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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불러도 더 먹는 것, 식탐이 아닐지도 몰라요

먹는 행동을 탓하지 않고 다른 것으로 나를 달래기【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기자말

간호사로 일하며 3040 여성의 생활습관 전반을 코칭하는 사람입니다. 건강한 방식으로 사는 이야기를 이어가 볼게요.

코칭을 하다 보면, 배가 고파서가 아니라 '지금 안 먹으면 못 먹을 것 같아서' 먹는 분들을 자주 만납니다. 뷔페에서 이미 배가 부른데도 접시를 한 번 더 채우게 되는 마음, 마감 세일이라는 말에 딱히 필요 없는 걸 사게 되는 마음과 비슷해요. 심지어 나중에 버리게 될 걸 알면서도, 그 순간에는 사는 걸 참지 못하기도 하죠.

C씨가 그랬습니다. C씨는 매 끼니를 꼼꼼하게 기록하고, 스스로를 돌아보는 힘이 있는 분이었어요. 그런데 기록을 들여다보면 반복되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배가 부른 상태에서도 자꾸 더 먹게 되는 순간들. 공통점이 있었어요. 먹고 싶어서가 아니었습니다. 지금 먹어두지 않으면 나중에 못 먹을 것 같다는 불안이 먼저 왔거든요. C씨의 해외 출장 중에 남긴 기록에 이런 말이 있었어요.

"내일 이 도시를 떠나면 이 훠거를 다시 못 먹을 것 같았어요. 여기가 아니면 더는 못 먹을 것 같다는 생각이 너무 강하게 들었거든요. 이미 충분히 배가 불렀는데도 1인분을 더 시켜서 먹었어요."

사실 그 훠거가 그렇게 희소한 건 아니었어요. 다음 도시에서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었을 거예요. 그런데 C씨의 머릿속에서 그건 지금 이 순간 먹지 않으면 영영 사라지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실제로 희소한 게 아닌데, 희소하다고 느끼는 것. 코칭을 이어가면서 C씨가 스스로 꺼낸 말이 있었어요.

"저는 생각보다, 먹고 싶다는 생각으로 먹기보다 먹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으로 먹을 때가 많은 것 같아요."

현재보다 미래를 먼저 사는 사람. 그게 C씨였습니다. 그런데 왜 이런 회로가 만들어졌을까요. 이야기를 더 들어보니 어린 시절 이야기가 나왔어요.

C씨의 어머니는 먹는 것에 굉장히 엄격한 분이었어요. 어머니 본인이 체질적으로 약한 편이라, 뭘 먹느냐가 몸을 좌우한다는 걸 늘 몸소 겪으신 분이었거든요. 그래서 불량식품은 당연히 안 됐고, 뭘 얼마나 먹을지 하나하나에 기준이 있었습니다. C씨는 그 기준 안에서, 늘 원하는 걸 참는 게 익숙한 아이였어요. 먹고 싶은 걸 말하기 전에 이미 '이건 안 되겠지' 하고 접는 게 먼저였던 거죠

원하는 걸 참는 것. 그게 C씨에게는 너무 오래된 기본값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건 C씨만의 이야기가 아니에요.

발달심리학자 리앤 버치(Leann Birch)의 아동 섭식 연구에는 이런 발견이 있어요. 아이에게 어떤 음식을 강하게 막을수록, 그 아이는 그 음식을 덜 원하게 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원하게 된다는 거예요. 통제가 강했던 아이일수록, 배가 고프지 않아도 그 음식이 눈앞에 있으면 더 많이 먹었고요. 막았기 때문에 더 먹는 것. 부모의 의도와 정확히 반대되는 결과였습니다.

연구자들은 그 이유를 이렇게 봐요. 어른이 대신 조절해주는 동안, 아이는 스스로 조절해볼 기회를 갖지 못한다고요. 얼마나 먹을지, 언제 멈출지를 몸으로 익히는 대신 바깥의 기준을 따르는 법부터 배우게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통제는 음식을 막은 게 아니라, 스스로 조절하는 연습을 할 기회를 막은 셈입니다.

