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설한 문화놀이터 이용 2.5배 ↑
음주 금지로 인근 ‘풍선효과’ 해석
단속은 한계… 교류 공간 보장돼야
12일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노인들이 벤치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다. 이영진 기자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1년 전만 해도 장기판을 둘러싼 노인들로 북적였던 공원은 한결 조용해진 모습이었다. 정자 안에서는 노인 10명가량이 누워 잠을 청하거나 물을 마셨고, 나무 그늘 아래에는 먼 풍경을 바라보는 노인들이 서너명 앉아 있었다. 공원 관계자는 무료급식이 끝나는 점심시간 이후면 노인들이 한꺼번에 빠져나간다고 전했다. 은퇴 후 4년 전부터 탑골공원을 자주 찾았다는 정모(70)씨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장기를 두거나 구경하는 사람들로 공원이 활기찼는데, 장기판 철거 이후 그 많던 노인이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어 “연락처도 없이 그날그날 만나 말이나 나누던 낯익은 얼굴들이 지난해 여름 이후 안 보인다”고 덧붙였다.
탑골공원의 풍경이 달라진 건 지난해 7월 장기판 철거 이후다. 음주와 흡연, 장기판을 둘러싼 다툼과 소란이 반복되자 종로구는 지난해 7월 31일부터 탑골공원 안팎에서 바둑·장기 등 오락행위와 흡연, 음주가무 등을 전면 금지했다.
장기판 철거 이후 탑골공원 일대 112 신고는 줄었다. 곽상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찰청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탑골공원을 관할하는 종로2가지구대의 올해 1~7월 112 신고는 1만1181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만2097건)보다 916건(7.6%) 감소했다. 공원 안전관리 직원도 “안내사항을 어겨 계도하는 경우가 가끔 있지만 예전보다 드물다”고 설명했다.
장기판이 사라지자 탑골공원 노인들의 하루는 무료급식 시간을 중심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이날 인근 무료급식소가 오전 11시에 나눠준 점심 배식식권 250장은 10분 만에 동났다. 설모(86)씨는 “아침에 받은 주먹밥을 챙겨놓고 근처에서 4시간가량 시간을 보내거나 산책하다 집으로 돌아간다”고 말했다.
공원에서 장기를 못 두게 하자 장기를 두는 노인들은 인근 실내공간으로 옮겨갔다. 장기를 두던 노인들을 위해 공원 맞은편에 마련된 ‘탑골 어르신 문화놀이터’는 50~60명의 노인으로 가득 찼다. 종로에서 30년 동안 장기를 뒀다는 박모(85)씨는 “처음에는 공원 안에서 두다가 못하게 해서 밖에서 두고, 거기서도 못하게 하니 종묘시민광장으로 가는 등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신세였다”며 “문화놀이터가 생긴 뒤에는 이곳을 자주 찾는다”고 말했다. 종로구에 따르면 문화놀이터의 월별 이용객은 문을 연 지난 2월 1353명에서 7월 3427명으로 5개월 만에 2.5배 증가했다.
반면 탑골공원에 인접한 종묘와 동묘 관할에서는 같은 기간 112 신고가 16%씩 증가했다. 종묘를 관할하는 종로5가파출소 112 신고는 지난해 1~7월 4374건에서 올해 같은 기간 5103건으로 729건(16.7%) 증가했다. 동묘파출소 신고 역시 같은 기간 4252건(지난해)에서 4951건(올해)으로 699건(16.4%) 늘었다. 탑골공원 관할 지구대의 112 신고가 줄어든 것과는 대조적인 흐름이다. 이런 흐름을 두고 탑골공원에서 밀려난 노인이 인근 지역으로 이동하며 ‘풍선효과’가 나타난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된다. 한 종로경찰서 관계자는 “탑골공원에서 음주를 금지한 이후 일부 술을 마시는 노인들이 자리를 옮기며 112 신고가 늘어난 것 같다”며 “단속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지역사회와 복지기관 등과 함께 접근해야 하는 문제”라고 설명했다. 다만 종묘와 동묘 인근 112 신고 증가는 이 지역에 최근 청년층 등의 방문이 많아진 영향도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경찰은 112 신고 대상자의 연령이나 신고 유형을 세부적으로 분류하고 있지는 않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장기판을 매개로 형성됐던 사회적 관계가 축소된 상황에서 노인들이 교류하고 머물 수 있는 공간을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