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시바이올리니스트 그 이상…끝없는 예술 확장
수식어 모두 떼고, 오로지 ‘KoN’이라는 이름

[스포츠서울 | 표권향 기자] 한국을 대표하는 바이올리니스트 KoN(본명 이일근, 47세)은 하나의 수식어로 설명하기 어려운 예술가다. 클래식 바이올리니스트로 출발했지만 재즈와 현대음악, 집시 음악 등 장르와 장르 사이의 경계를 허물며 음악적 영역을 넓혔다. 이뿐만이 아니다.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구축 후 개인 앨범을 직접 프로듀싱하는 작곡가이자 뮤지컬 배우, 화가,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현재 KoN은 뮤지컬 ‘파가니니’에서 19세기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 니콜로 파가니니의 자유로운 영혼을 무대 위에 되살리고 있다.
지난 13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KoN은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면서도 현재보다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더 오래 이어갔다. 그의 목표는 단순히 ‘집시바이올리니스트’로 기억되는 것이 아니다. 그는 “바이올린과 음악, 연기, 미술을 넘어 ‘KoN이라는 예술가’ 자체로 기억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 6살에 시작한 바이올린…“무대에 서면 살아있는 느낌”
KoN이 바이올린을 처음 잡은 것은 6살 때다. 오랜 시간 무대에 선 만큼 공연 자체가 익숙할 법하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무대에 오르는 순간을 특별하게 여긴다.
현재 출연 중인 ‘파가니니’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매회 공연을 앞두고 긴장하기보다 모든 무대가 소중하고 행복하다. 무대에 서면 ‘여기에서 왔다’라는 감정을 느낀다. 살아있는 느낌이다”라고 말했다.
체력적인 부담은 분명하다. 무대 위에서 3층까지 오르내리며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 데다 바이올린 연주까지 소화해야 한다. 하지만 모든 에너지를 쏟아낸 뒤 커튼콜에서 쏟아지는 박수를 마주하면 힘들었던 순간이 한순간에 사라진다고 했다.
그가 매 공연을 ‘럭키드로우’라고 표현하는 이유에 대해 “오늘 공연을 본 관객에게는 오늘의 무대가 평생 한 번뿐인 경험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라며 “오늘 잘하고 내일 못하면 ‘별로였네’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래서 매번 팔이 부러져라 연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설명했다.

◇ 관객이 많을수록 더 커져야 하는 아티스트의 에너지
KoN에게 관객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에너지를 증폭시키는 존재다.
그는 관객이 두 명뿐인 작은 재즈클럽부터 6만 명 규모의 스타디움까지 다양한 무대를 경험했다. 특히 일본에서 열린 아시아축구연맹(AFC) 경기에 앞서 펼쳐진 생방송 축하 무대를 장식했다. 당시 관중 앞에서 연주하면서 “떨리는 수준을 넘어 이전과는 전혀 다른 감정의 에너지를 느꼈다. 6만 명의 파동이 밀려오는데 정말 소름이 끼쳤다”라고 회상했다.
무대를 대하는 방식은 명확하다. 관객에게 압도당해서는 안 된다는 것. 관객의 기운에 함몰되는 순간 무대의 주도권을 잃는다는 설명이다. KoN은 “플레이어는 관객보다 한 명 더 큰 에너지가 있어야 한다. 관객보다 더 많은 에너지가 아티스트에게서 나와야 그 안으로 관객들을 끌어들일 수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수십 년 동안 다양한 장르와 무대를 넘나들며 얻은 자신만의 공연 철학이다.

◇ 부전공으로 선택한 성악…‘음악의 본질’ 깨달음
KoN의 음악 세계가 넓어진 데에는 성악 공부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서울대 음악대학 재학 당시 성악을 부전공으로 선택한 것은 미래의 자신을 위한 결정이었다.
고등학생 시절 꿈꿨던 대학에 진학한 뒤 또 다른 영역을 공부하며 바이올린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졌다. 성악을 배우며 KoN은 ‘노래하듯 연주한다’는 말의 의미를 몸으로 이해했다. 그는 “바이올린은 악기를 통해 감정을 전달한다. 반면 성악은 사람의 몸 자체가 악기”라고 설명했다.
악기는 연주자의 감정을 그대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매개체를 거쳐 관객에게 전달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성악은 자신의 몸과 목소리가 곧 악기다. 서로 다른 방식의 음악을 경험한 것”이라며 “장르를 넘나드는 음악가로 성장하는 데 중요한 밑거름이 됐다”라고 덧붙였다.

◇ 바이올리니스트에서 액터뮤지션으로…‘파가니니’를 만나다
KoN에게 뮤지컬은 단순한 외도가 아니다. 바이올린 연주와 연기, 퍼포먼스를 하나의 무대 언어로 결합할 수 있는 새로운 영역이다. 바이올리니스트와 배우가 하나의 인물 안에서 만나는 액터뮤지션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의 ‘파가니니’는 실제 파가니니의 음악을 그대로 재현하는 데만 집중하지 않는다. 클래식, 현대음악, 탱고, 집시 음악 등 다양한 음악적 요소를 뒤섞어 극적인 서사를 완성한다.
극 중 ‘악마의 연주’가 3파트로 펼쳐진다. 특히 작품의 백미로 꼽히는 2막 마지막 바이올린 독주 ‘라 깜파넬라(La Campanella)’는 악기 하나만으로 감정의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관객 몰입을 절정으로 끌어올린다. 이때도 KoN은 그만의 음악 세계를 확장, 파가니니의 분노와 환희를 교차시킨 연주로 숨통을 조이는 아련한 여운을 남긴다.
마지막 연주 장면을 특히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KoN은 “진짜 파가니니 곡을 그대로 재현한다고 해서 뮤지컬 속에서 악마처럼 보이는 건 아니다. 관객이 ‘저 사람이 악마구나’라고 느끼게 해야 한다”라며 극 중 일부러 노이즈와 굉음까지 음악의 일부로 활용하는 이유를 밝혔다.
뮤지컬과 클래식 공연을 한꺼번에 경험할 수 있는 ‘파가니니’는 오는 30일까지 서울 종로구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공연된다. gioia@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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