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영향력 있는 정치인 또는 행정관료]
지난해 '1인 독주' 사라지고 여야 모두 다극 구도로…재편되는 권력지형
與 차기 주도권 놓고 초박빙 승부…보수도 각축, 韓 24.2%, 吳 18.8%, 張 15.2%
어떤 이름은 시대의 희망이 되고, 어떤 이름은 시대의 과제가 된다. 국민이 누구에게 열광하고 누구에게 힘이 있다고 느끼는지, 그 이름들을 한 줄로 세우면 한 시대의 초상이 된다. 그리고 이름이 뜨고 지는 자리에는 당대의 민심이 있다. 시사저널이 1989년 창간 이후 37년째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를 물어온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2026년은 그 어느 때보다 권력의 이동이 역동적인 해다. AI(인공지능)가 산업의 판을 흔드는 사이, 탄핵이 남긴 정치적 여진은 대한민국의 권력 지도를 다시 그렸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처음으로 '톱3'에 진입했다. 1년 새 주가가 5배 넘게 뛴 SK하이닉스의 고속 성장과 맞물려 그룹 총수의 영향력도 한층 커진 셈이다. 정치의 부침은 더욱 극적이다. 지난해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하나로 꼽혔던 윤석열 전 대통령은 올해 톱10에서 빠졌다. 그 빈자리에는 역설적으로 윤 전 대통령의 탄핵에 찬성했던 한동훈 무소속 의원이 새롭게 이름을 올렸다.
시대의 명암을 읽으려면, 명단의 빈칸도 직시해야 한다. 올해 전체 영향력 톱10에는 여성이 단 한 명도 없었다. 세대의 벽도 여전히 높았다. 톱10에 오른 정치·경제 인사 6명의 평균 나이는 만 60세다. 손흥민과 BTS(방탄소년단)가 그라운드와 무대에서 세계를 호령하는 동안, 대한민국 권력의 시계는 여전히 더디게 흘렀다. 떠오른 이름과 끝내 이름을 올리지 못한 얼굴들. 그 엇갈린 풍경 속에 대한민국의 현재가 있고, 앞으로 넘어야 할 벽이 있다. 2026년,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정치권에서 '독주하는 1인'이 사라졌다. 지난해 이재명 정부 출범과 함께 김민석 당시 국무총리에게 쏠렸던 영향력은 불과 1년 만에 여러 갈래로 흩어졌다. 여권에서는 정청래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김민석 전 총리를 따라잡으면서 양강 구도를 만들었고, 야권에서는 한동훈 무소속 의원이 가파르게 치고 올라왔다. 오세훈 서울시장과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 한성숙 국무총리까지 영향력 상위권에 합류하면서 정치권의 권력 지도는 '1강'에서 '다극 체제'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순위 변동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김민석의 총리직 사퇴와 여의도 복귀, 정청래의 당권 재도전은 집권 2년 차 여권의 무게중심을 다시 당으로 끌어당겼다. 반면 야권에서는 당 밖의 한동훈, 서울시정을 기반으로 한 오세훈, 제1 야당 당권을 쥔 장동혁이 서로 다른 정치적 자산을 앞세우고 있다. 청와대에서는 강훈식, 행정부에는 한성숙이라는 새로운 축이 들어섰다. 권력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권력을 만들어내는 중심이 여러 곳으로 나뉜 것이다.
'2026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가 포착한 것도 바로 이 변화다. 지금의 숫자는 누가 확실한 1인자인지를 보여주기보다 누가 다음 1인자가 될 수 있는지를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음을 보여준다. 민주당 전당대회가 여권의 양강 구도를 가를 첫 시험대라면, 한동훈·오세훈·장동혁의 경쟁은 아직 구심점을 찾지 못한 보수의 향방과 맞닿아 있다. 이재명 정부 2년 차, 한국 정치의 권력 지도는 새로운 1인자의 등장보다 '절대권력의 실종'이 만들어낸 빈 공간을 누가 먼저 차지하느냐를 둘러싸고 요동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시사저널 박은숙·시사저널 이종현당권이 바꾼 권력 지도 바꿀 與 미래권력 향방
시사저널이 한국갤럽에 의뢰해 실시한 '2026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조사에서 일반 국민에게 가장 영향력 있는 정치인 또는 행정관료를 물은 결과, 정청래 전 대표가 37.2%로 1위에 올랐다. 김민석 전 총리가 36.0%로 불과 1.2%포인트 뒤졌고, 한동훈 의원이 24.2%로 3위를 차지했다. 오세훈 시장(18.8%), 장동혁 대표(15.2%), 강훈식 실장(13.2%), 한성숙 총리(11.2%)가 뒤를 이었다.
전문가들의 선택에선 1·2위 순서만 바뀌었다. 김 전 총리가 27.4%로 1위, 정 전 대표가 26.4%로 2위를 기록했다. 격차는 1.0%포인트에 불과했다. 한 의원은 전문가 조사에서도 12.4%로 3위에 올랐다. 일반 국민과 전문가 모두 정청래·김민석·한동훈을 정치권 영향력 '톱3'로 꼽았다.
