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나이-출신학교 등 같이 올려
“아는 인물이면 알려달라” 거래 유도
딥페이크 성범죄 등 2차피해 우려
“OO대 법학과 OO년생 OOO. 관심 있으면 쪽지 주세요.”1000여 명이 모인 한 텔레그램 채널 운영자가 젊은 여성의 수영복 차림 사진과 함께 올린 메시지다. 이 채널에는 지난해 2월부터 지난달까지 10∼30대로 추정되는 일반인 여성 수십 명의 이름과 출신 학교, 나이 등 개인정보가 무더기로 올라왔다. 함께 공유된 사진 수백 장 중에는 속옷 차림 사진이나 여권, 학생증 등도 있었다. 운영자는 “친분이 있는 인물이 있으면 연락 달라”며 별도 ‘거래’를 유도했고, 일부 사진에는 “견본을 받았는데 매우 좋다”는 댓글이 달렸다.
● 여성 사진 올리고 ‘샘플 장사’… 경찰 수사
일부 피해자는 휴대전화 번호뿐 아니라 다른 사람과 찍은 사진까지 노출된 상태였다. 운영자는 채널 소개 글에 “그들(피해자들)의 해킹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채널에 사진과 개인정보가 올라온 한 피해자는 “예전에 클라우드 저장소 전체를 해킹당하고 금전 협박을 받았다”고 호소했다.
해당 채널은 사진을 보고 이용자가 연락해 오면 쪽지(DM)를 통해 추가 사진을 제공하고 대가를 요구하는 식으로 운영된 것으로 보인다. 운영자는 특정 고등학교나 대학교 출신 여성의 명단을 올려둔 채 ‘아는 여성이 있으면 연락하라’고 공지했다. 일부 사진에는 “샘플을 보내줄 수 있냐”는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피해 여성의 외모를 깎아내리는 악성 댓글도 다수 있었다.
인천경찰청은 2차 피해 우려가 크다고 보고 자료가 유출된 경위를 규명하고 운영자를 추적하기 위해 수사에 착수했다. 학교 내부망 등을 통해 개인정보가 유출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
앞서 5월엔 CJ그룹 전현직 20, 30대 여성 임직원 약 330명의 이름, 직급, 소속, 전화번호와 사적 사진이 텔레그램 채널에 대량 유출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부산에서는 학교 전산장비 관리업체 직원이 업무상 접근 권한을 악용해 여성 교직원 194명의 사진과 영상 22만1921개를 빼돌려 딥페이크 음란물을 제작하다가 적발됐다.
● 유출 사진, 딥페이크 재료로 악용
이렇게 보안 메신저 등에서 공유된 사진과 개인정보는 사생활 침해를 넘어 스토킹과 딥페이크 음란물 제작 등 또 다른 성폭력에 악용되는 사례가 많다. 지난해 9월 의정부지법 고양지원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서 얻은 20대 여성 14명의 얼굴 사진을 다른 여성의 나체와 187차례 합성해 유포한 피고인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 그는 수사 과정에서 “원본 사진은 인터넷 커뮤니티나 검색엔진에서 구했다”고 진술했다. 성범죄 전문 김지진 변호사는 “최근 딥페이크 범죄는 학교·직장 동료 같은 지인을 넘어 모르는 사람의 사진까지 끌어다 쓰는 방식으로 번지고 있다”고 했다.
유출된 개인정보를 온라인에서 지워달라는 요청도 빠르게 늘고 있다. 성평등가족부에 따르면 지난해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의 전체 삭제 지원 31만8020건 가운데 이름과 나이 등 신상 정보는 10만242건으로 전년(7만7652건)보다 29.1% 늘었다. 피해자 대다수는 10, 20대 여성이었다. 경찰청에 접수된 사이버 성폭력 사건도 2023년 2314건에서 지난해 4273건으로 2년 새 1.8배로 급증했다.전문가들은 젊은 여성의 이름, 학교, 직장 등 개인정보를 사진과 결합해 거래하는 행태를 막지 않으면 심각한 2차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따라서 피해자가 유출 사실을 발견한 뒤 신고하고 삭제를 요청하는 현재의 사후 대응 체계를 고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우리나라는 아직 피해자가 먼저 피해를 인지하고 신고해야 삭제가 가능한 구조”라며 “영국처럼 텔레그램 등 피해가 발생하는 플랫폼에 재유포 차단 기술과 책임을 강제하지 않으면 가해 속도를 따라갈 수 없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