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규제로 맞춤형 칩 주문은 제한
애플(Apple)이 아이폰과 맥북 등 여러 제품군에서 중국 메모리반도체 업체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의 메모리칩을 테스트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인공지능(AI) 열풍으로 메모리 공급 부족과 가격 상승이 이어지자, 중국산 메모리를 활용해 공급망 부담을 낮추는 방안을 검토한 것이다. 특히 CXMT가 빠르게 생산능력을 확대하고 글로벌 D램 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이면서 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Micron)이 주도해 온 글로벌 메모리 시장에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중국 메모리반도체 업체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의 로고. /신화통신·연합뉴스9일(현지 시각)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사안에 정통한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애플이 아이폰과 맥북을 포함한 여러 제품군에서 CXMT 메모리칩을 테스트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애플은 중국에서 판매되는 일부 기기에 CXMT 부품을 사용하는 방안을 놓고 초기 협의도 진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애플은 최근 AI 기업들의 메모리 수요 급증에 따른 비용 상승을 이유로 전 세계 제품 가격을 올리는 추세다. 이런 상황에서 애플이 CXMT를 통해 중국산 메모리 공급처를 추가로 확보할 경우 AI 열풍으로 빚어진 메모리 수급 부담을 일부 완화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실제 공급까지는 여러 제약이 존재한다. 미국 연방 규정은 미국 기업이 CXMT에 기술이나 구체적인 제품 사양을 전달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애플이 자사 제품 성능에 맞춰 맞춤형 메모리칩을 주문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기술 협의가 제한되는 셈이다. 수출통제 전문 로펌 에이킨 검프(Akin Gump)의 케빈 울프 변호사는 미국 규정상 애플이 CXMT 기성품(off-the-shelf) 메모리를 구매하거나 가격을 협상하는 건 가능하지만, 맞춤형 칩 주문은 사실상 어렵다고 설명했다.
미국 정부의 입장도 변수다. WSJ는 애플이 CXMT와의 거래에 따른 미국 내 정치적 역풍을 피하기 위해 백악관의 동의를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 국방부는 CXMT를 중국군(軍)과 연계된 기업 명단에 포함하고 있다. 일부 미국 정책 당국자들은 CXMT가 미국 기업의 주문을 받을 경우 미국의 기술 노하우와 추가 자금을 확보해 기술력을 높이고 미국 메모리업체 마이크론의 경쟁력을 위협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규제와 정치적 부담 외에 공급 여건도 변수다. CXMT 제품 상당수는 현재 마이크론과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제품과 비슷한 가격에 거래되거나 일부 제품은 오히려 더 높은 가격대에 판매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CXMT의 빠듯한 공급과 해외 경쟁사보다 높은 생산비용 등이 가격에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생산능력도 당장 대규모 신규 해외 고객을 확보하는 데 제약 요인으로 꼽힌다. CXMT는 올해 생산능력을 사실상 최대치까지 활용하고 있어 신규 해외 고객에 메모리칩 추가 물량을 공급할 여력이 크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CXMT의 성장세는 가파르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CXMT의 올해 2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8배 이상 늘었다. 글로벌 D램 시장에서 매출 기준 점유율도 7%까지 올라왔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의 닐 샤 연구원은 CXMT가 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으로 구성된 이른바 ‘메모리 빅3’ 진입 여부에 대해 “어떻게(how)가 아니라 언제(when)의 문제”라고 평가했다.
현재 CXMT는 바이트댄스(ByteDance)와 텐센트(Tencent), 샤오미(Xiaomi) 등 중국 기술기업에 우선적으로 메모리를 공급하고 있다. 특히 신규 공장 건설을 추진해 오는 2028년까지 현재 생산능력의 2배 이상으로 확대한다는 목표다.
다만 애플이 실제로 CXMT를 공급업체로 채택할지는 정해진 바 없다. 그럼에도 애플의 이번 테스트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마이크론 중심의 글로벌 메모리 시장에서 중국 업체의 입지가 한층 넓어질 가능성을 시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