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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차 200대도 못 당한 극한가뭄 경남…“물 6천ℓ 5분 만에 끝”

[현장] 사상 두 번째 ‘가뭄 국가소방동원령’
폭염이 가뭄을, 가뭄이 폭염을 키우는 복합재난
경남소방본부 사천소방서 소방물탱크차들이 12일 오전 경남 사천의 논에 물을 공급하고 있다. 경남소방본부 제공 경남소방본부 사천소방서 소방물탱크차들이 12일 오전 경남 사천의 논에 물을 공급하고 있다. 경남소방본부 제공
“밀양엔 태어나서 처음 왔어요. 소방차 물을 논에 뿌리는 것도 처음이고요.”

강원소방본부 홍천소방서 소속 김명학(소방장) 소방관이 12일 오전 소방물탱크차인 홍천2호에 실어온 밀양강 강물을 경남 밀양시 부북면 청운리 조아무개(56)씨 논에 뿌리며 “벼가 상하지 않도록 평소 불을 끌 때 수압의 3분의 1 정도로 수압을 낮춰 물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강원 홍천 소방관 “새벽 4시에 나왔어요”
함께 온 정병재(소방교) 소방관은 “오전 9시까지 밀양에 집결하라는 지시를 받았기 때문에, 새벽 4시 집에서 나와 새벽 5시 홍천에서 출발했다. 메마른 논에 물을 공급하는 것도 소방관의 지원활동 중 중요한 업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강원소방본부 홍천소방서 소속 김명학(앞)·정병재 소방관이 12일 오전 소방물탱크차에 실어온 강물을 경남 밀양시 부북면 청운리 논에 공급하고 있다. 최상원 기자 강원소방본부 홍천소방서 소속 김명학(앞)·정병재 소방관이 12일 오전 소방물탱크차에 실어온 강물을 경남 밀양시 부북면 청운리 논에 공급하고 있다. 최상원 기자
푸석푸석한 논바닥으로 흘러든 물은 금세 땅속으로 스며들며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6천리터의 물을 쏟아부었지만 오랜 가뭄에 시달린 논을 적시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논 옆 농수로도 바짝 말라서 바닥이 드러나 있었다. 물을 퍼올리던 양수기도 멈춰 서 있었다. 채 5분도 지나지 않아서 물을 모두 뿌린 홍천2호는 잠시 쉴 틈도 없이 다시 물을 뜨러 밀양강으로 달려갔다.

“밀양에 평생 살았어도 이런 긴 가뭄 처음”
김태용(64) 청운리 이장은 “작년에는 물난리를 겪었는데, 올해는 가뭄 때문에 고생이다. 한평생 밀양에서 살았는데 이렇게 긴 가뭄은 처음이다. 오늘 아침 태어나서 처음으로 기우제도 지냈다. 오늘은 소방관들의 도움으로 잠시 견딜 수 있겠지만 계속 도움을 받을 수도 없고, 그저 하늘이 야속할 뿐이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경기·강원소방본부 소속 소방물탱크차들이 12일 오전 경남 밀양시 밀양강 둔치에서 강물을 퍼올리고 있다. 최상원 기자 경기·강원소방본부 소속 소방물탱크차들이 12일 오전 경남 밀양시 밀양강 둔치에서 강물을 퍼올리고 있다. 최상원 기자
소방청은 지난 11일 저녁 8시 국가소방동원령을 발령해, 전국 16개 시·도 소방본부의 소방물탱크차 200대와 소방관 400명을 극심한 농업가뭄을 겪고 있는 경남에 투입했다. 동원된 소방물탱크차는 12일 오전 9시 경남 14개 지역에 분산배치돼 13일까지 이틀 일정으로 급수 지원활동에 나섰다. 가뭄 때문에 국가소방동원령이 발령된 것은 지난해 강원 강릉에 이어 사상 두번째다. 국가소방동원령은 재난 발생 우려가 크거나 재난이 발생해 해당 시·도 소방력만으로 대응하기 어렵다고 판단될 때 전국 소방력을 동원하는 조처다.

7월 강수량 평년의 23%
경남은 지난 6월 중순부터 두달째 가뭄을 겪고 있다. 특히 지난달 강수량은 평년의 23% 수준인 73.4㎜에 그쳐, 1973년 전국 통합 기상관측을 시작한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12일 현재 경남 569개 농업용 저수지의 평균 저수율은 밀양 25.2%, 김해 26.2%, 함안 26.7% 등 33.3%로 떨어진 상태다. 경남 18개 시·군 가운데 함양군을 제외한 17개 시·군이 농업용수 가뭄 단계에 진입했고, 밀양·함안·거제 등 3개 시·군은 최고 단계인 ‘심각’ 단계가 발령됐다. 이 때문에 이미 2121㏊의 농경지에서 벼·콩·고추·단감·사과·배·키위 등 농작물이 제대로 익기 전에 마르거나 쪼그라드는 등 피해를 봤다.

최근 경남 등 남부지방에서 가뭄에 심화된 가장 큰 이유는 이 지역의 절대적인 강수량 자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올해 남부지방은 장마가 평년보다 많이 늦은 6월30일 시작했는데, 경남은 7월 강수량이 평년의 23% 수준인 73.4㎜에 그치는 등 장마 기간 내내 비가 거의 안 왔다. 최근 3개월로 넓혀봐도, 부산·울산·경남 지역에 온 비는 누적 303.3㎜로 평년의 46.7% 수준에 불과하다.

경기·강원소방본부 소속 소방물탱크차들이 12일 오전 경남 밀양시 밀양강 둔치에서 강물을 퍼올리고 있다. 최상원 기자 경기·강원소방본부 소속 소방물탱크차들이 12일 오전 경남 밀양시 밀양강 둔치에서 강물을 퍼올리고 있다. 최상원 기자
대신 이 기간 경남을 중심으로 역대급으로 강도 높은 폭염이 이어졌다. 8월 들어선 뒤에도 비가 거의 오지 않은 상태다. 12~14일 동해안 중심으로 최대 50㎜ 강수가 예고돼 경남권 내륙 등에도 비 소식이 있지만 해갈에 충분할 양이 될지는 미지수다.

전문가들은 폭염과 가뭄이 서로를 강화하며 발생한 ‘복합재난’의 위험을 지적한다. 예상욱 이화여대 교수(기후에너지시스템공학과)는 남부지방 가뭄에 대해 “가뭄으로 달구어진 지면의 열이 폭염을 강화시키고, 강해진 폭염이 다시 지면 토양 수분을 고갈시키는 등 가뭄과 폭염이 서로 상호작용을 통해 매우 강한 강도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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