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바다에서 낯선 상어의 출현 소식이 잇따르고 있다. 강원도 양양의 청새리상어, 울산 앞바다에서 낚싯바늘에 걸린 백상아리, 제주 한치잡이 어선을 따라온 고래상어가 뉴스에 등장한다. 해수 온도 상승과 해양열파로 난류성 어종의 분포가 달라지면서, 먹이를 따라 이동하는 상어의 출현 양상도 변하고 있다.
한국 연근해에는 청상아리·악상어·무태상어·고래상어 같은 대형 상어부터 별상어·돔발상어·수염상어까지 49종이 분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가운데 28종은 국제적으로 멸종위기에 처한 종으로 평가되지만, 국내 해양보호생물로 지정된 상어는 고래상어와 홍살귀상어 두 종뿐이다.
상어가 나타날 때마다 언론은 ‘식인상어’라는 말로 공포를 앞세운다. 그러나 상어는 인간을 위협하는 괴물로만 설명할 수 없는 존재다. 바다 생태계의 균형을 지탱하는 포식자이자, 오랫동안 해녀와 어부의 삶 가까이에 있었던 생명이기도 하다.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의 ‘상어 기록단’은 제주와 한반도 바다에서 상어를 직접 접해온 어부와 해녀, 수협 관계자와 연구자를 만나 그 기억을 기록한다. 과거 사람들은 상어와 어떻게 관계를 맺었으며, 오늘의 바다에서 상어의 출현은 어떻게 달라지고 있을까. 모두 열 차례로 기획한 ‘한반도 상어 인터뷰’의 세 번째 이야기를 전한다.
그는 자신을 "상어를 연구한 학자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가 들려준 이야기에는 과거 제주 사람들이 상어를 활용한 방식, 해녀들이 제사를 위해 상어를 잡던 기억, 잡은 상어를 포구에서 나누던 관습 등 과거 제주 사람들과 상어의 관계가 생생하게 담겨 있었다. 제주시에 있는 '사진예술공간 큰바다영'에서 고광민 연구자를 만나, 제주 사람들이 기억하는 상어 이야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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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광민 연구자님 전시를 설명 중이신 고광민 연구자님 |
| ⓒ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 |
※ 인터뷰에 소개된 제주 생활사 자료와 복원 도구의 관람은 큰바다영에 방문 전 문의
"예전에는 동문시장에 상어가 늘 있었어"
- 예전 제주에서 상어는 어떤 존재였습니까?
한 20년 전까지만 해도 동문시장에 가면 상어가 늘 있었어. 비께(*수염상어의 제주어)도 있었고, 주테(*돔발상어류의 제주어) 말고도 작은 상어들이 있었지. 상어는 된장에 찍어 먹어야 제맛이야. 강초(*식초의 제주어)를 많이 넣은 된장에 회를 찍어 먹으면 얼마나 맛있는지 몰라. 하나 사 오면 처마 밑에 매달아 두고 한 달이고 두 달이고 먹었어. 여름에도 잘 썩지 않았거든. 그런데 어느 날부터 동문시장에 가 보니까 상어가 안 나오더라고. 내가 상어회를 먹어본 지도 벌써 20년은 된 것 같아. 그때부터 제주에서 상어가 귀해진 게 아닌가, 나는 그렇게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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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두툽상어 1971년 동문시장 어물전에서 팔던 상어 |
| ⓒ 제주학연구센터 |
- 잡아 온 상어는 일상에서 어떻게 썼습니까?
버릴 게 하나도 없었지. 살은 회로 먹고, 내장은 삶아서 기름을 만들었어. 옛날에는 큰 가마솥에다가 상어 내장을 넣고 삶아서, 애(*간의 제주어) 같은 데서 기름을 다 뽑아내는 거지. 살에는 기름이 없으니까. 내장에서 기름을 뽑아서 바로 삶아야지, 여름이니까 하루만 지나도 금방 썩어버리거든. 그러니까 바로 삶아야 이제 기름을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었지. 그 기름을 등잔기름으로도 쓰고 램프 오일로도 썼어. 상어는 고기만 귀한 게 아니었어. 껍질도 아주 귀하게 썼지. 거칠거칠하잖아? 그걸로 무를 채 써는 강판도 만들고, 말 탈 때 쓰는 말안장에도 상어 껍질을 대고 그랬어. 그리고 도리깨 묶을 때, 이걸 도깨(도리깨) 저록(ᄌᆞ록 / 표준어로 자루)이라고 하는데, 육지 사람들이 열이라고 부르는 그 부위를 묶을 때도 상어 껍질을 썼지.
- 연구자님 집안에서도 상어 이야기를 많이 들으셨습니까?
