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도 지난달 "백 대표를 최초 개발자로 보기 어려워"
유튜브 '김재환의 오재나'에 출연한 류수덕씨는 1980년대 이미 부산에서 대패삼겹살이 유행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photo 유튜브 '김재환의 오재나'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의 '대패삼겹살 원조' 주장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백 대표가 개발했다고 알려진 시점보다 약 10년 앞선 1983년부터 부산에서 대패삼겹살을 판매했다는 식당 창업자의 증언이 나왔다. 지난달 법원이 백 대표를 대패삼겹살의 최초 개발자로 보기 어렵다는 취지로 판단한 데 이어 당시 영업을 했다는 당사자의 구체적인 증언까지 공개되면서 '원조 논란'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지난 14일 김재환 PD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김재환의 오재나'에는 '1980년대 시작된 대패삼겹살 프랜차이즈 초량화성갈비 창업자를 만났습니다'라는 제목의 영상이 공개됐다.
영상에서 김 PD는 1980년대 부산에서 초량화성갈비를 창업해 운영한 류수덕씨를 만났다. 류씨는 백 대표가 대패삼겹살을 개발했다고 밝힌 1993년보다 약 10년 앞서 얇게 썬 삼겹살을 판매했다고 주장했다.
류씨가 공개한 폐업사실증명원에는 초량화성갈비의 개업일이 1984년으로 기재돼 있었다. 류씨는 부가가치세 신고 과정에서 1984년으로 등록됐을 뿐 실제 영업을 시작한 시점은 1983년이라고 설명했다.
류씨에 따르면 당시 식당에 가스 시설을 도입하면서 삼겹살을 얇게 썰어 판매하기 시작했다. 장사를 시작한 지 1년도 지나지 않아 일본산 중고 육절기를 구입했고, 이를 이용해 얇은 삼겹살을 빠르게 대량으로 만들어 판매했다.
1980년대 부산 일대에서 대패삼겹살을 유행시킨 류수덕씨는 손님들이 먼저 '대패삼겹살'이라고 이름 붙여 부르기 시작했다고 증언했다. photo 유튜브 '김재환의 오재나'당시 부산과 마산 일대에서는 이처럼 얇게 썬 삼겹살이 이미 상당한 인기를 끌고 있었다는 게 류씨의 설명이다.
'대패'라는 명칭 역시 자신이 특별히 고안한 것이 아니라고 했다. 얇게 썬 고기의 모양을 본 손님들이 자연스럽게 '대패'라고 부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사업 규모도 커졌다. 류씨는 부산 연산동과 부산대, 대연동, 부평동, 남포동 등 부산 주요 지역에 가맹점을 운영했다고 밝혔다.
영상에는 1991년 초량화성갈비 가맹점을 운영했다는 강경호씨도 등장했다. 강씨는 당시 이미 '대패삼겹살'이라는 메뉴명을 사용했고 가게 벽에도 해당 이름을 적어뒀다고 증언했다.
류씨는 백 대표가 1993년 대패삼겹살을 개발했다는 주장에 대해 강하게 반박했다. 그는 "개발 좋아하네. 내가 장사를 벌써 83년도에 했는데. 말도 안 되는 소리하네"라고 말했다.
김 PD가 백 대표의 나이를 언급하자 류씨는 "백종원이가 17살 때 나는 이미 장사를 시작했던 것"이라며 웃기도 했다.
김 PD는 영상에서 "백종원이 아직 군 복무를 하고 있을 때 부산에는 이미 대패삼겹살 프랜차이즈까지 있었다"며 "당시 대패삼겹살은 지갑이 얇은 부산 청춘들의 일상적인 회식 메뉴였다"고 주장했다.
류수덕씨는 1980년대 이미 대패삼겹살 메뉴가 부산 일대에서 실제로 상당한 인기를 얻었다고 증언했다. photo 유튜브 '김재환의 오재나'백 대표는 과거 여러 방송에서 자신이 대패삼겹살을 만들게 된 과정을 소개한 바 있다. 1993년 무렵 육절기를 잘못 구입한 뒤 삼겹살을 넣어 썰었더니 고기가 얇고 둥글게 말려 나왔고, 이를 본 손님이 '대팻밥 같다'고 말한 데서 착안해 '대패삼겹살'이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취지였다.
더본코리아 홈페이지에도 과거 '1993년 백종원이 개발한 대패삼겹살'이라는 내용이 게재됐다. 백 대표는 1996년 '대패삼겹살' 상표를 출원해 1998년 등록했다.
그러나 상표 등록은 해당 음식을 최초로 개발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다.
'대패삼겹살 원조'를 둘러싼 논란은 법정으로도 번졌다. 김 PD가 지난해 5월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백 대표의 최초 개발 주장에 의문을 제기하자 더본코리아의 한 가맹점주는 영상 때문에 브랜드 가치가 훼손되고 매출이 감소했다며 김 PD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백 대표나 더본코리아가 직접 제기한 소송은 아니었다.
수원지법 안양지원은 지난 6월 25일 가맹점주가 김 PD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를 기각했다. 가맹점주는 재산상 손해 463만7384원과 위자료 500만원 등 모두 963만7384원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1980년대 후반부터 부산 초량 지역에서 이미 '대패삼겹살'이라고 불리는 얇은 삼겹살 구이가 유행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육절기로 삼겹살을 얇게 썰 경우 자연스럽게 고기가 둥글게 말리기 때문에 별도의 특별한 제조공정이 필요한 음식으로 보기도 어렵다고 봤다.
1993년 당시 언론 보도 역시 백 대표가 운영한 식당을 '서울 쌈밥 전문점의 원조'라고 소개했을 뿐 백 대표가 대패삼겹살 자체를 최초로 개발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자료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김 PD의 영상이 가맹점주 개인을 겨냥한 것이 아니라 공익적 목적에서 '최초 개발' 주장의 사실 여부를 문제 삼은 것이고, 영상 때문에 가맹점 매출이 감소했다고 단정할 만한 인과관계도 인정되지 않았다.
대패삼겹살이 등장할 수 있는 기술적·유통 환경도 이미 1980년대에 갖춰지고 있었다. 당시 국내에는 일본산 육절기가 들어와 있었고 '냉동육절단기'는 1985년 국내에서 실용신안으로 출원됐다. 1980년대 후반에는 정육점이나 음식점에서 냉동육을 얇게 썰어 판매할 수 있는 환경이 형성돼 있었던 셈이다.
부산은 냉동·냉장 유통 기반도 일찍 발달했다. 1985년 발간된 '수산제조업무편람'에 따르면 1984년 부산의 하루 냉동능력은 1656톤으로 전국의 32.8%, 냉장저장능력은 13만3825톤으로 전국의 42.2%를 차지했다. 당시 전국에서 가장 큰 규모였다.
법원의 판단에 이어 1983년부터 직접 대패삼겹살을 판매했다는 창업자의 증언과 폐업 관련 자료, 1991년 가맹점주의 증언까지 공개되면서 백 대표의 '1993년 최초 개발' 주장을 둘러싼 논란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주간조선 온라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