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고구마순 나물, 그래 이게 여름의 맛이지

순을 따 먹기 위한 고구마순 전용 품종... 껍질 안 까 편리하고 아삭한 식감에 부드러워【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고구마순 좋아하나? 좋아하면 내 서너 개 갖다줄 테니 한 번 심어봐."

그리고 5월 하순경. 친구가 고구마순 네 줄기를 가져왔다. 그런데 색깔부터 여느 고구마순과 달랐다. 줄기가 붉은빛을 띠었다.

"이게 말이야, 고구마순 전용으로 나온 '통채루'라는 모종이라구. 나도 작년에 처음 심어봤는데, 고구마는 덜 열려도 순 따먹는 데는 최고야."
"맛은?"
"고구마순 맛이야 다 비슷하지만, 이건 살이 통통해서 씹히는 맛이 훨씬 좋아."
 텃밭에 뿌리를 내리고 무성하게 자란 '통채루' 고구마순. 잎과 줄기가 붉은빛을 띠며 싱싱함을 자랑한다.
ⓒ 전갑남

고구마를 캐기 위한 것이 아니라 순을 따 먹기 위한 전용 품종이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줄기째 통째로 먹는다' 해서 이름도 통채루라고 했다.

사실 우리 밭에는 이미 고구마가 한창 자라고 있었다. 5월 초순, 고구마순 넉 단을 사다 심었다. 작년에는 고구마를 제법 많이 심었지만 올해는 조금 줄였다. 줄기를 걷어내고 땅속을 삽으로 캐고 호미로 더듬어 하나하나 거두다 보면 보통 힘드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집에서 먹고 여러 이웃들과 나눠 먹을 양이면 충분했다.

그래도 고구마는 우리 집에서 빼놓을 수 없는 먹거리다. 쪄서 간식으로 먹는 고구마도 좋지만, 아내는 고구마순을 더 알뜰하게 이용한다. 고구마순은 나물로 무쳐 먹고, 열무김치를 담그듯 김치로도 만든다. 특히 자반고등어나 생선을 지질 때 냄비 밑에 고구마순을 넉넉히 깔아두면 생선 양념이 깊게 스며든 고구마순이 별미 중의 별미다. 한꺼번에 많이 따서 잘 말려두었다가 겨울에 묵은나물로 먹기도 한다.

손톱이 까맣게 물들던 수고로움
 수확한 통채루 고구마순. 일반 고구마순보다 줄기가 통통하고 선명한 붉은빛이 특징이다.
ⓒ 전갑남

다만 한 가지가 문제다. 바로 껍질 벗기기다. 고구마순은 껍질을 벗겨야 부드럽고 맛있다. 한두 줌이면 몰라도 한 소쿠리씩 손질하려면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다. 손톱 밑은 어느새 까맣게 물들고, 줄기 하나하나 껍질을 벗기다 보면 먹는 것보다 손질하는 일이 더 큰일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아내는 고구마순 껍질을 벗길 때마다 한 마디씩 하곤 했다.

"시장 할머니들, 까놓은 고구마순 비싸다고 투정하지 말아야겠어. 이렇게 애쓰는 공을 생각하면 그 값도 비싼 게 아니야."

그 말에 나도 고개를 끄덕인다. 밭에서 거저 나는 것처럼 보이는 나물 한 접시에도 누군가의 수고로운 손길이 고스란히 들어 있다. 무엇보다 고구마순은 한 번 따고 나면 또 새순이 올라온다. 여름 내내 푸른 줄기를 내어주니 텃밭에서 얻는 든든한 먹거리이기도 하다. 그러던 차 아내가 밭을 둘러보다 무성하게 자란 고구마순을 한참 들여다보더니 갑자기 팔을 걷어붙였다.

"여보, 그걸 지금 왜 따?"
"이거 순이 이렇게 무성한데 한번 나물 해 먹으려고."
"그럼, 저거 통채루도 무성한데."

아내의 손이 친구가 건네준 통채루 고구마순으로 옮겨갔다.

