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슨모빌 4년만에 최대 정제이익
홍해 리스크에 지속될진 불투명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 외곽 패서디나에 위치한 셰브론 정유공장. 로이터연합뉴스이란 전쟁으로 촉발된 중동 공급망 혼란이 글로벌 석유기업들에 막대한 ‘전쟁 특수’를 안기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국제 유가가 급등한 데다 항공유·디젤 등 정제유 가격과 정제마진까지 치솟으면서 메이저 석유기업들은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당시 이후 최대 수준의 실적을 올리고 있다. 다만 전쟁 장기화와 홍해 항로를 둘러싼 새로운 지정학적 위험, 고유가에 대한 각국 정부의 정치적 압박이 커지면서 이러한 호황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불확실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 전쟁 특수 누린 석유기업들10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미국 엑슨모빌과 셰브런, 영국 BP, 영국·네덜란드 합작사 쉘, 프랑스 토탈에너지 등 글로벌 메이저 5개 석유기업은 올해 2분기 총 458억달러의 순이익을 거둘 것으로 예상된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에너지 가격이 급등했던 이후 최대 규모이자 역대 세 번째 수준이다. 특히 엑슨모빌은 미국 멕시코만 연안 정제시설 확장 투자 효과에 힘입어 약 4년 만에 최대 정제 이익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됐다.
다른 국영 석유기업들도 호황을 누렸다.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는 2분기 조정 순이익이 334억달러로 전년 동기(252억달러)보다 33% 증가했다. 시장 예상치(311억달러)도 웃돌았다. 멕시코 국영 석유회사 페트롤레오스 메히카노스(페멕스)는 2분기 180억페소의 순이익을 기록하며 1년 만에 분기 흑자로 전환했다.원유 생산량도 늘리고 있다. 미국 셰일업체 다이아몬드백에너지는 생산량 전망을 상향 조정하며 하루 원유 생산량 목표를 최소 52만2000배럴로 높였고, 전체 생산량 전망도 하루 100만석유환산배럴(BOE) 이상으로 수정했다. ◇ 우회 수출·트레이딩이 한몫가장 큰 이유는 역사상 최대 수준의 공급 차질이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세계 원유 공급이 크게 줄면서 국제 유가는 급등했다. 원유 가격은 4월 말 배럴당 120달러를 넘었고 이후 다소 하락했지만, 정제유 시장은 여전히 강세를 유지하고 있다. 2분기 전체로 보면 브렌트유 평균 가격은 배럴당 약 97달러를 기록했다. 공급 차질 우려에 각국 정유사와 항공사들이 원유와 항공유 재고 확보에 나서면서 단순한 공급 감소보다 시장의 불안 심리가 가격을 더 끌어올렸다는 분석도 나온다.
우회 수출망을 확보한 기업들은 큰 수혜를 입었다. 아람코는 호르무즈 해협을 우회하는 동서 파이프라인을 통해 수출을 이어갔고, 홍해 연안 정유시설을 적극 활용해 정제마진이 높은 연료 수출을 확대했다. 대규모 트레이딩 조직을 보유한 기업들도 시장 혼란을 수익으로 연결했다. BP는 호르무즈 봉쇄 이후 항공유와 디젤 확보 경쟁이 치열해지자 지역별 가격 차이를 활용한 원유·석유제품 거래를 확대했고, 트레이딩 부문과 정제사업이 동시에 호조를 보였다. 쉘과 토탈에너지 역시 글로벌 에너지 트레이딩을 통해 높은 수익을 거둔 것으로 평가된다.
최근 원유 가격이 일부 안정된 이후에도 휘발유·디젤·항공유 등 정제유 가격은 쉽게 떨어지지 않고 있다. 브렌트유 가격이 배럴당 75달러 아래로 내려간 시기에도 정제유 가격은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러시아 정유시설이 우크라이나의 공격을 받으며 글로벌 석유제품 공급이 부족해졌고, 항공유와 디젤 확보 경쟁까지 겹치면서 정제마진이 높은 수준을 이어갔다. 블룸버그는 “현재 정제마진이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와 맞먹는 수준”이라고 분석했다. ◇ 홍해 전운은 변수이에 따라 유럽 일부 국가에선 석유기업에 횡재세를 부과하기 시작했다. 포르투갈 에너지기업 갈프는 2분기 조정 순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45% 증가한 5억4000만유로를 기록했다. 이에 포르투갈 정부는 석유 및 정유기업의 초과이익에 한시적으로 횡재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투자자들도 전쟁 특수에 베팅했다. 올해 들어 토탈에너지 주가는 30% 이상 상승했고, BP와 쉘은 20% 넘게 올랐다. 엑슨모빌과 셰브런 역시 약 25% 상승하며 에너지주 강세를 이끌었다.
하지만 향후 석유기업들의 전망은 낙관만 하기 어렵다는 평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유가 안정을 강조하며 석유기업들에 가격 인하를 공개적으로 압박하고 있다. 그는 SNS를 통해 “소비자용(소매) 석유 가격을 지금 당장 내려라”고 촉구했다. 홍해를 둘러싼 지정학적 위험도 커지고 있다. 예멘 후티 반군은 홍해를 이용하는 유조선을 공격하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 통행이 여전히 제한된 상황에서 홍해 공급망까지 장기간 차질을 빚을 경우 국제 에너지 시장은 다시 큰 충격을 받을 수 있다. 제임스 웨스트 멜리우스리서치 애널리스트는 “향후 2~3년 동안 항공유와 디젤 등 정제유 가격이 구조적으로 높은 수준을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