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급 줄며 개고기 값 4배-보신탕 30%↑
업주들 “전업 막막”, 육견농가도 울상
대체제 염소고기 소비량 4년 새 2배로
말복을 이틀 앞둔 12일 대구 북구 칠성종합시장 내 ‘개고기골목’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때 보신탕 식당과 개고기 정육점 등 50여 곳이 골목을 채웠지만, 내년 2월 개 식용 전면 금지와 보양식 소비 변화 등의 영향으로 대부분 문을 닫았다. 대구=명민준 기자 mmj86@donga.com말복(末伏)을 이틀 앞둔 12일 낮 대구 북구 칠성종합시장 내 개고기 골목. 한때 ‘전국 3대 개 시장’으로 불렸던 곳이지만 골목 초입부터 정적이 감돌았다. 복날을 목전에 두면 사람들로 북적이는 곳이었지만 이날은 행인 한 명 찾기 어려웠다. 가게마다 셔터가 내려가 있었고, 출입문에 ‘임대’라고 쓰인 현수막이 붙은 가게도 여러 곳이었다. 대구시와 상인들에 따르면 10여 년 전만 해도 보신탕 식당과 개고기 정육점, 건강원 등 50여 곳이 골목을 빼곡히 채웠다. 하지만 대부분 문을 닫아 지금은 식당 4곳과 건강원 1, 2곳만이 간신히 명맥을 잇는 수준이다. 2024년 제정된 개식용종식법의 전면 시행이 내년 2월로 다가오면서 관련 업소들이 잇달아 문을 닫은 것이다. 내년 2월부터 개고기 유통·판매가 금지되면서 올해는 개고기를 합법적으로 판매할 수 있는 마지막 복날이 됐다.
● 마지막 복날 앞두고 개고기 값도 올라
이날 개고기 골목에서는 마지막 복날을 준비하는 식당 몇 곳이 가마솥을 끓이고 있었다. 멀리서부터 고기를 삶는 냄새가 풍겨왔고, 식당 안에는 손님들이 제법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대부분 60대 이상으로 보이는 손님들로, 연신 땀을 닦으며 보신탕을 먹고 있었다. 출입문 틈으로 고개만 내밀어 “요새 개(보신탕) 합니까”라고 물어본 뒤 식당으로 들어오는 손님들도 간간이 보였다.
70대 여성 업주는 가마솥에 개고기를 삶느라 쉴 새 없이 움직였다. 그는 “손님이 아무리 줄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찾아올 손님은 온다”며 “초복과 중복에도 손님이 꽤 왔다. 지금도 말복에 팔 탕과 수육 거리 등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복날 장사 준비가 마냥 즐거운 건 아니다. 개고기 수급이 어려워지면서 한 마리에 30만∼40만 원이던 개고기 가격이 4배 이상으로 뛰었기 때문이다. 업주는 “음식값도 어쩔 수 없이 30%가량 올렸다”며 “보신탕 가격을 5000원 정도 올렸는데, 어르신들 주머니 사정을 생각하면 만만치 않은 금액이라 미안하다”고 말했다.
개고기를 합법적으로 팔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상인들의 심경도 복잡했다. 다른 식당의 70대 여성 업주는 “사람이 못 먹을 것을 파는 것도 아니고, 평생 보신탕 하나로 자식 키우고 먹고살아 왔는데, 앞으로 어떻게 먹고살아야 할지 살길이 막막하다”고 했다.
업주들은 정부 지원금이 부족하다고 입을 모았다. 정부는 폐업하는 보신탕 식당에 철거 비용 등 최대 400만 원을 지원하고 있다. 판매 품목을 바꾸는 식당에는 간판과 메뉴판 교체 비용으로 최대 250만 원을 지원하지만 업주들은 이 역시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주장했다.
한 업주는 “이 골목에는 개고기를 먹으러 오지, 다른 것을 누가 먹으러 오겠느냐”며 “지원금이 적어 다른 장사를 시작할 수도 없고 여전히 찾는 손님이 있으니 강제로 쫓겨날 때까지 보신탕을 팔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손님도 정부 정책에 대해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강모 씨(75)는 “싫은 사람은 안 먹거나 안 팔면 되는데, 정부가 법으로 아예 팔지 못하게 하는 것은 너무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반면 주변 상인들의 생각은 달랐다. 인근 점포 상인 박모 씨(52)는 “아직 남아 있는 보신탕 업소 때문에 시장 이미지가 개선되지 않고 있다”며 “칠성시장이 대구를 대표하는 시장 중 하나인데, 다른 사람에게 소개하기 부끄러울 정도”라고 말했다.
● 육견 농가 “이제 뭘 해먹고 사나”
개를 키우는 농장주들도 정부가 폐업 이후 생계를 이어갈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육견 농장은 악취와 소음, 분뇨 처리 등을 둘러싼 주민 민원을 피해 인적이 드문 외곽이나 산자락에 자리 잡은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농장을 폐업해도 기존 부지를 다른 용도로 활용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1년 전 육견 농장을 폐업한 주모 씨(61)는 “사육장을 농지로 바꿔 농사를 짓기도 어렵고, 다른 가축을 기르기 위한 허가도 잘 나오지 않는다”며 “앞으로 무엇으로 생계를 이어가야 할지 막막하다”고 말했다.
정부는 농장별 최근 3년간 연평균 사육 마릿수를 기준으로 마리당 최대 60만 원의 폐업이행촉진지원금을 지급하고 있다. 하지만 농장주들은 일회성 지원만으로는 새로운 생업을 마련하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업계에서는 폐업 시점이 다가올수록 농가들이 남은 개를 서둘러 출하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농가 입장에서는 남은 개를 유통한 뒤 폐업지원금을 받는 것이 경제적으로 가장 유리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개고기 빈자리 채우는 염소고기
개고기의 유통이 줄면서 빈자리는 염소고기가 채우는 양상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과 농림축산식품부 등에 따르면 국내 염소고기 추정 소비량은 2020년 6328t에서 2021년 6636t, 2022년 8075t, 2023년 1만986t, 2024년 1만3708t으로 꾸준히 늘었다. 4년 만에 두 배 이상으로 증가한 것이다.
호주산 염소고기의 유입도 시장 확대에 영향을 미쳤다. 한-호주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호주산 염소고기 관세가 2023년부터 완전히 철폐되면서 흑염소탕의 가격도 낮아졌다. 외국산이 국내산보다 저렴한 데다 흑염소 요리를 판매하는 식당이 늘면서 통상 한 그릇에 1만5000∼2만 원인 흑염소탕을 9900원에 내놓는 식당과 프렌차이즈도 등장했다.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개고기와 함께 대표적 보양식으로 꼽히는 닭고기 가격까지 폭염으로 오른 상황에서 9900원짜리 흑염소탕은 가격 부담을 낮추면서 몸보신도 할 수 있는 매력적인 대체재”라며 “이색적인 보양식을 찾는 수요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한 입소문이 맞물리면서 염소고기가 중장년층뿐만 아니라 젊은층으로도 소비가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