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 1월1일자 조선일보. 사진=뉴스타파 보도화면 갈무리배우 하영씨의 증조부 안상호의 친일 행적이 연일 언론의 관심을 받고 있다. 제대로 된 친일 세력 청산이 이뤄지지 않으며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대대로 고난이 대물림되고, 친일파 후손들은 부와 기회를 누렸던 우리 사회 불편한 진실을 유의미하게 드러내고 있는 최근 언론 보도 논조는 타당하다. 그리고 이 시점에서 우리는 언론이 언론의 친일 행적에 대해서도 제대로 조명해 왔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일제강점기 의사였던 안상호는 조일동화주의(朝日同化主義)를 표방하던 친일단체 대정친목회 초대 평의원으로 활동했다. 그 대정친목회가 창간한 신문사가 조선일보다. "일본 사람과 똑같다"고 했던 1918년 안상호 인터뷰가 실려 주목받은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의 이상협은 동아일보 초대 편집국장이었다.
조선일보는 이봉창의 폭탄 투척 사건이 있었던 1932년 1월10일자에서 "어료차(천왕의 마차)에 이상이 없어 오전 11시50분 무사히 궁성에 환행하시었다"고 보도했으며, 그해 5월8일자에선 윤봉길 의사의 폭탄 투척 사건을 "흉행(兇行)"으로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1937년 1월1일 1면에서 일왕 부부 사진을 1면에 크게 실었고 1940년 폐간 전까지 매년 1월1일 일왕 부부 사진을 싣고 충성을 맹세했다. 조선일보는 1939년 4월29일 사설에서 일왕 히로히토의 생일을 맞아 생일축하문을 쓰며 충성을 넘어선 '극충극성'이란 표현을 쓰고 일왕을 '지존'이라 표현했다.
▲1939년 1월1일자 조선일보 1면.
▲1940년 1월1일자 동아일보 1면. 조선일보처럼 1월1일 1면에서 일왕 부부 사진을 실었던 동아일보는 1921년 3월4일자 사설에서 "재래의 한국 정치는 암흑 정치요, 총독부 정치는 문화 정치"라고 치켜세웠다. 1936년 8월, 동아일보 일부 기자들이 베를린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손기정 선수의 가슴에 붙은 일장기를 회사에 알리지 않고 말소하자, 사주 김성수는 "몰지각한 행동"이라 개탄했고, 회사는 사장부터 평기자까지 13명을 해고했다. 이후 동아일보는 반민특위 해체 이후 자신들을 '민족지'로 미화하는 작업에 나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학계에선 이 같은 미화 작업이 친일보다 더 큰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지금껏 자신들의 친일 행적에 대해 제대로 사과한 적이 없다. 오히려 적반하장식 태도를 보였다. 2020년 양상훈 조선일보 주필은 "필자는 우리나라에서 '친일파'를 한 명도 보지 못했다"면서 "한국처럼 '친일 청산'이 확실하게 이뤄진 나라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유독 운동권 눈에는 친일파가 많이 보이는 모양이다. 없는 것을 보는 눈을 가졌는지 친일파 타령에 끝이 없다"는 궤변을 펼쳤다. 이를 두고 "조선일보가 존재하고 있는 사실이야말로 친일 청산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조선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라는 비판이 나왔으나, 당시 이를 주의 깊게 보도한 언론은 거의 없었다.
돌이켜보면 조국을 배신한 죄로 광복 이후 문을 닫은 언론사, 처벌받은 언론인, 스스로 국민 앞에 사죄했던 언론인이 있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언론계 친일 청산이 미완의 과제인 이유다. 친일 청산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진 지금, 우리 언론이 안상호만 비판하고 정작 언론계 친일에 대해 관대하다면 시민들 눈에는 위선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