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룽지 중국 총리가 2003년 3월 5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개막식에서 임기 마지막 정부 업무보고를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중국 경제개혁을 설계하고 집행한 핵심 인사인 주룽지 전 중국 총리가 12일 사망했다. 향년 98세.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이날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와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국무원,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공동 명의의 부고를 통해 주 전 총리가 베이징에서 병환으로 치료를 받던 중 오전 11시 6분(현지시간) 별세했다고 밝혔다. 중국 당국은 그를 “중국공산당의 우수한 당원이자 오랜 시련을 견뎌온 충실한 공산주의 전사, 뛰어난 무산계급 혁명가·정치가, 당과 국가의 탁월한 지도자”라고 평가했다.
1928년 10월 후난성 창사에서 태어난 그는 1951년 칭화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했다. 로이터통신은 이날 주 전 총리의 부고 기사에서 1987년 상하이시장에 임명된 그가 상하이가 현재와 같은 세계적인 금융 중심지로 거듭나는 첫걸음을 이끌었다고 전했다.
1991년부터 1998년까지 국무원 부총리, 이후 2003년 초까지 총리로 재임한 주 전 총리는 개혁 성향의 정치인이자 청백리의 상징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총리 재직 당시 기득권층의 강력한 저항을 뚫고 국영기업 구조조정을 단행해 중국 국민에게 지지를 받았다.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이끈 핵심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2001년 WTO 가입 협상을 사실상 총괄하며 중국 시장의 대외 개방을 확대했고, 중국이 세계 경제체제에 본격적으로 편입되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후 중국은 수출과 외국인 투자를 기반으로 ‘세계의 공장’으로 급부상했다.
주 전 총리는 부정부패 척결에도 강한 의지를 보였다. 그는 재임 시절 “퇴임 이후 인민들이 나를 부패한 관리가 아니라 청렴한 관리로 알아주기만 하면 그것으로 만족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강력한 반부패 행보로 ‘현대판 포청천(包青天)’이라는 별칭을 얻었으며, 기득권층의 거센 저항에 맞서 “100개의 관을 준비하라. 99개는 탐관의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내 것”이라는 말을 남긴 것으로도 유명하다.
친인척 관리에도 엄격했다. 친지들의 인사 청탁을 일절 받아들이지 않았을 뿐 아니라 공직에 진출한 친인척을 승진 대상에서 제외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고향 창사의 공무원들이 모친의 묘를 새로 단장하려 하자 이를 엄하게 꾸짖고, 친척들에게도 경거망동하지 말라는 취지의 편지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경제정책은 성과뿐 아니라 강한 추진력으로도 이름을 남겼다. 국내외에서는 그를 ‘중국의 경제 차르’, ‘철면 총리’라고 불렀다. 다만 주 전 총리 자신은 이런 별칭을 두고 “기분이 좋지 않다”고 밝힌 적도 있다.
주 전 총리는 2003년 3월 총리직에서 물러난 뒤 공개 활동을 크게 줄였다. 신화통신은 그가 퇴임 이후에도 중국의 개혁·개방과 반부패 정책을 지지해왔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