우리 어머니가 고기 잡는 걸 참 좋아하셨어. 아주 타고난 물질꾼이었던 거지(웃음). 그런데 우리 할머니는 생각이 달랐어. "집안이 살려면 밭농사를 해야 한다." 그게 할머니 생각이었지. 옛날에는 보리나 조를 농사지어야 먹고살 수 있었으니까 그 말씀도 맞는 말이야. 그런데 우리 어머니는 밭일을 그렇게 싫어하셨어. 밭에 가면 답답하고 짜증이 났다는 거야. 그래서 시어머니 눈치를 보다가도 어떻게든 핑계를 만들어 바다로 갔어. "밭에만 있으면 숨이 막혔는데, 물속에 들어가면 별천지였어." 그렇게 바다에 들어가면 상어도 작살로 쏘고, 고기 잡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는 거야.
"장마가 끝나면 비께는 가만히 누워 있었어"
- 장마철을 기점으로 상어를 잡는 사람들이 달라졌다고 들었습니다.
이 상어는 장마 끝날 때까지는 남자들이 잡거든. 해녀 말고 남자. 내 말 들어, 아직 안 끝났어(웃음). 장마 끝나기 전에는 아저씨들이 그물로 잡았지. 왜 그러냐. 상어가 이동하는 시기니까. 이동을 하니까 그물에 걸리는 거야. 정월 하순쯤 되면 마라도 서쪽 바다에 제일 먼저 보이기 시작해. 그렇게 제주도를 한 바퀴 돌면서 이동하는 거지. 그러니까 그물에도 걸리고 낚시에도 걸리는 거야. 그런데 소서(小暑), 그러니까 양력 7월 초쯤 장마가 끝나잖아. 그때가 되면 어부들이 그물을 다 걷어버려. 이제 안 놓아. 왜냐하면 상어 이동이 끝났거든.
- 장마가 끝나면 상어는 어디에 있었습니까?
나는 학자는 아니야. 그래도 오래 듣고 보고 공부해 보니까 상어가 안 움직이는 이유는 두 가지라고 봐. 첫째는 새끼를 낳으려고. 새끼를 배었으니까 배가 아픈 거지. 그러니까 바위 그늘이나 돌 틈, 해조류 밑에 들어가 눕는 거야. 또 하나는 더위야. 장마가 끝나면 본격적인 여름이잖아. 바닷물도 뜨거워지고. 그러니까 상어도 드러눕는거야. 배가 아파서 누웠든, 더워서 누웠든, 아무튼 장마가 끝나면 상어는 움직이지 않았어.
- 그러면 상어를 잡을 수 없었겠네요.
못 잡지. 움직이지 않으니까. 그때부터는 어멈(*해녀 어머니) 차례야. 제주에서는 여름에도 식게(*제사)를 해야 하잖아. 그런데 그 시절에는 냉장고가 없었어. 돼지고기는 하루 지나면 썩어버리지만, 상어는 바람만 잘 통하면 오래 두어도 괜찮았거든. 그래서 제사 있는 집에서는 해녀 어머니를 찾아가는 거야. "우리 식게 해야 하는데 상어 한 마리 좀 잡아줍서." 그러면 어머니들이 물속으로 들어가는 거지. 장마 끝나고 한두 달은 제사철이라 어머니들이 상어를 잡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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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염상어 과거 제주 해녀들이 잡았던 비께 |
| ⓒ 고광민 |
- 해녀들은 상어가 어디 있는지 어떻게 알았습니까?
우도에 '고동여'라는 데가 있어. 하고수동 앞바다지. 거기가 우도에서 물살이 제일 세. 그런데 용암이 갈라져 틈이 아주 많이 나 있어. 남에서 북으로 물살이 움직일 때도 의지가 되고, 북에서 남으로 움직일 때도 의지가 돼. 그래서 고동여가 바로 비께의 질이야. 질이라는 건 집이라는 말이야. 하우스지. 비께는 어디 가느냐 하면 고동여로 가. 거기 큰 자갈밭도 있고 좁은 바위틈도 있어. 장마가 지나면 비께가 거기 가만히 누워 있었어. 움직이지도 않고.
- 해녀들은 어떻게 상어를 잡았습니까?
비께는 새끼를 배고 누워 있으면 잘 안 움직여. 발로 툭 건드려도 가만히 있는 놈도 있어. 그런데 한 번 물면 절대 안 놓지. 그래서 어머니들이 재미있는 방법을 썼어. 소중이(*물소중이, 고무 잠수복이 보급되기 전 해녀들이 입던 옆트임 형태의 전통 무명 하의)를 벗어 비께 입에 대고 흔드는 거야. 상어가 그걸 물면 그 소중이를 잡고 물 위로 끌어내는거지, 그 다음 작살을 쓰는 거지.
- 연구자님께서 복원하신 작살도 그때 쓰던 작살입니까?
