기막히게 쓸지 몰라도 ‘저기서 컵 좀 가져다줘’ 하면 할 수 있는 게 없다. 피지컬 AI는 같은 말을 들으면 눈으로 컵을 찾고, 직접 이동해 컵을 집어든 뒤 내가 있는 장소까지 와서 건네준다. 인간의 자연어 명령을 이해하고, 주변 세계를 인식하며, 적절한 행동을 수행하는 뇌를 가진 로봇, 즉 팔다리가 있는 챗GPT가 피지컬 AI다.”

글로벌 빅테크가 생성형 AI 개발 경쟁을 벌이면서 우리 삶이 크게 달라졌다. 피지컬 AI 개발이 본격화하면 또 한 번 인간 세상의 모습이 달라질까.

“물론이다. 혁명적이라고 할 만큼 큰 변화가 생길 것이다. 돌아보면 인터넷 개발 후 현실 세계의 상당 부분이 가상공간 속으로 들어갔다. 우리 삶이 곧 데이터가 됐다. 그런데 이제 그 데이터를 학습한 AI가 다시 현실로 나오는 것이다. 쇼핑을 예로 들면 과거 AI의 활동 무대는 이커머스였다. 앞으로는 로봇이 직접 시장에 가서 장을 봐 올 것이다. 기존 AI가 화이트칼라 일자리를 넘봤던 것과 달리, 피지컬 AI는 블루칼라 직군, 즉 제조·물류·서비스 분야까지 진입할 것이다. 우리 삶 전반이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런 시대가 언제쯤 열릴 것으로 보나.

“정확한 시점을 맞히기는 어렵다. 하지만 생각보다 훨씬 가까울 것이라고 얘기할 수 있다. 이 분야에서 세계 최고 권위를 인정받는 ‘뉴립스(NeurIPS)’라는 학회가 있다. 내가 박사과정에 있을 때 그 학회에 가보니 AI에 관심 있는 학자 300명 정도가 모여 있었다. 지금은 등록자가 3만 명이 넘는다. 학자 수만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게 아니다. 세계 각국 정부와 기업의 관심도 커졌고, 막대한 자본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 이런 환경이라면 머지않아 피지컬 AI가 상용화될 것으로 기대한다.”

인재·인프라·제조업 경쟁력 갖춘 한국생성형 AI를 놓고 미국과 중국이 각축전을 벌이는 동안 한국은 그 중심에 서지 못했다. 다가올 피지컬 AI 혁명에서는 우리가 주역이 될 수 있을까. 최근 정부가 ‘피지컬 AI 세계 1강(强)’ 목표를 밝혔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충분히 실현 가능하다고 본다. AI 산업 전체적으로 볼 때 한국은 글로벌 3강에 속한다. 다만 1, 2등과 차이가 많이 날 뿐이다. 생성형 AI 개발에서 후발 주자였기 때문에 따라잡기 어려웠던 부분이 있다. 지금은 다르다. 피지컬 AI는 이제 막 시작되는 분야로, 세계 거의 모든 나라가 출발선에 서 있다. 그들 사이에서 우리가 앞서는 면도 많다고 본다.”

어떤 부분이 그런가.

“첫째로 꼽을 것이 제조업 경쟁력이다. 피지컬 AI로 하여금 인간 일을 대신하게 하려면 먼저 인간이 일하는 방식을 알려줘야 한다. 조립 로봇을 예로 들면 해당 업무를 하는 노동자의 시선, 손가락 움직임, 터치 강도 등을 데이터로 만든 뒤 기계가 접근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는 의미다. 한국은 반도체·배터리·자동차 등 많은 분야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갖고 있다. 거기에 통신 인프라가 잘 돼 있고, AI 데이터센터도 많이 짓고 있다. 인적 자원 또한 우수하다. 이런 요소를 다 갖춘 나라가 세계에 별로 없다. 미국에는 제조업이 없고, 중국은 제조업 품질에 대한 신뢰가 한국에 못 미친다. 피지컬 AI에 관한 한 한국이 가장 잘 준비된 나라일 수 있다.”

