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다시 그의 시를 읽을 시간 [새로 나온 책]

〈시사IN〉 기자들이 직접 선정한 이 주의 신간. 출판사 보도 자료에 의존하지 않고 기자들이 꽂힌 한 문장.

물빛인쇄소



함민복 지음, 창비 펴냄

“꽃은/이별의/한복판이다”

인터넷에서 지도를 검색했더니 정말 있다. 물빛인쇄소 펜션. 1996년 아무 연고 없는 강화도에 들어가 살던 시인은 동네 사람들과 자주 어울렸고, 개업하는 펜션 주인이 작명을 부탁해왔다. 펜션 이름을 지었고, 나중에 시를 썼다. ‘잔잔 잔잔 제 몸을 구부려/반짝 반짝 빛을 출력하는 바다’라는 연으로 시작하는 시를. 13년 만에 펴내는 여섯 번째 시집의 제목으로 삼았다. 1988년에 등단해 시집 여섯 권을 냈으니 과작이다. 따뜻한 서정의 언어로 소외된 삶의 풍경을 노래해왔다. 인간과 자연의 교감에서 출발한 시선은 갈등과 대립의 시대를 향한 통찰로 나아간다. 추천사를 쓴 이대흠 시인은 “다시 그의 맑음에 항복한다”라고 썼다. 다시 함민복의 시를 읽을 시간이다.



주식의 시대



EBS 다큐프라임 〈주식의 시대〉 제작진 지음, 위즈덤하우스 펴냄

“젊은이들이 비록 위험이 크더라도 레버리지 투자를 감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수백만 조회수를 기록한 EBS 다큐프라임 〈주식의 시대〉가 책으로 나왔다. 이 다큐멘터리가 나왔을 때 많은 공감을 받은 댓글 중 하나는 “진짜 내 돈 걱정해주는 건 부모님이랑 EBS뿐이네”였다. 개인투자자가 1500만명에 이르고 국내외 증시 정보가 넘쳐나는 그야말로 ‘주식의 시대’에서 책은 “방향을 잡을 나침반” 구실을 자처한다. 책이 던지는 질문은 크게 두 가지다. ‘우리는 왜 투자에 실패할까?’ ‘AI 버블, 역사는 반복될까?’ 각자의 필요에 따라 얻는 답은 달라지겠지만, 책은 숫자로만 보이는 시장 너머에 “수익을 찾고자 하는 대중의 심리가 있다”는 사실을 통시적으로 분명하게 보여준다.



인생의 단맛을 보여주마



김영민 지음, 김영사 펴냄

“그래도 가끔, 아주 가끔 신이 인간의 얼굴을 하고 나타나 당신에게 느닷없이 친절을 베풀 거예요.”

쓰디쓴 인생에 단맛을 보여주겠다고 장담하는 책이 있다. 우리에게 ‘배움’이란 무엇인가를 알려주던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김영민 교수가 낸 소설집이다. 열두 편의 이야기는 하나같이 어딘가로 홀린 듯 질주한다. 희대의 아부 전문가는 독재자의 심장을 향해, 만국의 내향인은 외향인의 세계를 전복하기 위해, 태어남과 동시에 낙하하기 시작한 인간이 완전히 삶의 확실성으로 향하는 과정까지. 질주의 막바지에 저자는 묻는다. 이 미친 세상에서 무엇을 위해 살다가 무엇을 위해 죽을 것인가. 그렇기에 말맛과 유머로 점철된 소설은 전혀 가볍지 않다. 인생의 쓴맛을 끝까지 응시한 자만이 보여줄 수 있는 단맛을 맛볼 차례다.



애거사 크리스티 미스터리



마리 베니딕트 지음, 백지민 옮김, 문학동네 펴냄

“나 자신에게 완벽한 결말을 써내겠다고 약속한다.”

‘추리소설의 여왕’으로 불렸던 그녀, 애거사 크리스티.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오리엔트 특급 살인사건〉 등 크리스티의 대표작은 수많은 언어로 번역되었을 뿐만 아니라 최근에도 거듭 영화나 드라마로 제작된다. 그런데 정작 그녀 자신이 미스터리의 주인공이 되었으나 진상은 밝혀지지 않은 사건이 있다. 대표작 중 하나로 추리소설의 형식을 또 한번 무너뜨렸다는 평판을 얻은 〈애크로이드 살인사건〉 발표 직후, 크리스티가 “드라이브를 다녀오겠다”라며 집을 나선 뒤 홀연히 사라졌다가 11일 후 어떤 호텔에서 발견되었다. 역사 속 여성들의 삶에 독창적 상상력을 더한 소설로 전 세계에 이름을 알린 작가 마리 베니딕트가 그 열하루의 공백을 자신의 대담한 상상력으로 채워 넣었다. 저자는 그 실종을 한 여성이 자신의 삶과 존엄을 되찾기 위해 감행한 선택으로 해석한다.



구름들



에드워드 그레이엄 지음, 서정아 옮김, 아트북스 펴냄

“구름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빛과 바람의 흔적을 품고 끊임없이 태어나는 구름 덕분에 하늘은 지루할 틈이 없다. 대기과학자인 저자는 인간이 하늘을 이해하기 위해 축적해온 과학 지식 위에 예술을 포개 읽는다. 구름은 특히 예술가들에게 단순한 기상 현상이 아니었다. 1680년대 런던에서 구름 스케치 연작을 그린 해양화가 빌럼 판 더 펠더는 자신의 일을 ‘하늘하기(skoying)’로 표현하곤 했다. 과학자들에게도 명화 속 하늘은 연구할 수 없는 시기를 보충하는 일종의 관찰 노트가 되어준다. 21세기 하늘은 비관을 품고 있다. 오늘날 ‘하늘하기’는 기후위기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좋든 싫든 우리는 구름을 만든다.” 인간은 대기의 성질까지 바꿔놓았다. 책을 열면 구름이라는, 지구의 섬세한 신호를 읽는 다정한 방법이 아름답게 펼쳐진다.



저출생 우생학 사회



이주희 지음, 은행나무 펴냄

“저출생은 구조적 우생학이 축적된 결과다.”

한국 저출생의 핵심은 출생률 자체에 있지 않다. 동일한 사회에서 어떤 사람들은 여전히 아이를 낳고, 어떤 사람들은 그 가능성에서 멀어지고 있다. 그 이유를 좇는 과정에서 저자는 안정된 고용, 경제적 안전성, 적절한 주거 환경 등 시간과 자원을 갖춘 이성애 부부 중심의 사회구조를 돌아본다. 이런 조건을 갖춘 집단만 안전하게 아이를 낳고 기를 수 있는 한국 사회의 구조는 부모를 지원하기보다 선별해왔다. 정상 부모를 선별하는 이런 사회구조를 구조적 우생학이라 정의한다. 구조적 우생학 사회에서 소득 격차는 출산 가능성을 가르는 가장 직접적인 기준이 되고 성차별은 소득 불평등과 결합해 현상을 강화한다. 재생산이라는 자연스러운 욕구가 계층과 성별에 따라 차별적으로 충족되는 사회에 대한 이야기다.

그냥 목록으로
원문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