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억 투자했는데 반토막”…AI 열풍 믿고 투자 했다가
게티이미지뱅크.인공지능(AI) 투자 열풍 속에서 급등했던 한국 증시가 극심한 변동성을 보이며 휘청이자, 주요 반도체 종목에 집중 투자했던 한국 개인투자자들이 큰 손실을 입고 있다고 영국 공영방송 BBC가 보도했다.
14일 BBC는 이번 증시 변동성으로 막대한 손실을 입은 한국 개인투자자들의 실제 사례를 구체적으로 소개하며 지난달 말까지 약 120만 개의 개인투자자 계좌가 마진콜(추가 증거금 요구)에 직면한 것으로 추산했다. 이는 한국의 경제활동인구 30명 중 1명꼴에 해당한다.
● “폭락장 IMF, 코로나 위기때와 맞먹는 수준”
BBC는 기술주 비중이 높은 코스피(KOSPI)를 세계에서 변동성이 가장 큰 주가지수 중 하나로 꼽았다. 올해 들어 AI 반도체 수요 증가에 대한 기대감으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증시 상승을 견인했으나, 최근 AI에 투입되는 막대한 투자금에 대한 우려 등이 커지면서 급격한 조정을 받았다는 것이다.
글로벌 금융회사 BNY의 전략가 위쿤 총(Wikun Chong)은 “코스피는 최근 몇 달간 역사상 가장 가파른 수준의 조정을 경험했다”며 “이는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IMF)나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당시의 폭락장과 맞먹는 수준”이라고 진단했다.
특히 강세장에서 대출까지 동원해 반도체 기술주에 뛰어든 개인투자자들이 이번 급등락장에서 가장 큰 타격을 입었다고 전했다.
투자 분석가 토비아스 레거(Tobias Leger)는 “기술주가 수개월간 급등한 후 일부 개인 투자자들이 대출을 받아 투자하는 ‘극도의 과열 현상’이 나타났다” 지적했다.
레버리지 투자는 자기 자금보다 많은 주식을 매수할 수 있어 주가가 오를 때 수익을 키울 수 있지만, 반대로 일정 수준 이상 하락하면 증권사가 추가 증거금을 요구하는 마진콜에 직면할 수 있다. BBC에 따르면 지난 7월 말까지 마진콜을 받은 것으로 추산되는 한국 개인투자자 계좌는 약 120만 개에 달했다.
● ”결혼 자금·보너스·창업 밑천 다 날렸다“ 코스피 잔혹사
BBC는 이번 투자 열풍 속에 큰 돈을 날린 한국 개인투자자들의 실제 사례를 소개했다.
올해 말 결혼을 앞둔 은행원 A 씨는 내집 마련을 위해 모아둔 자금을 기술주에 투자했다가 지난달에만 약 2000만 원의 손실을 봤다. 7월 한 달 동안 투자 자산 가치가 25%가량 폭락했다.
A 씨는 “손실을 만회하려면 정말 열심히 일해야 할 것 같다”며 주변에는 자기보다 더한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A 씨의 친구들 중 상당수는 저축한 돈을 모두 쏟아 부은 후 ‘절망적인’ 상황에 처해 있다고 전했다.
직장인 B 씨는 연초에 받은 성과급의 절반을 SK하이닉스 주식에 투자했다. 한때 주가가 4배 가까이 오르며 큰 수익을 냈지만, 이후 상승분을 대부분 반납하면서 최고점 대비 평가액이 반토막 났다. 투자금 규모는 약 3억 원 수준에 달한다.
B 씨는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난다”고 말했다.
마케팅 분야에 종사하던 C 씨는 직장을 그만두고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투자해 둔 돈을 날렸다. 그는 엔비디아 투자로 1000% 이상의 수익을 올린 뒤 해당 수익금 대부분을 SK하이닉스에 집중 투자했다. 하지만 이 투자는 실패로 돌아갔다. 약 1만 달러(약 1300만 원)의 손실을 입었다.
삼성전자에 가용 현금 대부분인 4500만 원을 투자한 D 씨도 주가 급락으로 손실을 봤다. 그 역시 반등을 기대하며 주식을 계속 보유하겠다고 했다.
D 씨는 “한국 증시를 믿은 내가 바보처럼 느껴진다”며 “이제 장기전이 됐다. 그냥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학생 E 씨는 투자 기회를 놓칠지 모른다는 ‘포모(FOMO·소외 공포)’에 친구와 돈을 모아 SK하이닉스 주식을 샀다. 그러나 주가가 고점을 찍었을 때 매도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고 있다고 BBC에 말했다.
그는 “주변에 투자 경험이 많은 사람이 없었고, 주식을 사기 전에 투자 공부를 진지하게 하지도 않았다”고 털어놨다.
● 반도체 집중·빚투가 키운 변동성…“한 바구니에 담지 말아야”
한국 증시의 극심한 변동성은 다른 나라 증시에도 비슷한 움직임이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로 이어지고 있다.
소시에테제네랄의 아시아 주식 전략 책임자 프랭크 벤짐라는 기술주 비중이 높은 일본 닛케이225 지수가 최근 코스피의 급격한 등락과 비슷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세계 대부분의 증시에서 코스피와 같은 수준의 급격한 변동성이 나타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봤다. 다양한 산업과 기업으로 구성된 대형 증시는 특정 업종의 급등락이 시장 전체에 미치는 충격을 상대적으로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벤짐라는 “도쿄증권거래소 주가지수(TOPIX)나 미국 증시처럼 대형주가 다양하게 분산된 시장에서는 같은 수준의 변동성이 나타날 것으로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실제 투자 대상을 여러 시장과 종목으로 분산한 투자자들은 이번 증시 급락의 충격을 상대적으로 줄일 수 있었다고 BBC는 전했다.
A 씨는 “이번 사태는 한국 투자자들, 특히 젊은 투자자들에게 모든 것을 한 바구니에 담아놓고 잘되기만을 바라서는 안 된다는 경고가 됐다”고 말했다. 자신 역시 기술주 투자에 좀 더 신중했어야 했다고 돌아봤다.
A 씨의 약혼녀는 집을 마련하기 위해 모아둔 돈 일부를 잃었지만 시장이 다시 회복할 것으로 기대했다. 다만 투자 상황을 계속 확인해야 하는 일이 A 씨에게 상당한 부담이 되고 있다고 걱정했다.
그는 “집 마련을 위해 모은 돈이 증시에서 손실을 본 것은 분명 정신이 번쩍 들게 한 일이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