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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우 하영이 지난 1월 21일 서울 강남구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 호텔에서 열린 넷플릭스 시리즈 '중증외상센터' 제작발표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 ⓒ 연합뉴스 |
지난 7일, 배우 하영은 KBS 예능 <옥탑방의 문제아들>에 출연해 자신의 집안을 소개했다. 증조부가 일본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돌아와 한양에서 최초로 양의원을 열었고, 고종 황제를 진료한 어의였으며, 그로부터 4대째 이어진 의사 집안이라는 자랑이었다. 방송 직후 온라인에서는 그 증조부가 의사 안상호가 아니냐는 추측이 나왔고, 소속사는 "사실무근"이라 했다가 하루 만에 입장을 번복했다. 안상호가 1916년 친일단체 대정친목회 평의원 명단에 올라와 있다는 기록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이후의 전개는 우리가 아는 그대로다. 안상호가 이재명 의사에게 피습당한 이완용을 치료한 의료진이었다는 사실, 1918년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에 일본인 아내와 함께 '일선동화(日鮮同化)의 모범 가정'으로 소개되며 "조선 옷은 한 벌도 없고" "조선 사람과 상종하는 일이 없다"라고 말한 기록까지 줄줄이 발굴됐다. 문제의 핵심은 하영이 이 집안 내력을 몰랐다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여러 차례 방송과 인터뷰에서 '의료 명문'을 자랑해 왔다는 데 있다. 조상이 남긴 부와 지위의 덕을 봤다는 자각은 있었으면서, 그 부가 어느 시대에 어떻게 축적됐는지에 대한 질문은 한 번도 던지지 않았던 것이다.
해명은 사태를 더 키웠다. 소속사 측이 조부가 소록도에서 한센인을 치료했다는 사실을 방패처럼 내세우자, 시민들은 바로 그 시절 소록도가 강제격리와 인권침해로 악명 높았던 장소였음을 되짚었다. 또한 하영의 부친이 자녀에게 보낸 편지에서 집안을 "몇 안 되는 의료 명문"이라 가르쳐온 사실이 알려졌고, 부친의 해명 인터뷰에서는 국권 침탈을 '경술국치'가 아닌 '한일합방'이라 표현하기도 했다. 즉 이것은 한 배우의 우발적 실수가 아니라, 한 집안이 100년 가까이 다듬고 물려온 자기서사다. 어둠은 지우고 빛만 남긴 가문의 기억이 4대째 대물림되다가, 이제야 역사의 검증대에 오른 것이다.
그리고 12일, 하영은 자필 입장문을 냈다. 직접 자료를 찾아보는 과정에서 "증조부의 친일적 행적을 알게 되었다"라고 인정하고, 앞선 '사실무근' 입장까지 본인의 부족함으로 돌리며 사과한 것이다. 개인으로서 자신의 뿌리를 알고 새기는 일은 필요하고 중요하다. 입장문에서 하영은 "제가 미처 알지 못했다는 사실이 그 역사를 외면하거나 가볍게 여길 이유가 될 수는 없다"라고 썼다. 하영은 집안의 빛과 어둠을 동시에 인식하며 살아가는 첫걸음을 뗐다. 이것은 형벌이 아니라, 역사 앞에 선 한 사람의 성숙이다. "말뿐이 아닌 행동으로 실천하겠다"라는 약속이 지켜지는지는 앞으로 지켜볼 일이지만, 어쨌든 개인의 사죄는 논란 닷새 만에 나왔다. 이제 남은 것은 사회의 몫이다.
이것은 '연좌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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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수 청하의 외할아버지로 알려진 독립운동가 석은 김용근 선생 |
| ⓒ 석은김용근기념사업회 |
"논란이 과하다", "연좌제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나는 전혀 그렇게 보지 않는다. 이번 논란은 한 배우를 조리돌림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오히려 우리 사회가 잊고 있던 이름들을 다시 불러내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외할아버지가 독립운동가이자 5.18 유공자였던 가수 청하가 가족의 역사를 제대로 알기 위해 한국사능력검정시험 1급을 취득했다는 이야기. 3.1운동 때 태극기를 나눠주고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됐던 외조부를 두고도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는 유언 같은 겸손만 물려받은 배우 박환희, 윤봉길 의사의 종손인 배우 윤주빈, 안중근 의사 집안의 후손인 신인 아이돌 그룹 모디세이의 이첸(본명 김영선)까지. 시민들은 지금 친일 후손의 처신과 독립운동가 후손의 삶을 나란히 놓고 비교하는 중이다.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하고 친일을 하면 3대가 흥한다"는 오래된 냉소가 왜 냉소가 아니라 통계에 가까운 현실인지, 이보다 생생한 교육이 없다.