이 같은 수치는 지난해와 비교하면 변화가 더욱 선명하다. 일반 국민 조사에서 지난해 김 전 총리는 39.2%로 정 전 대표(26.2%)를 13.0%포인트 앞섰다. 올해는 정 전 대표가 37.2%로 11.0%포인트 상승하면서 김 전 총리(36.0%)를 근소하게 넘어섰다. 전문가들의 평가는 더 극적으로 달라졌다. 지난해 김 전 총리 37.2%, 정 전 대표 14.0%로 두 사람 사이에는 23.2%포인트의 격차가 있었다. 올해는 각각 27.4%, 26.4%로 차이가 단 1.0%포인트까지 좁혀졌다. 불과 1년 만에 '김민석 1강'이 사실상 '김민석·정청래 양강'으로 바뀐 것이다.
정 전 대표의 급상승에는 지난 1년간 여당을 이끌며 키운 정치적 존재감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반대로 김 전 총리는 국무총리라는 '현재권력'의 핵심 직함을 내려놓으면서 지목률이 낮아졌다. 이제 두 사람 모두 8월17일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다시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증명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그렇다고 김 전 총리의 권력 기반이 크게 약화됐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이재명 대통령에게 가장 영향력이 큰 인물'을 묻는 별도 조사에서는 김 전 총리가 일반 국민 32.4%, 전문가 22.0%로 모두 1위였다. 정 전 대표는 각각 30.2%, 19.4%로 그 뒤를 이었다. 총리직을 내려놓은 뒤에도 '이재명의 핵심 측근'이라는 정치적 자산만큼은 여전히 김 전 총리가 앞선다는 의미다.
결국 8월17일 전당대회는 단순한 당대표 선거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됐다. 김 전 총리가 총리 시절 쌓은 국정 경험과 대통령과의 거리를 당권으로 연결할지, 정 전 대표가 당대표 경험과 선명성 영향력을 기반으로 연임에 성공할지에 따라 여권의 양강 구도가 다시 한쪽으로 기울 가능성이 있다.
'12.4%→24.2%' 영향력 2배로 키운 한동훈
여권에서 김민석의 독주가 깨졌다면 야권에서는 아직 독주할 인물이 나타나지 않았다. 가장 빠르게 치고 올라온 인물은 한동훈 의원이다. 일반 국민 지목률은 지난해 12.4%에서 올해 24.2%로 11.8%포인트 뛰었다. 전문가 조사에서도 5.2%에서 12.4%로 7.2%포인트 상승했다. 두 조사에서 모두 김민석·정청래에 이어 3위다.
특히 일반 국민 조사에서 한 의원은 오세훈 시장(18.8%)과 장동혁 대표(15.2%)를 모두 앞섰다. 제1 야당 밖에 있는 무소속 정치인이 국민의힘 대표보다 9.0%포인트 높은 영향력을 기록한 점도 눈에 띈다. 원내 진입을 계기로 정치적 퇴장 가능성을 지우고 독자적인 정치 공간을 확보한 결과로 풀이된다.
다만 한 의원이 곧바로 보수의 '1강'이 된 것은 아니다. 오 시장도 전문가 조사에서 지난해 3.4%에서 올해 11.0%로 7.6%포인트 뛰었다. 장 대표 역시 일반 국민 15.2%, 전문가 10.8%로 영향력 상위권에 새롭게 진입했다.
한동훈에게는 원내 진입과 대중적 인지도가, 오세훈에게는 서울시정이라는 행정 기반이, 장동혁에게는 제1 야당의 당권이 있다. 서로 다른 세 사람이 각자의 권력 기반을 확보하면서 범보수진영 역시 힘이 한 사람에게 모이지 않는 삼각 구도가 만들어진 셈이다.
청와대에서는 강훈식 비서실장이 일반 국민 13.2%(6위), 전문가 7.0%(7위)의 지목률로 단연 독보적인 영향력을 드러냈다. 작년에는 10위권 내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던 강 실장은 '실세 비서실장'이라는 평가 속에 잠룡으로서의 존재감도 나타냈다.
행정부에서는 한성숙 국무총리가 새로운 영향력 그룹에 이름을 올렸다. 일반 국민과 전문가 조사에서 나란히 11.2%를 기록했다. 지난해 조사 때 상위권에 없던 인물이 취임과 동시에 두 자릿수 지목률을 기록한 것은 국무총리라는 자리의 무게를 보여준다.
한 총리의 등장은 김민석 전 총리의 여의도 복귀와 맞물려 있다. 김 전 총리가 행정부를 떠나 민주당 당권 경쟁으로 이동하면서 행정부 2인자 자리는 한 총리에게 넘어갔다. 정치권 출신이 아닌 한 총리가 향후 민생·경제 현안과 당정 조율 과정에서 얼마나 독자적인 영향력을 확보하느냐에 따라 현재의 지목률이 '직위의 힘'에 그칠지 새로운 정치적 영향력으로 이어질지가 결정될 전망이다.
■ '2026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어떻게 선정됐나
시사저널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설문조사는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에 의뢰해 조사했다. 그동안은 행정관료·교수·언론인·법조인·정치인·기업인·금융인·사회단체·문화예술인·종교인 등 10개 분야에서 100명씩 전문가 총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했는데, 2022년부터 비중을 조정해 10개 분야에서 50명씩 총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다. 대신 일반 국민 조사를 신설해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진행했다. 올해 조사는 7월6일부터 7월24일까지 진행됐다. 전문가 조사방법은 리스트를 이용한 전화 여론조사로 이뤄졌다. 일반 국민 조사는 패널을 활용한 온라인 조사로 실시됐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4.4%포인트다. 올해 6월말 행정안전부 주민등록 인구 통계 기준으로 가중값을 부여했다. 두 조사 모두에서 구조화된 질문지를 조사도구로 활용했다. 문항별 최대 3명까지 중복응답을 허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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