하지만 앞서 말씀했듯이 세계 각국 인재와 자본이 피지컬 AI 분야로 모여들고 있다. 미국 빅테크는 이번에도 거대 자본으로 플랫폼 장악을 노릴 테고, 중국은 저가 물량 공세를 펼칠 것이다. 그래도 한국이 잘할 수 있나.

“그렇다. 다만 서둘러야 한다. 지금 시기를 놓치면 안 된다. 피지컬 AI 분야는 아직 데이터가 충분하지 않다. 거대언어모델(LLM)처럼 특정 기업이 플랫폼을 만들어 시장을 독점하기 힘든 구조다. 또 하드웨어를 싸게 만든다고 바로 경쟁력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기회가 있는 것이다. 반도체 제조 로봇을 생각해보자. 세계에서 가장 좋은 데이터가 한국에 있다. 한국 반도체 공장에서 확보한 최적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현장에 즉시 투입할 수 있는 피지컬 AI를 개발한다면 어떨까. 이어 그 경험을 자동차·가전·물류 등 우리가 잘하는 또 다른 분야로 확대해간다면 한국은 피지컬 AI1강 국가가 될 수 있다. 중요한 건 속도다. 자신감을 갖고 무모하다 싶을 만큼 과감한 투자를 통해 시장을 선도하는 게 중요하다.”

최근 삼성전자와 LG전자가 대표이사 직속 로봇 조직을 신설했다. 정부도 국민성장펀드를 통해 올해만 약 16조 원을 피지컬 AI 분야에 투입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일각에서는 ‘과잉투자’ 우려도 나오는데.

“인터넷 발전 단계에도 버블 논란이 있었고, 기대를 모았던 일부 회사가 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큰 관점에서 보면 그런 과정이 모두 기술 성장의 밑거름이 됐다. 실패를 통해 쌓은 경험이 더 큰 혁신으로 이어진 셈이다. AI 또한 같은 방향으로 발전할 것이다. 한국은 제조업 기반으로 성장한 나라이다 보니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는’ 문화가 있는데, 그런 태도로는 피지컬 AI 시대를 선도하기 어렵다. 대기업과 정부가 나서서 판을 만들고 투자 계획을 발표한 것은 반가운 일이다. 이제는 실패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스타트업들이 과감한 도전을 통해 혁신의 돌파구를 만들어가야 한다. 이런 생태계가 조성되면 한국 피지컬 AI 산업은 크게 성장할 것이다.”

“인간이 더욱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장 교수는 현재 바로 그 일을 하고 있다. 로봇 하드웨어·제어 기술을 보유한 스타트업 레인보우로보틱스와 손잡고 휴대전화 생산 현장에 투입할 피지컬 AI 개발에 나선 것이다. 레인보우로보틱스는 피지컬 AI의 ‘몸’을, 장 교수의 투모로로보틱스는 ‘뇌’ 개발을 각각 담당하는 방식이다. 그는 “사전에 입력된 동작을 반복하는 기존 자동화 장비와 달리, 주변 환경과 작업 상태를 인식하고 필요한 행동을 판단해 여러 작업을 연속적으로 수행하는 명실상부한 피지컬 AI를 만들어 산업 현장에 투입할 것”이라고 소개했다. 이 로봇 뇌를 향후 물류·서비스 분야 로봇에도 탑재할 수 있도록 발전시켜 궁극적으로 인간이 원치 않는 노동에서 해방되는 데 기여하고 싶다는 꿈도 밝혔다. 투모로로보틱스의 슬로건은 이 포부를 담은 ‘One Brain, a Thousand Bodies(하나의 두뇌, 1000개의 몸)’다.

인터뷰 내내 피지컬 AI의 미래를 낙관한 장 교수에게 마지막으로 “스스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로봇의 탄생이 인간에게 위협이 될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는 “인간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똑똑하다”며 고개를 저어 보이면서 이렇게 말했다.

“현재는 기술 분야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지만, 앞으로 피지컬 AI와 함께 살아가는 데 필요한 법·제도 설계, 철학과 문화 관련 논의가 활발해질 것이다. 피지컬 AI 연구는 결국 인간에 대한 연구와 연결될 수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인간을 더 잘 알게 되고, 좀 더 자유로우면서도 인간적인 세상을 만들어갈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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