▲  자책을 내려놓으면, 그 자리에 비로소 질문이 생겨요.
ⓒ chuttersnap on Unsplash

물론 이건 어머니가 잘못했다는 이야기가 아니에요. 아이를 위한 최선이라고 믿었던 방식이, 아이 안에서는 다르게 저장됐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 배가 불러도 1인분을 더 시켜 먹었던 것도 단순한 식탐이 아니었어요. 드디어 내가 원하는 걸 선택할 수 있다는 감각, 그리고 이 기회를 놓치면 또 참아야 할지 모른다는 오래된 긴장감이 함께 작동하고 있었던 거예요.

몸은 자랐지만 그 긴장감은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언제 또 먹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 지금 먹어두지 않으면 기회가 사라진다는 감각. 어릴 때 내가 통제할 수 없었던 게 많았던 사람일수록, 내가 쥘 수 있는 걸 꽉 쥐려고 하거든요. 못 먹게 될 것 같은 불안을 지금 먹는 것으로 붙잡으려는 것. 그게 C씨에게는 가장 익숙한 방식이었어요.

그래서 저는 C씨에게 간식을 줄이라거나 양을 조절하자는 말을 먼저 꺼내지 않았습니다. 대신 이렇게 물었어요.

"지금 이게 먹고 싶어서인가요, 아니면 나중에 못 먹을까 봐 불안한 건가요?"

처음에는 그 둘을 구분하는 게 쉽지 않았어요. 불안이 너무 익숙해져 있어서, 그게 불안인지도 모르고 살아왔던 거거든요. 그런데 패턴을 알아차리는 게 끝이 아니었어요. C씨처럼 스스로를 잘 들여다보는 사람일수록, 알아차린 다음에 바로 다른 문이 열리더라고요.

"건강을 쉽게 놓는다. 어리석다."
"먹는 걸로 하루를 다 낭비한 기분이에요."
"결국 이렇게 됐네요. 저는 안 될 것 같아요."

기록 속에 남아 있던 문장들이에요. 음식 앞에서 무너진 것보다, 무너진 자신을 향해 꺼내는 이 말들이 저는 더 마음에 걸렸습니다. 패턴을 발견한 순간, 그걸 고칠 생각보다 그런 자신을 탓하는 쪽으로 먼저 가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저는 C씨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어리석은 게 아니에요. 오늘 몸이 한계였던 거예요. 그 상태에서 기록까지 남긴 게, 이미 나를 포기하지 않은 거예요."

패턴을 아는 것보다, 그 패턴이 올라올 때 자신을 다르게 대하는 연습이 먼저였습니다. 그 이후로 C씨가 달라진 건 식단이 아니었어요. 언어가 먼저 달라졌습니다. 어느 날 기록에 이런 문장이 남았어요.

"이제 탓하지 않고 받아들임."

짧은 문장이었어요. 그런데 저는 그 문장을 읽으면서 잠깐 멈췄습니다. 같은 상황인데 자신을 대하는 방식이 달라진 거니까요. 조금 더 지나서는 이런 기록이 남았어요.

"오늘은 음식 대신 따뜻한 목욕으로 나를 달래봤어요. 사실 내가 진짜 원했던 건 그거였던 것 같아요."

음식으로 자신을 달래던 자리에, 다른 것들이 하나씩 들어오기 시작한 거예요. 억지로 참은 게 아니었어요.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뭔지를 처음으로 물어보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자책을 내려놓으면, 그 자리에 비로소 질문이 생겨요. 나는 지금 뭐가 필요한 걸까. C씨의 변화는 거기서 시작됐습니다.

혹시 배가 부른데도 자꾸 더 먹게 되는 순간이 있다면, 한번 스스로에게 물어봐 주세요. 이건 먹고 싶은 걸까, 아니면 나중에 없을까 봐 불안한 걸까. 그 질문 하나가, 나를 탓하는 자리에 다른 문 하나를 열어줄지도 몰라요.

덧붙이는 글 | 본문의 아동 섭식 관련 연구는 발달심리학자 리앤버치(Leann Birch)의 연구를 참고했습니다.
이글은 향후 저자의 책 등 다른 창작물에 일부 활용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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