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31일 공개된 와일드베리스의 공식 영상에서 와일드베리스의 대표 타티아나 김이 러시아-우크라이나 분쟁 과정에서 회사 창고를 대상으로 한 우크라이나의 드론 공격에 대해 말하고 있다./와일드베리스고려인 출신으로 러시아 최고 여성 부호에 오른 타티야나 김(50)의 ‘유통 제국’이 우크라이나의 드론 공격으로 최대 위기를 맞았다. 영어 교사 출신인 김은 러시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와일드베리스(Wildberries)’를 일군 자수성가 신화의 주인공이다. 그러나 우크라이나가 최근 와일드베리스의 물류 창고를 집중 공격하면서 약 8조원어치 상품이 소실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지난 8일(현지 시각) 러시아 모스크바주 일렉트로스탈의 와일드베리스 창고에서 우크라이나 드론 공격 이후 연기가 치솟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뉴욕타임스(NYT)는 9일 우크라이나가 지난달 중순부터 러시아 전역의 와일드베리스 물류 시설을 잇달아 공격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지금까지 최소 23곳이 공격받았고 직원 9명이 숨졌다. 모스크바의 전자상거래 컨설팅 업체 데이터 인사이트는 와일드베리스가 전체 창고 면적의 최대 3분의 1을 잃었고, 소실된 상품 규모가 최대 4800억루블(약 8조3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했다. 한 업계 분석가는 “대형 창고가 거의 남지 않았다”며 “하루가 멀다 하고 창고가 하나씩 파괴되고 있다”고 했다.
고려인 가정에서 태어난 김은 영어 교사로 일하다 2004년 당시 남편 블라디슬라프 바칼추크와 온라인 의류 판매 사업을 시작했다. 유럽에서 판매되던 옷을 인터넷으로 팔던 사업을 러시아 최대 온라인 쇼핑몰로 키워냈다. 현재 와일드베리스의 상품 수령 거점은 러시아 전역에 약 9만5000곳에 달한다. 러시아 국민의 절반 이상이 한 달에 한 번 이상 이용하고, 러시아 전체 소매 판매의 약 10%를 차지한다고 한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서방 기업들이 러시아에서 대거 철수하면서 영향력은 더욱 커졌다.
지난달 28일 러시아 크라스노다르 지역에서 우크라이나의 드론 공격을 받아 파손된 러시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와일드베리스의 물류시설. 위성사진에서 건물 일부가 크게 훼손된 모습이 보인다. /플래닛랩스·로이터김은 지난해 남편과 경영권과 이혼 문제를 놓고 극심한 분쟁을 하면서도 경영권을 지켜냈다. 당시 남편이 무장한 체첸인들과 모스크바 와일드베리스 사무실을 찾았다가 총격전이 벌어져 2명이 숨지고 7명이 다치는 일까지 발생했다. 두 사람은 지난해 이혼했고, 일곱 자녀는 김이 양육하고 있다.
이번에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그의 유통 제국을 직접 흔들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특정 러시아 민간 기업을 이처럼 지속적으로 겨냥한 것은 이례적이다. 앞서 정유 시설을 집중 공격해 러시아의 연료 공급에 타격을 줬던 우크라이나가 이제 러시아인의 소비 생활과 직결된 유통망으로 표적을 넓힌 것이다. 전쟁에 따른 불편과 비용을 러시아 국민이 직접 체감하게 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 대한 내부 압력을 높이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우크라이나는 와일드베리스가 러시아군에 쓰일 수 있는 물품을 판매한다는 점을 공격 명분으로 내세운다. NYT가 이달 초 사이트를 확인한 결과에 따르면 1인칭 시점(FPV) 드론과 드론 유도에 쓰이는 광섬유 케이블 등이 판매되고 있었다.
타티야나 김 와일드베리스 창업자. /연합뉴스김은 지난달 말 영상 메시지에서 “왜 하필 물류 창고를 공격하는 것이냐”며 “와일드베리스는 우리나라 국민 누구나 이용하고 다른 나라 사람들도 함께 이용하는 생활 밀착형 온라인 장터”라고 주장했다. 이어 “우리를 공격하는 것은 10국에 걸친 수억 명의 이용자와 판매자를 공격하는 것과 같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