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찾은 빌 게이츠 게이츠재단 이사장이 8월 14일 조정식 국회의장을 면담하기 위해 국회의장실로 이동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이코노미스트 김정훈 기자] 빌 게이츠가 설계한 미국 차세대 원자로를 뜯어보면 곳곳에서 한국 기업의 이름이 나온다. 투자와 사업개발은 SK, 원전 핵심 기자재는 두산에너빌리티, 대형 원자로 구조물은 HD현대, 건설은 현대건설이 참여하는 식이다. 미국에서 시작된 차세대 원전 프로젝트에 ‘K원전 밸류체인’이 통째로 올라타는 모습이다.14일 재계에 따르면 방한 중인 빌 게이츠 테라파워 창업자는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기선 HD현대 회장 등 국내 기업인들과 잇따라 만나 소형모듈원자로(SMR) 협력을 논의했다. 이날 SK이노베이션과 테라파워는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SMR 프로젝트 공동 개발을 위한 주요 조건에도 합의했다.
중심에는 게이츠가 2006년 설립한 테라파워가 있다. 테라파워는 미국 와이오밍주 케머러에 4세대 소듐냉각고속로인 ‘나트륨(Natrium)’을 건설하고 있다. 345㎿급 원자로에 에너지저장시스템을 결합해 필요할 때 최대 500㎿까지 출력을 높이는 방식이다. 지난 3월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의 원자로 건설허가를 받으면서 목표로 하는 2031년 상업운전에 한발 더 다가섰다.
흥미로운 점은 원자로가 실제 건설 단계로 넘어가면서 한국 기업들의 역할도 구체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SK㈜와 SK이노베이션은 2022년 테라파워에 2억5000만달러를 투자했다. 한국수력원자력도 올해 SK이노베이션이 보유한 테라파워 지분 일부를 인수하면서 동맹에 합류했다. 단순 지분투자를 넘어 SK이노베이션이 글로벌 프로젝트 개발에 참여하는 단계로 협력이 확대되는 모양새다.
제조 분야에서는 두산에너빌리티와 HD현대가 자리 잡고 있다. 두산에너빌리티는 케머러 1호기에 들어갈 원자로 보호용기와 원자로 지지구조물 등 핵심 기자재를 제작한다. HD현대중공업은 지난 5월 테라파워의 원자로 인클로저 시스템(RES) 공급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여기에 현대건설까지 가세했다. 정기선 회장과 게이츠 창업자, 이한우 현대건설 대표는 이날 서울에서 만나 나트륨 원자로의 상용화와 글로벌 공급망 구축을 위한 협력을 논의했다. HD현대는 향후 원자로 용기를 연간 2~3기 공급하는 것을 목표로 생산설비 투자도 추진한다.
결국 테라파워의 원자로를 따라가면 투자·사업개발(SK·한수원)→핵심 기자재(두산에너빌리티)→원자로 구조물(HD현대)→EPC(현대건설)로 이어지는 한국 원전 산업의 밸류체인이 모습을 드러낸다.
테라파워 역시 한국 기업과의 협력을 ‘미국의 혁신과 한국의 산업 전문성’을 결합하는 구조로 설명하고 있다. 테라파워의 첫 원자로가 성공적으로 가동되고 후속 나트륨 원자로 건설이 확대된다면 국내 기업들이 함께 수주를 늘릴 가능성도 커진다. 이번 빌 게이츠의 방한이 단순한 재계 총수 회동 이상으로 주목받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