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성분을 정량 검출하는 인공지능(AI) 설계 단백질 기반 검사키트 시제품 시연 영상. 김용호 교수 제공 [편집자주] 국민의 일상생활을 위협하는 감염병, 인공지능(AI) 위협, 재난재해 등이 더욱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화재, 선박 사고, 화학물질 폭발 사고, 마약 등도 뺄 수 없는 위협 요인이 되고 있다. 이처럼 국민들을 위협하는 생활안전 문제를 과학기술로 해결하기 위한 노력들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은 '국민생활안전종합지원단'을 구성하고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생활안전 문제를 과학기술로 해결하기 위한 연구 프로젝트를 지원하고 있다. 동아사이언스는 연구를 진행하는 연구기관이나 기업들의 노력을 현장에서 생생하게 전달한다. 국민들의 안전한 일상을 확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 국내 온라인 마약사범이 급증하고 신종 마약까지 확산하고 있는 가운데 소변 시료를 몇 방울만 떨어뜨리면 10초 만에 마약 성분을 정량 탐지할 수 있는 휴대용 신속검사키트 개발이 속도를 내고 있다. 2026년 말에서 2027년 초까지 시제품을 구현하고 빠르면 2027년 안에 경찰, 병원 등 현장에 보급하겠다는 구상이다.
이 같은 목표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행정안전부의 국민생활안전 긴급대응연구 과제를 진행중인 김용호 성균관대 나노공학과 교수를 지난달 29일 경기 수원 성균관대에서 만났다. 김 교수는 "신종 마약류 출현 속도가 매우 빠르고 구조가 계속 변형돼 기존 분석 기법으로는 검출과 규명이 어려운 실정"이라며 "신속하고 유연하게 설계할 수 있는 검출 기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신종 마약, 유사체 대응 까다로워
지난달 관세청에 따르면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태평양 지역 국가들이 올해 5~6월 마약 밀수 합동단속 작전을 벌인 결과 마약류 총 785건, 2100kg이 적발됐다. 케타민 등 신종 마약류가 가장 많았다.
신종 마약은 물질의 곁가지 구조만 조금 바꾸면 기존 검출 장비가 잘 인식하지 못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새로운 물질이 발견됐을 때 의약품인지, 오남용 가능성이 있는 마약류인지 즉시 판단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특히 벤조디아제핀 및 펜사이클리딘 계열 마약은 약물마다 구조가 유사하고 새로운 유사체에 대한 정확한 성분 판별이 어렵다.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과다 복용으로 인한 급증하고 10대 청소년 중독 사례가 증가하고 있는데 이 중 알프라졸람, 플루니트라제팜 등은 데이트 강간 약물로 불리며 성범죄와도 연계된다.
기존 항체 방식의 검사는 특정 마약을 검출하는 항체를 개발하기 위해 무작위 변이와 반복 선별을 거친다. 마약 한 종당 개발까지 약 1년 반이 소요되고 항체 선별에만 약 2억원이 쓰여 신속·유연한 대응이 어렵다. 또 항체 센서는 온도에 민감하고 습기에 취약해 현장에 적용하는 데 제약이 있다.
김 교수는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는 단백질을 생성형 인공지능(AI)으로 구현하는 '단백질 디자이너'로 뇌질환 치료제와 감염병 치료·진단용 단백질 등을 개발해 왔다.
김 교수팀은 마약 유사체들의 공통적인 골격과 결합하는 단백질을 컴퓨터로 직접 설계한다. 마약 분자의 화학적 특성과 공통 작용기를 분석하고 단백질 내부에 결합 공간을 설계한 뒤 실제로 마약 분자가 안정적으로 결합하는지 시뮬레이션한다.
수많은 후보 가운데 우연히 잘 결합하는 1대1 사례를 찾는 대신 단백질 하나가 여러 유사체에 대응하는 N대1 구조를 설계·제작하는 방식이다.
AI 단백질 기반 마약 검출 센서 칩과 키트 형태의 시제품 및 소변 시료. 이병구 기자 2bottle9@donga.com 개발된 센서는 KAIST 나노팹 등 반도체 제조 시설과 연계해 휴대용 키트 형태로 구현된다. 김 교수는 "검사 대상자가 실제로 무엇을 얼마나 복용했는지 빠르게 확인하는 장치"라며 "중독 치료 중인 사람이 다시 마약을 복용했는지 현장에서 반복적으로 확인하는 데 유용하다"고 말했다.이어 "대량으로 생산하면 키트 단가를 개당 1000원대까지 줄일 수 있다고 들었다"며 "일반인들이 직접 쓰기보다는 현장 경찰관과 마약 수사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의료 종사자 등이 사용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 빠른 임상·인증이 키트 조기도입 핵심
원천기술 연구자의 의지만으로는 상용 키트의 보급 시점을 약속하기 어렵다. 김 교수는 "검출 기술을 구현했다고 바로 경찰이 사용할 수 있는 게 아니다"라며 "임상 시료 확보, 이후 인증 절차 등이 연결되지 않으면 앞으로 갈 수 없다"고 강조했다.
현재는 식품의약품안전처가 합성·제공한 마약 표준물질을 정상인 소변에 섞어 실험하는 단계다. 실제 중독자의 투약 이력과 소변 시료 등을 확보하고 기관생명윤리위원회(IRB) 승인과 임상 성능 검증, 키트 개발 후 식약처의 진단기기 인증을 거쳐야 한다. 기존 규제를 푸는 형태가 아니라 빠른 진행이 가능한 별도 트랙이 마련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김 교수는 "장기적으로는 마약 중화 치료제 개발에도 관심이 있다"며 "마약 분자를 강하게 붙잡는 단백질이 있다면 센서에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체내에서 마약을 포획해 뇌로 이동하거나 수용체에 결합하는 것을 차단하는 치료제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용호 성균관대 나노공학과 교수. 김용호 교수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