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에 위치한 네비우스 데이터센터 모습. /네비우스인공지능(AI) 투자 과잉 우려로 짓눌렸던 시장에 낙관론이 다시 번지고 있다. AI 학습과 연산에 필요한 그래픽처리장치(GPU)를 전문으로 빌려주는 클라우드 업체와 AI 서버 제조사의 매출·수주가 나란히 급증하면서다. 이는 AI 인프라 수요가 여전히 견고하다는 점을 확인해 준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빅테크가 예고한 천문학적 액수의 투자 계획이 실제 GPU 임대와 장기 계약, 매출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AI 인프라 수요, 숫자로 확인
훈풍은 AI 전용 데이터센터를 운영하는 ‘네오클라우드(Neocloud)’ 업계에서 시작됐다. 네오클라우드는 엔비디아 GPU를 대규모로 확보해 빅테크와 AI 개발사, 일반 기업에 연산 능력을 빌려주는 AI 전문 클라우드 업체다. 고객에게 실제 컴퓨팅 용량을 제공해야 매출로 인식되는 만큼, 이들의 실적은 발표된 투자 계획을 넘어 실제 AI 연산 수요가 얼마나 발생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로 꼽힌다.
대표적 네오클라우드 업체가 코어위브다. 이 회사는 지난 11일 올 2분기에 25억7500만달러(약 3조650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전년 동기보다 112% 증가한 수치다. 매출 증가세보다 놀라운 것은 향후 몇 년간 수요를 보여주는 수주 잔고다. 코어위브의 2분기 말 기준 수주 잔고는 1042억달러로, 분기 매출의 40배에 달했다. 3분기 들어서도 250억달러 이상의 계약을 체결했다. 마이클 인트레이터 코어위브 최고경영자(CEO)는 미 경제 매체 CNBC에 “(3분기에 계약한) 250억달러는 1년 전 전체 수주 잔고와 맞먹는 금액”이라며 “제품 수요가 얼마나 크고 빠르게 증가하는지 보여준다”고 했다.
다른 네오클라우드 업체인 네비우스 역시 2분기 전년 동기 대비 454% 증가한 5억8230만달러 매출을 기록했다. 이미 체결한 계약액도 400억달러를 넘는다. 아르카디 볼로즈 네비우스 CEO는 “지금 당장이라도 2027년까지 공급 예정인 컴퓨팅 용량을 판매할 수 있다”고 했다.
메모리 반도체에도 훈풍 기대
AI 서버 업체의 실적도 급증했다. 엔비디아 GPU를 서버로 만드는 슈퍼마이크로는 회계연도 4분기(4~6월) 매출이 111억달러로 전년 동기보다 91% 증가했고, 지난 분기에만 600억달러 이상의 신규 수주를 확보했다고 밝혔다. GPU 서버에서 데이터센터에 이르는 AI 인프라 전반에서 수요가 실제 주문과 매출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는 것이다. 연이은 호재에 시장은 빠르게 반응했다. 12일 코어위브 주가는 19.3%, 네비우스는 34.1%, 슈퍼마이크로는 19.0% 급등했다.
AI 인프라 수요의 확산은 메모리 반도체 업계에도 장기 호재다. AI 서버 한 대에는 GPU용 고대역폭메모리(HBM)뿐 아니라 CPU와 연결되는 서버용 D램, AI 모델과 학습 데이터를 저장하는 기업용 SSD가 함께 들어간다. 네오클라우드의 장기 계약이 데이터센터 증설로 이어지고 서버 주문이 늘어나면 HBM·D램·낸드 수요도 연쇄적으로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12일 마이크론 주가는 4.9%, 13일 국내 증시에서도 삼성전자(4.9%)와 SK하이닉스(5.9%)가 강세를 보였다.
다만 이번 실적을 AI 산업의 수익성이 완전히 입증된 것으로 확대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분석도 나온다. 코어위브와 네비우스는 2분기 각각 6억2600만달러, 1억9000만달러에 달하는 순손실을 기록했다. 폭발적인 AI 수요가 매출로 이어지고 있지만, 이를 감당하기 위한 GPU 확보와 데이터센터 증설 비용, 차입금 이자 부담도 함께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AI 업계 관계자는 “이번 실적으로 AI 인프라 수요에 대한 의구심은 상당 부분 해소됐지만, 막대한 설비·금융 비용을 넘어 이익을 낼 수 있느냐가 AI 투자 열풍의 지속성을 가를 마지막 관문”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