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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활용 힘들었던 플라스틱이 90분만에 원료로 부활했다 [언박싱 연구실]

<56> 건국대 화공생명공학부 고문주 교수팀
폐에폭시서 핵심 원료 최대 94% 회수 기술 개발
50℃서 분해 속도 420배 향상… 상용화 추진
고가 탄소섬유도 100% 원형 보존 길 열려
항공기·풍력 날개 등 첨단 복합소재 재활용 가능
택배 상자를 열 때의 설렘, 기억하시나요? 대학 연구실에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삶을 바꿀 놀라운 발견들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다만 '논문'이라는 두꺼운 포장지에 쌓여있을 뿐이죠. '언박싱 연구실'에서는 복잡한 수식과 이론 대신, 여러분이 알고 싶은 알맹이만 쏙 골라 담겠습니다. 자, 그럼 상자를 열어볼까요? 오늘 언박싱할 주인공은 바로 이 연구입니다. 버려지던 폐복합소재를 온화한 용액에 넣어 에폭시 플라스틱만 녹여내고, 손상 없는 탄소섬유 직물과 화학 원료를 동시에 회수하는 원리를 나타낸 개념도. 회수한 원료와 탄소섬유는 처음과 똑같은 성능을 지닌 차세대 항공기 버려지던 폐복합소재를 온화한 용액에 넣어 에폭시 플라스틱만 녹여내고, 손상 없는 탄소섬유 직물과 화학 원료를 동시에 회수하는 원리를 나타낸 개념도. 회수한 원료와 탄소섬유는 처음과 똑같은 성능을 지닌 차세대 항공기 및 풍력발전기 부품으로 다시 태어난다. (그래픽=제미나이 생성)[파이낸셜뉴스] 한 번 굳으면 다시 녹일 수 없어 대부분 버려졌던 에폭시 플라스틱을 새것처럼 되살릴 기술이 나왔다. 건국대학교 화공생명공학부 고문주 교수팀이 버려진 플라스틱에서 핵심 원료를 최대 94%까지 회수해 다시 새 플라스틱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 비행기 날개부터 풍력발전기까지… 버려지던 첨단 소재 다시 쓴다
에폭시는 열에 강하고 단단해 비행기와 자동차, 풍력발전기 날개, 전자기기 기판 등 첨단 산업 곳곳에서 쓰이는 대표적인 고성능 플라스틱이다. 특히 가볍고 강한 탄소섬유강화플라스틱(CFRP)을 만들 때 탄소섬유를 단단히 붙잡아주는 핵심 소재 역할을 한다.

하지만 에폭시는 한 번 굳으면 열을 가해도 다시 녹지 않는 '열경화성 플라스틱'이다. 제품 수명이 끝나면 대부분 매립하거나 소각해야 했고, 값비싼 소재도 함께 버려질 수밖에 없었다.

연구팀의 기술은 이런 한계를 해결했다. 사용이 끝난 에폭시를 분해해 핵심 원료를 다시 회수하고 새 플라스틱으로 만들 수 있다. 또 고가의 탄소섬유도 직물 형태 그대로 회수할 수 있어 항공기와 풍력발전기, 친환경 모빌리티 분야에서 발생하는 복합소재 폐기물을 줄이고 소재 비용도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 분자 속 '끊어지는 연결고리'… 50℃에서 90분 만에 분해
비결은 플라스틱 분자 구조를 새롭게 설계한 데 있다. 연구팀은 식물에서 얻는 천연물질인 유제놀을 활용해 플라스틱 내부에 필요할 때만 끊어지는 연결고리를 넣었다. 평소에는 기존 에폭시처럼 단단한 성질을 유지하지만, 재활용 과정에서는 이 연결고리만 선택적으로 끊어지도록 만든 것이다.

실제로 50℃의 염기성 용액에 넣자 연결고리가 빠르게 끊어졌고, 플라스틱은 90분 만에 용액 속으로 완전히 분해됐다. 연결고리를 두 개 넣은 구조는 한 개만 넣은 구조보다 분해 속도가 약 420배 빨랐다. 기존 기술이 120~220℃의 높은 온도나 별도의 촉매를 필요로 했던 것과 비교하면 훨씬 낮은 온도에서 재활용이 가능하다는 점도 장점이다.

■ 핵심 원료 94% 회수…탄소섬유도 원형 그대로
연구팀은 분해된 용액에서 플라스틱의 핵심 원료를 최대 94%까지 회수했다. 이를 다시 이용해 만든 에폭시는 처음 만든 제품과 거의 같은 수준의 강도와 탄성을 유지했다. 물을 흡수하는 비율도 30일 기준 0.76%를 기록했고 두 달(60일)이 지나도 큰 변화가 없어 재활용 이후에도 안정적인 특성을 보였다.

탄소섬유 복합재(CFRP) 실험에서도 성과가 확인됐다. 50℃ 용액에 1시간 동안 담가두자 에폭시만 분해되고 탄소섬유 직물은 형태 손상 없이 100% 회수됐다. 회수한 직물의 틀어짐 각도도 5도 미만으로 나타나 원래 구조를 거의 그대로 유지했다.

기존에는 탄소섬유 복합재를 재활용하면 섬유를 잘게 부수는 방식이어서 품질이 크게 떨어졌다. 이번 기술은 값비싼 탄소섬유를 원형 그대로 다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앞으로 수명이 다한 항공기나 풍력발전기 날개, 폐전기차 부품 등에서 탄소섬유와 에폭시를 함께 회수해 다시 고성능 제품을 만드는 데 널리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현재 건국대학교는 해당 기술의 기술이전과 사업화를 추진하고 있으며, 대학 자회사인 ㈜리포크를 통해 생산 및 상용화를 준비하고 있다. 이번 연구 결과는 고분자 분야 국제학술지 'Macromolecules' 표지 논문으로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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