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파가니니의 광기를 21세기로 소환
동물 소리부터 한 줄 연주까지 ‘무대 압도’
이달 30일까지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 공연

[스포츠서울 | 표권향 기자] 19세기 유럽을 매혹시킨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니콜로 파가니니. 비르투오소의 시대를 연 최초의 연주가가 21세기 한국에서 다시 살아났다. 무대 위에서 ‘악마의 연주’를 재현하는 인물은 뮤지컬 배우이자 한국 최초의 ‘집시바이올리니스트’ KoN(본명 이일근, 47세)이다.
KoN은 한국은 물론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바이올리니스트다. KoN의 무대가 더욱 주목받는 이유는 그의 연주가 이미 공연장을 넘어 대중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장면이 있기 때문. 2022년 제19대 대통령 선거 KBS 개표방송 당시 롯데월드타워 정상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한 모습은 개표 과정 못지않은 화제를 모았다. 대한민국 최고층 건물에서 펼쳐진 압도적인 연주는 KoN이라는 이름을 대중에게 각인시켰다.
그는 다시 무대 위에서 바이올린 하나로 관객을 압도하고 있다. KoN은 현재 공연 중인 뮤지컬 ‘파가니니’에서 매회 다른 즉흥 연주와 파격적인 퍼포먼스로 독보적인 색깔을 만들어낸다. 단순히 파가니니의 ‘괴짜’ 바이올린 선율을 연주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정통성을 깬 자유로운 예술가로서 자신만의 음악 세계관을 넓히고 있다.
13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KoN은 “파가니니는 오케스트라 없이 바이올린만으로 1시간 무대를 독점했다. 속주를 들으면 처음에는 감탄하지만, 점점 긴장감이 떨어질 수 있다. 그래서 파가니니는 새, 돼지, 말, 소 등 동물의 소리 같은 신기한 소리를 활용해 관객의 집중력을 끌어올렸다”라며 “아무것도 없이 자기 혼자 연주할 수 있는 자신감과 배짱이 있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 “한 줄만 남기고 현을 끊었다”…악마의 바이올린 직접 재현
파가니니의 연주는 빠르고 화려한 속주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KoN이 주목한 것은 관객을 사로잡는 쇼맨십과 예측할 수 없는 즉흥성이다.
‘파가니니’의 제작 과정부터 참여한 KoN 8년 동안 작품의 음악적 중심을 지키며 그의 천재성과 괴짜 기질, 자유로운 예술가 정신을 무대 위에서 구현한다.
KoN의 노력은 라이브 공연에서 진가를 발휘한다. 바이올린으로 동물의 소리를 묘사하고, 당시 사람들을 충격에 빠뜨렸던 파가니니의 기교를 다양하게 펼쳐낸다. 샬롯을 뒤에서 안은 채 연주하는 장면 역시 KoN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특히 파가니니의 악명을 상징하는 ‘한 줄 연주’도 직접 장식한다. 실제 파가니니가 현을 끊은 뒤 한 현만으로 연주했다는 일화를 무대화한 장면으로, KoN은 극한의 테크닉과 퍼포먼스를 결합해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라는 별명의 탄생 배경을 관객 앞에서 생생하게 펼쳐낸다.
그는 “파가니니의 약 2년간 기록이 끊긴 시간이 있다. 하지만 다시 등장할 때마다 새로운 테크닉을 선보이는 등 이전보다 업그레이드된 무대를 완성했다”라며 “단순히 바이올리니스트의 확장이 아니다. 그만의 관객을 유혹하는 쇼맨십과 수백 가지의 동물을 묘사하는 등 다양한 기교를 펼쳤다. 천재적 연주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로 뛰어났다”라고 말했다. 최정상에서도 발전을 거듭한 파가니니의 정신을 이어가고 있다.

◇ KoN이 파가니니를 만났을 때 “재즈 아닌 집시”
KoN의 독창적인 음악 세계는 ‘집시바이올리니스트’라는 수식어의 유래와 같이 ‘집시 음악’에서 출발한다. 그는 헝가리에서 직접 집시 음악가들과 생활하며 그들의 음악을 몸으로 익혔고, 이를 단순히 재현하는 데 머물지 않았다.
그는 “집시들의 민속 음악에는 특유의 마력이 있다”며 “클래시컬하지 않고 민속적 집시만의 감성을 담았다”라고 소개했다.
과거 재즈바이올리니스트로부터 “당신은 재즈가 아니다”라는 독단적 시비에 휘말린 경험도 있다. 그때마다 KoN은 “난 ‘재즈’가 아닌 ‘집시’”라고 강조했다. 특정 장르의 틀에 자신을 가두기보다 집시 음악을 기반으로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구축했다. 그의 음악적 자존감을 건들만한 핑계조차 허락하지 않을 정도로 집시 음악에 진심이다.
집시 음악의 학자이기도 한 KoN은 해당 장르를 계승하기보다 흡수해서 그만의 음악 장르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그는 “파가니니에게 신출 기묘한 기교가 많다. 집시들이 기교와 속주에 특화된 인물인데, 여기에서 영감을 받지 않았을까 조심스레 추측해본다”라고 말했다.
2010년 발표한 첫 정규 앨범 ‘누에보 집시(Nuevo Gypsy)’는 KoN의 음악적 방향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결과물이다. 그는 “집시 음계의 장음정과 단음정으로 꾸민 특유의 뉘앙스에 탱고와 현대음악의 색채를 더해 기존 장르의 경계를 허물었다”라고 설명했다.

◇ 무대 집어삼킨 천재 바이올리니스트의 즉흥연주
무엇보다 KoN만의 파가니니를 완성하는 핵심은 ‘즉흥 연주’다. 기존의 한계를 깨고 새로운 기교와 퍼포먼스를 끊임없이 선보이며 당대 관객을 매혹했던 자유로운 예술가를 대변한다.
‘파가니니’에서 그가 펼치는 연주는 매회 똑같지 않다. 즉흥이라는 자유를 통해 그날의 공연에서만 만날 수 있는 선율을 만들어낸다. 파가니니의 ‘악마성’을 단순한 ‘괴짜’ 이미지가 아닌 시대를 앞서간 예술가의 자유로 풀어낸다.
KoN은 파가니니를 “즉흥 연주의 대가”라고 정의하며 “나 역시 공연마다 새로운 연주를 펼치니 다회차 관람한 관객들이 호응을 보인다. ‘파가니니’ 역의 세 배우(KoN·홍석기·홍주찬)의 연주가 모두 다르니 공연장에서 직접 확인하시기를 바란다”라고 강조했다
정통 클래식의 틀을 깨고 새로운 길을 개척했던 파가니니와 집시 음악을 흡수해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만들어가는 KoN. 두 사람의 공통점은 결국 ‘자유’다. 무대 위에서 매회 새롭게 태어나는 KoN의 바이올린과 함께 19세기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가 21세기 한국에서 어떻게 부활했는지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액터뮤지컬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는 ‘파가니니’는 오는 30일까지 서울 종로구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공연된다. gioia@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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