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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나랏빚에 AI 투자까지 ‘자금 블랙홀’… 30년물 금리 19년 만 최고

그래픽=백형선·Midjourney 그래픽=백형선·Midjourney
미국의 소비·물가 지표가 잇따라 둔화했는데도 장기 국채 금리는 거꾸로 치솟고 있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미국 정부의 재정 적자와 막대한 국채 발행에다 인공지능(AI) 투자 붐에 따른 빅테크의 회사채 발행까지 가세해 채권 시장의 자금 수요가 급증한 가운데 중동발(發) 유가 상승이 장기 인플레이션 우려를 다시 자극한 결과다. 시장에서는 미국의 ‘재정 체력’과 채권 시장이 감당해야 할 막대한 자금 수요를 우려한 투자자들이 장기 국채를 보유하는 대가로 더 높은 금리를 요구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美 국채 30년물, 19년 만 최고
17일(현지 시각) 미 국채 30년물 금리는 전 거래일보다 약 0.05%포인트 오른 연 5.31%까지 치솟았다. 2007년 6월 이후 19년 만의 최고 수준이다. 10년물 금리도 4.72%대로 상승했다. 반면 연준의 기준금리 전망에 민감한 2년물은 4.18% 수준에 머물렀다. 단기물보다 장기물 금리가 더 크게 오르면서 장·단기 금리 차가 벌어지는 이른바 ‘수익률 곡선 스티프닝(가팔라짐)’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미국 정부의 재정 불안 등이 연준의 통화정책과 별개로 시장 금리를 밀어 올린 셈이다.

특이한 점은 최근 발표된 미국 경기 지표만 놓고 보면 국채 금리가 내려가는 게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7월 소매 판매는 전월보다 0.6% 감소했고 생산자물가지수(PPI)도 전월 대비 보합에 그쳤다. 경기가 식고 물가 압력이 낮아지면 연준의 금리 인상 가능성이 줄어 국채 금리도 떨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실제 시장의 추가 금리 인상 기대도 낮아졌다. 그런데도 30년물 금리는 반대로 뛰었다. 투자자들이 장기 국채를 평가할 때 연준의 통화정책보다 미국의 재정과 국채 수급을 더 중요하게 보기 시작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재정 적자
시장에서 특히 우려하는 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미 정부의 나랏빚이다. 미 재무부에 따르면 지난 7월 연방 정부의 재정 적자는 4320억달러(약 612조원)로 7월 기준 사상 최대였다. 2026 회계연도 들어 10개월간 누적 적자는 1조7990억달러에 달해, 회계연도가 두 달이나 남은 상황에서 이미 2025 회계연도 전체 적자 규모를 넘어섰다. 메디케어 등 정부 지출과 국채 이자 부담 증가가 재정을 압박하고 있다.

적자를 메우려면 미 정부는 더 많은 국채를 찍어내야 한다. 하지만 시장에 국채 공급이 쏟아질수록 이를 받아줄 투자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더 높은 금리를 제시해야 한다. 실제 지난 13일 미 재무부가 실시한 250억달러 규모 30년물 국채 입찰의 낙찰 금리는 5.216%로 2001년 이후 최고를 기록했다.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자산’이라는 미 국채를 30년간 보유하는 데 투자자들이 그만큼 높은 보상을 요구하고 있다는 뜻이다.

AI 투자 열풍에 중동 정세까지
AI 투자 열풍도 뜻밖의 복병이 되고 있다. 빅테크 기업들이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등 AI 인프라 구축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면서 회사채 발행을 크게 늘리고 있기 때문이다. 신용도가 높은 빅테크가 비교적 높은 금리의 회사채를 대거 내놓으면 투자자 입장에서는 미 국채와 경쟁할 만한 새로운 투자처가 생긴다. 바클레이즈는 이런 AI 관련 회사채 공급 증가와 미 정부의 막대한 국채 발행이 동시에 시장으로 쏟아지면서 장기 금리를 밀어 올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중동 정세도 여기에 기름을 부었다. 미국과 이란의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지면서 17일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2.6% 오른 배럴당 84.50달러, 브렌트유는 2.7% 상승한 90.87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유가가 다시 뛰면 물가가 쉽게 잡히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커진다. 30년간 고정된 이자를 받아야 하는 장기 국채 투자자에게 인플레이션은 특히 큰 위험이다. 투자자들이 물가와 재정의 불확실성을 감수하는 대가로 요구하는 추가 금리, 이른바 ‘기간 프리미엄’이 높아질 수 있다는 얘기다.

미국발 고금리는 한국에도 부담이다. 미 장기 국채 금리 상승은 한국 국고채 금리에도 상승 압력을 가해 기업·가계의 대출 금리 하락을 제한할 수 있다. 미국의 높은 금리가 장기화하면 원화 가치와 외국인 자금 흐름의 변동성도 커져 한국은행의 금리 인하 운신 폭을 좁힐 수 있다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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