솔직히 말해 대한민국과 '역사 정의'는 그리 어울리는 단어가 아니었다. 반민특위가 좌초한 이래, 바로 세워지지 않은 역사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친일매국의 역사는 가장 크고, 이후 한국 현대사 대부분의 비극이 흘러나온 원흉으로 꼽힌다. 그래서 나는 이 논란이 한 배우의 징죄(懲罪)로 소비되고 끝나는 것이야말로 가장 아까운 결말이라고 생각한다.
시선을 돌려보자. 온라인에는 이런 목소리도 있다. 우리 사회에서 연예인이 지나치게 '액받이' 취급을 당한다는 것, 친일파에 분노한다면 지금도 친일의 유산으로 권세를 부리는 자들부터 어떻게 해봐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나는 이 지적에 절반 동의한다. 다만 결론이 "그러니 하영 증조부 논란을 덮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니 위를 보자"가 되어야 한다. 정치인들의 조상, 가족부터 살펴보면 어떤가?
이를테면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을 보라. 친일 행적이 거론돼온 집안 출신이라는 지적이 있었고(작은할아버지 윤종화는 일제강점기 종로경찰서장을 지냈고,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돼 있다) 전두환의 사위였으며, 윤석열 내란을 옹호하는 데 앞장섰다. 한국 현대사의 비극이란 비극은 다 통과한 이력인데, 지난 총선에서도 멀쩡히 5선에 성공했다. 그러고는 그해 겨울 탄핵 정국에서, 표결을 고민하는 같은 당 초선 의원에게 "1년 지나면 (국민들은) 다 찍어준다"라고 조언했다는 사실을 스스로 자랑삼아 공개하기까지 했다.
서른셋 배우가 예능에서 한 집안 자랑으로 인터뷰가 전면 취소되고 활동이 멈추는 동안, 그 몇 배의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은 국회에서, 또 다른 어딘가에서 임기를 채우고 있다. 서른셋 배우는 논란 닷새 만에 자필로 고개를 숙였는데, 그들은 수십 년째 사과 한 줄이 없다. 이 광경을 본다면 가장 억울할 사람은 오히려 하영일지 모른다. 나는 이번 논란이 연예인 한 명을 액받이 삼는 데서 끝나지 않고, 바로 그 방향으로 사회적으로 발전하길 희망한다.
친일재산, 이번에는 환수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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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년 12월 23일 광복회 회원들이 서울행정법원 일대에서 친일재산 국가환수 패소에 항의하는 집회를 하는 모습. |
| ⓒ 연합뉴스 |
마침 제도의 문도 열려 있다. 지난 5월 국회를 통과한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 등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2010년 해산됐던 친일재산조사위원회가 16년 만에 부활해 오는 12월 3일 출범한다. 이미 처분된 친일재산의 매각 대가까지 환수할 수 있고, 환수된 재산은 독립유공자와 유족을 위해 쓰인다.
그런데 온라인 반응은 의외로 싸늘하다. "정권 바뀔 때마다 말만 하고 안 하더라"는 것이다. 뼈아픈 지적이지만, 근거 없는 냉소는 아니다. 2006년 출범한 1기 조사위원회는 4년 동안 친일반민족행위자 168명을 조사해 여의도 면적을 웃도는 2359필지를 국고로 귀속시키는 실적을 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시기인 2010년 활동이 종료됐고, 남은 과제는 16년째 방치됐다. 그 사이 친일재산은 상속되고 매각되고 세탁됐다.
이 냉소는 정부를 향한 조롱이 아니라, 수십 년 학습된 좌절의 기록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번에는 그 말을 더 이상 듣지 않게 만들어야 한다. 법무부는 친일파 재산 환수를 경중을 가리지 말고 모조리 해야 한다. 나치 부역자의 현재와 장래의 재산까지 몰수했던 전후 프랑스의 사례가 보여주듯, 이것은 과격한 주장이 아니라 '글로벌 스탠더드'다.
내일이면 광복 81주년이다. 한 배우의 집안 자랑에서 시작된 소동이, 100년 사대매국의 끝을 내는 계기가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개인의 징죄를 넘어 전 사회적 친일 청산으로. 이번 광복절에는 그 첫걸음을 확실히 떼고 넘어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