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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지만 없는 것들 - ‘우리 시대의 아이러니’ 이어쓰기 [이문재의 발견]

집은 있지만 가족은 없고
가족이 있어도 가정은 많지 않다

내가 미워하는 나는 많지만
내가 사랑하는 나는 많지 않다

교실은 있지만 교육다운 교육이 없고
학교는 있지만 삶을 위한 학습이 없다

심장은 쉬지 않고 뛰고 있지만
가슴이 설레는 순간은 많지 않고

뇌 영양제를 복용하지만
지혜가 늘어나지는 않으며

달리기는 하는데, 가속도까지 붙는데
어디로, 왜 달려야 하는지 모른다

원수를 사랑하라 했는데
사랑은 하지 않고 원수만 생각한다

감정은 셀 수 없이 많지만
이름 붙일 수 있는 감정은 거의 없다

인공지능을 만드는 지능은 많지만
인공지능을 제어하는 인간 지능은 거의 없다
주식 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은데
주식으로 행복해졌다는 사람은 많지 않다

노동은 있지만 노동자는 없고
자유는 보장되어 있지만 자유인은 거의 없다

노인이 많아지는데
노인이었던 적이 있는 노인은 없다

전 세계적으로 민주공화국은 많지만
민주사회, 민주시민은 찾아보기 힘들다

과거는 많지만 돌아갈 수 없고
미래 또한 많지만 예측할 수가 없다

······

이 시는 끝나지 않습니다.
독자들께서 계속 이어 쓰시기 바랍니다.
가까운 사람과 함께 이어나가면 더 좋겠습니다.
스스로 성찰하고 표현하는 사람들이 모여
다른 삶, 다른 미래를 열어나가리라 생각합니다.



[시작 노트]

성찰과 표현의 첫걸음, 이어 쓰기

위와 같이 열거하다 보면 끝이 있을까 싶습니다. 위로는 문명과 역사, 밖으로는 시대와 사회, 안으로는 감정에 이르기까지 모순과 불합리가 곳곳에서 눈에 밟힙니다. 인지적 언어든 비인지 언어든 언어(마음)가 지시 대상과 일치하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우리가 사는 세계의 본질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시를 읽는 방법은 여럿입니다. 묵독, 낭독, 필사, 암송… 제가 보기에 가장 안 좋은 시 읽기가 묵독입니다. 눈으로 읽으면 절반을 놓칩니다. 소리 내어 여러 번 읽어야 시가 안으로 들어옵니다. 필사를 하거나 암송하면 시의 안쪽으로 성큼 들어서겠지요. 그런데 저는 한 걸음 나아가 시를 이어 써보시라고 권유합니다.

이어 쓰기야말로 가장 깊게 읽는 방식이자, 창작의 첫걸음이기도 합니다. 이어 쓴 시는 전적으로 이어 쓴 독자의 ‘시’입니다. 자기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시를 이어 쓰는 시간은 스스로 ‘성찰하고 표현하는 시간’입니다. 성찰하고 표현하는 시민들이 새로운 세상을 열어나갈 것이라는 믿음, 저 혼자만의 희망은 아니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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