껍질째 볶아낸 붉은빛의 반전

가까이 들여다보니 참 특이했다. 줄기는 붉은빛을 띠면서 통통했고, 꺾어보니 하얀 진액이 배어 나왔다. 아내가 손으로 몇 줄기를 만져보더니 금세 한 소쿠리를 채웠다.
 껍질째 살짝 데쳐낸 고구마순. 번거롭게 껍질을 벗길 필요 없이 바로 요리에 사용할 수 있어 수고를 덜어준다.
ⓒ 전갑남

"살짝 데쳐서 껍질을 벗기면 좀 수월할까?"
"벗기긴 왜 벗겨? 이건 껍질째 먹는 통채루라 그냥 먹어도 질기지 않다던데?"
"그래?"

아내의 표정에는 반신반의가 가득했다. 그동안 고구마순은 당연히 껍질을 벗겨야 한다고 생각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하지만 손질은 정말 간단했다. 줄기에서 잎만 떼어내고 껍질은 그대로 두었다. 냄비에 물을 넉넉히 붓고 소금을 조금 넣어 팔팔 끓였다. 고구마순을 넣고 2~3분쯤 데친 뒤 찬물에 담가 씻어냈다. 늘 하던 고구마순 손질과 비교하면 일이 너무 일찍 끝났다.
 팬에서 자작자작 볶아지는 고구마순 나물. 양념이 깊게 배어들며 군침 도는 고소한 향이 퍼진다.
ⓒ 전갑남

아내는 프라이팬에 올리브유를 두르고 다진 마늘과 파를 넣어 향을 냈다. 여기에 데친 고구마순을 넣고 뒤적뒤적 볶았다. 멸치액젓과 진간장으로 간을 하고 굴소스를 조금 넣어 감칠맛을 더했다. 자작하게 졸인 뒤 깨소금을 뿌려 마무리했다.

접시에 담긴 고구마순은 붉은 줄기의 색감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윤기가 반들반들한 줄기를 젓가락으로 집어 입에 넣었다. 아삭하면서도 부드럽고, 씹을수록 은근한 감칠맛이 배어 나왔다. 무엇보다 껍질을 벗기지 않았는데도 전혀 질기지 않았다.

"고구마순 나물, 이거 참 맛있네. 손톱 까맣게 물들여가며 껍질 안 벗겨도 되니 일도 훨씬 수월하고."

아내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나도 웃었다. 이름 그대로 '통째로' 먹는 고구마순이라니, 참 재미있는 발상이다. 빨간 줄기를 가진 통채루 고구마순은 보기에도 여느 고구마순과 달랐지만, 그 쓰임새는 더 특별했다. 무엇보다 '순을 먹기 위한 고구마'라는 발상이 재미있었다. 땅속 열매만 바라보던 고구마를 이제는 줄기와 잎까지 살뜰하게 누리는 것이다.

텃밭이 알려준 삶의 소박한 풍요

생각해보면 텃밭 농사는 늘 뜻밖의 즐거움을 준다. 땅속 열매가 익어가기를 기다리는 동안, 눈길을 주지 않던 줄기가 먼저 풍성한 먹거리가 되어주기도 한다. 들깨씨를 거두기 전 깻잎이 훌륭한 식재료가 되어주는 것처럼, 밭에서 얻는 맛과 기쁨은 훨씬 넓어진다. 친구가 건네준 통채루 몇 줄기가 우리 밭에 뿌리를 내리고, 아내의 손길을 거쳐 정갈한 나물 한 접시가 되었다.
 깨소금을 술술 뿌려 완성한 통채루 고구마순 나물. 껍질째 볶아 식감이 부드럽고 붉은빛 색감도 정갈하게 남아있다.
ⓒ 전갑남

거창한 요리는 아니었다. 고구마순을 데치고 마늘과 파를 볶아 간을 맞추었을 뿐이다. 그런데도 갓 지은 밥 한 공기를 곁들이니 여름 한 끼가 더없이 풍성해졌다. 올여름 우리 밥상에 찾아온 반가운 손님, 통채루. 땅속 열매가 단단히 여물기를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땅 위에서 먼저 뻗어 나온 줄기로 소박하게 삶을 채운다.

잘 자란다는 것은 거둬들이는 열매가 풍성한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때로는 열매를 기다리는 동안 내어주는 무성한 줄기에서도 충분한 기쁨을 누린다.
그냥 목록으로
원문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