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6월 메모리 등 부품 가격 폭등을 “100년 만의 홍수”라고 표현하며 “가격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예고했다. / EPA=연합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투자 확대가 전 세계 메모리 반도체 공급난으로 번지면서 애플을 비롯한 전자업체와 자동차·의료 기기 업체들이 미국 정부에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AI 기업들이 대규모 데이터센터 구축을 위해 메모리를 대거 사들이자 가격이 급등했고, 한정된 공급 물량을 둘러싼 업계의 로비전도 워싱턴으로 확산하는 모양새다.
10일(현지 시각)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최근 전자업체와 자동차·의료 기기 업체들은 정부가 필요한 메모리 물량을 확보할 수 있도록 개입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업계 관계자는 2022년 반도체지원법 지원금을 받는 반도체 업체에 AI 외 산업에도 일정 물량을 공급하도록 조건을 붙이는 방안을 제안했다. 특정 제품 생산이나 정부 정책 협조를 강제할 수 있는 국방물자생산법(DPA)을 활용해 메모리를 일반 산업에 우선 배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애플도 공급난에 대한 우려를 공개적으로 드러냈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실적 발표에서 현재 메모리 가격 상황을 “100년에 한 번 있을 홍수”에 비유하며 가격이 기하급수적으로 뛰고 있다고 지적했다. 애플은 최근 제품 가격 인상 배경 중 하나로 메모리 공급난을 지목하기도 했다.
미 정부의 고민도 커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메모리 공급을 일반 산업에 돌리면 전자제품과 자동차 가격 상승을 억제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지만, 동시에 데이터센터에 필요한 메모리 공급이 줄어 중국과의 AI 경쟁에서 미국 기업의 발목을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백악관 등이 실제 시장 개입에 나설지는 아직 불투명하다고 NYT는 전했다.
공급난은 단기간에 해소되기 어려울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부족 현상이 향후 2년간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AI 기업들은 높은 가격에도 메모리를 사들일 여력이 있지만, 가전·자동차·의료 기기 업체들은 비용 상승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에 메모리 부족이 전자제품뿐 아니라 자기공명영상(MRI) 장비 같은 의료 기기의 가격 상승과 생산 차질로까지 번질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