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록으로

공포 영화 틀었을 뿐인데... 10분만에 우리 가족이 겪은 일

[영화로 '오싹한' 여름나기] 처참히 실패한 공포 영화 도전기가 준 의외의 선물【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시대를 막론하고 아이들의 영원한 스테디셀러는 공포 이야기다. 달걀귀신부터 홍콩 할머니 귀신, 이름도 알 수 없는 각종 괴담까지, 공포 이야기는 시대에 따라 모습만 바뀔 뿐이다. 특히 공포물은 더위를 잊게 하는 특별한 묘미가 있다. 등줄기를 타고 찌릿하게 내려오는 서늘함,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순간의 짜릿함! 오싹함을 즐기기에 이보다 완벽한 장르가 또 있을까.

얼마 전, 중학생인 딸이 자기 친구들이 다 공포물 마니아라며 친구들이 공포 영화 이야기를 할 때 소외감을 느낀다는 고민을 얘기했다. 친구들의 유튜브 알고리즘이 다 귀신 이야기며, 잘 때도 무서운 이야기를 듣고 잔다는 거였다.

"까짓. 우리도 보면 되지 뭐" 하고 고등학생인 아들과 나는 함께 공포 영화를 봐주겠다고 호기롭게 말했다.

그런데 막상 영화를 고르려니 서로 눈치를 보며 쉽게 결정하지 못했다. 한참 OTT를 헤매다 아들이 "요즘은 살목지가 유행이니까 그거 보자"라고 했다. <살목지>는 로드뷰에 정체불명의 형체가 찍히고, 재촬영을 위해 저수지로 향한 촬영팀이 검고 깊은 물 속의 무언가를 마주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공포 영화다. 딸은 이 영화를 본 친구들이 무섭다고 했다며, 괜찮을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나는 아이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말했다.

"이거 다 허구야. 분장한 사람들이라고! 세상에 귀신은 없어"

호기롭게 공포 영화 틀었는데...

 영화 <살목지> 촬영 현장.
ⓒ 쇼박스

그러면서 완벽한 공포 체험을 위해 "중간에 자리 이탈하기 없기"라고 했다. 암막 커튼을 치고 TV 화면을 가까이에 두었다. 과자와 음료까지 준비하니 그럴듯한 영화관이 완성됐다. 처음에는 모두 여유로운 표정이었다. 아들은 "이 정도는 하나도 안 무서운데?"라며 큰소리를 쳤고, 딸도 태연한 척 화면을 바라봤다. 나 역시 아이들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괜찮은 척을 했다.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묘한 긴장감이 거실을 압도했다. 온 집안을 휘감는 기분 나쁜 음향. 컴컴한 화면 너머로 '뭐가 튀어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분위기'. 인물들의 동작 하나하나에도 온 신경이 곤두섰다. 시작한 지 얼마 안 됐는데, 공포 영화 특유의 긴장감이 느껴졌다. '설마… 여기서 뭐가 튀어나오는 건 아니겠지?' 싶어 마음이 졸아 있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서로에게 껌딱지처럼 달라붙었다. 눈을 가릴 듯 말 듯, 침을 꼴깍꼴깍 삼키며 숨을 죽였다. 아이들과의 이런 스킨십은 얼마 만이려나. 어느 순간부터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들은 나와의 접점을 찾기 어려웠고 몸도 마음도 멀어지는 듯한 기분에 괜스레 서운한 감정이 몰려왔던 것도 사실이다. 어쩌면 나에겐 귀신보다 더 서늘하고 무서운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싶은 감상에 젖어있었다.

"으아아아악!!"

그때 딸이 목이 찢어지라 비명을 질렀다. 나와 아들은 놀란 심장을 부여잡고 물었다.

"왜? 왜?"
"뭔가 내 다리를 스쳐 지나갔어!"

딸아이는 다리를 끌어올리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우리는 얼른 안심시키려 했다.

"느낌적인 느낌일 거야."
"하루살이가 붙었다가 날아간 거 아닐까? 에어컨 바람이었을 수도 있고."

그러면서도 우리 셋 모두, 소파 주변을 힐끔힐끔 살피고 있었다. 내가 분위기를 풀어보겠다고 농담을 던졌다.

"진짜 귀신 아니야?"

그 순간, 아들과 딸의 짜증 섞인 비명이 터져 나왔다.

"어우아아아악"

방문 앞의 흐릿한 형체

 AI생성 이미지
ⓒ 오마이뉴스

결국 우린 영화를 끝까지 보지 못했다. 끝이 뭐야. 영화 시작한 지 10여 분 됐을 때 일어난 일인 걸. 아직 본격적으로 누군가 다치지도 그렇다고 귀신이 등장하지도 않은 시점이었다. 그렇게 우리 가족의 야심 찬 공포 영화 관람은 <살목지> 초반에 실패로 끝났다. '더위를 날려버리겠다'며 시작했는데, 더위는커녕 밤새 끈적대는 부작용이 발생했다.

그날 밤, 새벽에 자고 있는데 방문 앞 인기척에 갑자기 눈이 뜨였다. 흐릿한 형체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기겁하며 상체를 벌떡 일으킨 순간, 흐릿한 형체가 입을 열었다.

"엄마... "
"어후 깜짝이야"
"무서워서 잠을 못 자겠어. 자꾸 아까 영화에서 본 장면이 생각나."
"우리가 무슨 영화를 봤다는 거야. 영화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껐잖아."

고작 몇 분이나 봤다고, 베개를 꾹 껴안은 딸이 안방으로 피신해 왔다. 뒤이어 아들 녀석까지 이불을 질질 끌고 쭈뼛쭈뼛 기어들어 왔다.

"엄마, 나도… 무서운 꿈 꿨어. 오늘만 여기서 잘래."

결국 그날 밤, 우리 집 안방은 합숙소가 되었다. 아이들은 쾅 닫혀있던 방문을 스스로 열고 찾아왔다. 평소라면 쑥스럽고 어색해서 하지 않았을 스킨십과 대화까지 이어준 공포 영화가 새삼 고맙게(?) 느껴졌다. 오싹하게 더위를 날려줄 줄만 알았는데, 뜻밖에도 이런 효능까지 있다니. 공포 영화 관람은 처참한 실패로 끝났지만 사춘기라 평소엔 말 한마디 섞기도 힘들던 아이들과, 살 맞대고 엉겨 붙었던 '스킨십'은 성공적인 여름밤이었다.

언젠가부터 사춘기를 지나는 아이들이 방문을 꼭 닫고 지내나요? 겁 많은 아이들과 가까워지고 싶다면 올여름이 가기 전, 공포 영화 관람을 추천합니다.
그냥 목록으로
원문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