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만난 한 시중은행 부행장이 자녀 이야기를 하며 꺼낸 말이다. 그는 두 딸에게 내 집 마련을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를 자주 한다고 한다. 향후 주택 공급이 늘면 집값이 하락 국면에 들어설 수 있는 만큼 기다려도 늦지 않다는 것이다.
문제는 두 딸의 반응이다. 지금이 아니면 평생 집을 사지 못할 것이라는 이른바 포모(FOMO·소외 공포) 때문에 늘 불안해한다는 것이다. 2020~2021년 부동산 상승기를 거치며 ‘지금 사지 않으면 영영 살 수 없다’는 공포를 학습한 청년들 앞에는 여전히 집값과 소득 사이의 큰 간극이 놓여 있다.
정부는 이 같은 청년과 실수요자를 겨냥해 금융 지원을 늘리기로 했다. 올해 10월부터 신혼부부가 부부 합산소득에 발목 잡히지 않도록 보금자리론 소득 요건을 완화한다. 내년에는 만 39세 이하 생애 최초 주택 구입 청년이 4억 원 이하 비아파트를 살 때 이용할 수 있는 ‘청년미래보금자리론’을 신설한다.
하지만 돈을 빌릴 기회를 늘리는 것만으로 청년의 주거 불안까지 해소할 수 있을까. 한국 사회는 집값 하락을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구조라는 점을 잊어선 안 된다. 담보가치가 떨어지면 금융회사 건전성에 부담이 생기고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의 사업성 악화는 금융권 부실과 건설경기 위축으로 번질 수 있다. 가계와 금융회사, 건설사와 정부까지 집값을 둘러싸고 촘촘하게 연결돼 있다.
집값을 대하는 우리의 심리는 더 복잡하다. 집값 상승을 비판하면서도 내 집값은 오르길 바라는 게 현실이다. 집을 산 사람에게 “살기 좋냐”보다 “집값이 얼마나 올랐냐”고 묻는 게 자연스러운 사회다.
한국 사회는 정말 집값 하락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을까. 집값은 안정돼야 하지만 내 집값은 올라야 한다는 모순을 그대로 둔 채 청년에게 더 많은 돈을 빌려주는 것만으로 주거 불안을 해결하기는 어렵다. 청년 주거정책은 청년이 더 빨리 집을 사게 하는 데서 그쳐서는 안 된다. 당장 집을 사지 않아도 뒤처진다는 공포 없이 자신의 삶을 설계할 수 있도록 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정인혁 금융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