맞아. 우도는 나무가 귀했잖아. 그래서 작살도 다르게 만들었어. 찌르면 자루는 빠지고 철로 만든 작살 촉만 상어 몸에 남게. 그러면 나무 자루는 물에 떠. 그걸 다시 주워 오는 거지. 자루는 또 써야 하니까. 이거 상어만큼 귀한 거야. 그래서 내가 그 작살(*수염상어를 잡는 제주 전통 작살인 비께마치)을 복원하려고 통영까지 갔어. 거기 아직도 만드는 사람이 있더라고. "옛날 제주 상어 작살 하나 만들어줍서." 그렇게 부탁해서 뚝딱뚝딱 세 개를 만들어 왔지. 이제 그런 것도 안 남았잖아. 누군가는 남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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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께마치 고광민 연구자님께서 복원한 비께마치 |
| ⓒ 고경대 큰바다영 관장 |
"우리 바다에서 잡은 건 혼자 가질 수 없었어"
- 어렵게 잡은 상어는 누구 것이었습니까?
혼자 가지면 안 되지. 포구에서 상어를 잡아 오면 남자가 칼로 한 판 썰어. 그러면 구경 나온 사람들한테 다 나눠줘야 돼. 안 주면 그건 나쁜 사람이야. 왜냐하면 이 바다가 너네 바다가 아니잖아. 공동 소유인 거야. 너는 수고한 만큼만 더 가져. 그런데 나머지는 같이 나눠야지. 혼자 다 가져가는 사람은 있을 수가 없어. 만약 해녀가 백 명이면, 백 명이 다 같이 살아야 하는 거야. 한라산 노루 같은 거는 정해진 공식이 있지만 이거는 그처럼 공식은 없어. 그래도 그냥 다 나눠주는 거야. 제사 있는 집에서는 상어를 많이 가진 해녀에게 가서 부탁도 하고, 쌀하고 바꾸기도 하고, 그렇게 서로 살았어. 장마 끝나고 한두 달 동안 이어지는 이런 문화는 나는 세계 어업사에서도 굉장히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
- 지금 제주 바다는 왜 이렇게 달라졌을까요?
사람 때문이지. 바다가 너무 많이 변했어. 옛날에는 여름이면 상어가 들어가 쉬는 해조류 숲이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 바다 고기는 나무로 치면 새야. 철새처럼 왔다 갔다 하는데 숲이 없어졌으니 원래 있던 상어들도 머물 곳이 없는 거지. 요즘은 식인상어가 늘었다거나 새로운 상어가 들어왔다고만 말하잖아. 나는 그렇게만 보지 않아. 원래 제주 바다를 이루던 세상이 고꾸라져 비어 있는 바다를 다른 상어들이 차지하러 오는 거라고 봐. 바다가 변하면 고기도 변해. 그 변화를 사람 마음대로 막을 수는 없어."
- 상어를 무서워하는 지금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십니까?
옛 어른들은 자연을 이기려고 한 게 아니라 자연에 맞춰 살았어. 해녀들은 바다에서 돌고래를 만나도 '배알로 배알로 저레 가라' 하며 서로 지나갔다고 해. '너는 너대로 놀고, 나는 나대로 논다'라는 거지. 큰 상어가 나타나면 해녀들은 '모여!' 하고 한곳으로 모였어. 몸집이 커 보이게 해서 자기들을 지킨 거지. 자연을 없애려 하기보다 이해하면서 함께 사는 방법을 알았던 거야. 바다가 변하면 변하는 대로 내어주고 사는 거야. 자연의 순리를 받아들이는 거지.
- 앞으로도 이런 기록을 계속 이어나갈 생각이십니까?
특별한 이유는 없어. 재미있잖아. 이걸 내가 안 하면 영원히 사라지잖아. 조금만 노력하면 되는데. 봤으면 복원해야지, 제주에 없어졌으면 다른 데 가서라도 찾아야지. 그게 당연한 거야. 괜찮지. 매우 괜찮은 일이지. 이런 건 기록해야 돼. 안 그러면 다 없어져 버리잖아.
고광민 연구자님에게 상어는 계절을 따라 제주 바다를 찾아 머물다 떠나는 생명이었다. 상어는 해녀들이 제사를 위해 잡아 오던 생활의 일부였으며, 살은 음식이 되고, 내장은 기름이 되고, 껍질은 생활 도구가 되었다. 상어 한 마리에는 제주 사람들의 생활과 공동체가 함께 담겨 있었다.
[한반도 상어 인터뷰]
1. 14살에 처음, 55살에 마지막... 제주 어부의 상어잡이 이야기
2. 동해안 상어 출현에 동해수산연구소는 연구를 시작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해양시민과학센터 파란과 제주의 소리에도 실립니다. 한반도 상어 인터뷰 연재 시리즈 중 일부입니다 (세번째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