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서울 서초구의 한 시중은행 임시 부스에서 열린 디에이치방배 아파트 잔금 대출 서류 접수 현장. 전날 선착순 대출 신청에 성공한 입주 예정자 외에도 일부가 “현장 대출 접수가 가능하냐”며 몰려 북새통이었다. 전날 오후 1시에 풀린 이 은행 대출 한도 1000억원은 반나절 만에 마감됐다. 이 과정에서 신청을 접수해 주던 대출 모집인들의 전화가 불통되자, 일부 시민은 분통을 터뜨렸다. 다음 달 입주를 앞둔 3064가구 강남 대단지에서 ‘선착순 대출 경쟁’이 벌어진 것이다.
그래픽=김성규올 들어 금융 당국이 관리하는 은행의 연간 가계 대출 총량 목표가 사실상 소진되면서, 고객의 담보와 소득이 충분하고 대출을 취급할 여력이 있어도 은행들은 창구를 닫아야 할 상황이다. 당장 입주를 앞둔 단지들이 유탄을 맞았다. 서울 반포 래미안 트리니원(2091가구)이 이달 입주하고, 강북권에서 은평구 힐스테이트 메디알레(2451가구)가 10월에 입주하는데, 이들 대형 단지를 중심으로 비상이 걸렸다.
최근 서울과 경기 대단지 아파트 입주 예정자 사이에선 잔금 대출 모집인과 통화 연결 자체가 힘들다는 원성이 나온다. 입주 예정자 단체 대화방 등에 ‘대출 신청 안내 문자를 받고, 몇 초 만에 대출이 마감됐다고 하더라’는 사례가 속출했다. 일부 단지에서는 은행이 접수 창구를 단일화하면서 2~3명 정도인 대출 모집인이 전화를 받지 않으면 온라인 신청이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대출 금리와 조건을 비교해 고를 여유는 사라지고, 일단 접수부터 해놓고 나중에 조건을 확인하는 식의 대출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이미 수도권 곳곳으로 번졌다. 다음 달 입주하는 경기도 부천시 송내역 푸르지오 센트비엔(1045가구)에서도 은행들의 대출 결정액이 550억원에 그치면서 입주 예정자들이 불안해하고 있다. 이 아파트 전문 중개소 관계자는 “잔금 대출에 대한 불안감이 겹치면서 입주를 포기하고 매물로 내놓는 사람도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 연이은 부동산 대책으로 인해 대출액이 2억원으로 제한된 아파트에서도 입주 자금이 부족하다는 불만이 나온다. 강남의 한 고가 아파트 단지 중개소 관계자는 “고소득 전문직 입주민 중에서도 자금 마련을 위해 사채까지 끌어다 쓴 경우가 있다고 들었다”고 했다. 대출이 막히면서 전세를 놓거나 매수자를 찾는 것까지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게 현장의 설명이다.
이런 상황을 우회하는 단지는 몇 곳 안 된다. 지난달 23일 부동산 정책 국민대토론회에서 입주 예정자가 잔금 대출 문제를 호소하고 이재명 대통령이 대책 마련을 지시한 경기 수원 매교역 팰루시드 아파트(2178가구)에는 5대 은행이 당국 지도로 총 5000억원 규모를 공급하는 방안이 추진됐다. 최근 충남 아산의 한 아파트는 대출 물량 배정이 지연되자 시청 측에서 은행들을 설득해 대출 한도를 늘리기도 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 입장에서도 대출을 해주고 싶지 않은 게 아니다”라고 했다. 연말까지는 아직 4개월 이상 남았고, 잔금 대출을 늘릴수록 다른 가계 대출을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시중은행 고위 관계자는 “특단의 대책이 없이는 실수요자 피해가 커지고 공급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했다.
이달 경기 평택 브레인시티 대광로제비앙 모아엘가(1700가구), 다음 달 창원 센트럴아이파크(1509가구) 등 대단지 입주가 이어지는 가운데, 소형 아파트 단지에서도 “규모가 작다는 이유로 홀대받아 대출이 안 나오고 있다”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