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조선디자인랩 김영재미국·영국·일본 등 주요국 장기 국채 금리가 수십 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각국의 나랏빚이 누적된 상황에서 중동 전쟁 장기화로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진 게 국채 금리 상승을 자극하고 있다. 이는 다시 금리 상환 부담을 높이면서 글로벌 시장의 불안 요인이 되고 있다.
◇각국 재정 부담에 물가 상승 겹쳐
18일 국제금융센터 등에 따르면, 이날 30년 만기 미국 국채 금리는 연 5.33%를 기록하며 2007년 6월의 연 5.40% 이후 19년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일본도 이날 10년 만기 국채 금리가 장중 연 2.95%로 1996년 이후 30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30년 만기 영국 국채 금리도 이날 장중 연 5.84%로 연 6%에 육박했다. 지난 5월 15일 기록한 1998년 이후 28년 만에 최고치(연 5.85%) 수준이다. 프랑스 등 유럽 주요국도 최근 장기 금리가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장기 금리가 뛰는 것은 각국 정부의 재정 부담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미국 연방정부 부채는 40조달러 돌파를 앞두고 있으며 막대한 전쟁 비용으로 나랏빚 부담이 확대되고 있다. 일본은 다카이치 정부의 확장적 재정 정책에 대한 우려가 늘고 있고, 영국 등 유럽은 성장 둔화로 재정 부담이 커지고 있다. 저금리 시대에 쌓인 막대한 빚이 고금리 시대에 국채 발행과 이자 부담을 키웠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근 미국과 이란 간 전쟁 장기화에 따른 물가 상승세를 누르기 위해 정책 금리를 올릴 수 있다는 전망도 늘고 있다. 17일 ICE선물거래소에서 10월 인도분 브렌트유 선물 종가는 90.87달러로 2.65% 올랐다. 미국과 이란 간 종전 양해각서(MOU) 60일 협상 시한이 만료된 가운데 외교적 해법이 교착에 빠진 탓이다. 앤드루 베일리 영국중앙은행 총재는 지난달 30일 금리 동결을 결정한 후 “중동 전쟁이 장기화해 2차 파급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한다면 물가 대응을 위해 긴축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이런 가운데 외신들은 채권 금리를 올려 정부의 방만한 재정 운용을 견제하는 투자자들인 이른바 ‘채권 자경단(bond vigilantes)’이 다시 움직일 수 있다는 경고도 하고 있다.
최근 미·영·일 등 주요국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동결했는데도 시장 금리가 오르는 상황이란 것이다. 투자은행 바클레이즈의 안슐 프라단 금리 전략 책임자는 “시장 안정을 위해서는 재정 지출 감소와 미 재무부의 채권 발행 전략 변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야 한다”고 했다.
◇AI 기업들 채권 발행도 영향
최근 아마존·구글·메타 등 미국 AI(인공지능) 기업들이 데이터센터 투자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초장기 채권을 대규모로 발행하는 것도 장기 금리 상승 압력을 높이고 있다. 정부와 기업이 장기채 시장에서 한정된 자금을 놓고 경쟁하는 모양새다.
국채 금리 상승은 기업의 자금 조달 비용을 늘리고 가계 주택담보대출 등 금리도 끌어올릴 수 있다. 고금리가 장기화하면 기업 투자와 가계 소비가 위축돼 경기에도 부담이 되고, 미래 이익의 현재 산정 가치가 낮아지면서 성장주와 기술주 등 증시에도 악재가 될 수 있다.
한국은 반도체 호황으로 세수 여건이 개선되고 있지만, 반도체 경기가 꺾이면 적자 국채 의존도가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오건영 신한 프리미어 패스파인더 단장은 “향후 미국과 일본이 자칫 등 떠밀리듯 금리를 올릴 경우 우리 외환시장의 변동성이 크게 높아지고 반도체 수출 역시 부정적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