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김성규인공지능(AI) 열풍을 타고 사상 최고치 행진을 이어온 미국 증시가 뜻밖의 복병을 만났다. 바로 AI 기업들이 스스로 밀어 올린 장기 금리다. 빅테크들이 데이터센터와 AI 반도체에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붓기 위해 회사채 발행을 크게 늘리면서, 미 정부의 막대한 국채 발행과 함께 채권 시장의 한정된 투자 자금을 놓고 경쟁하고 있다. 시장에 쏟아지는 채권이 늘어나면 투자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더 높은 금리를 제시해야 하고, 이는 미 국채를 비롯한 장기 채권 금리를 밀어 올리는 압력으로 작용한다. 이렇게 치솟은 장기 금리는 다시 높은 미래 성장성을 전제로 몸값이 오른 AI·기술주의 가치를 압박한다. ‘AI 투자 확대→회사채 발행 증가→자금 확보 경쟁→장기 금리 상승→AI주 하락’이라는 역설적인 고리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우려는 18일(현지 시각) 뉴욕 증시에서 현실로 나타났다. 이날 미 30년 만기 국채 금리는 장중 5.327%까지 올라 2007년 이후 19년 만의 최고치를 기록했다.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지수는 1.33% 하락했고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는 5% 급락했다.
AI 기업, 올해 이미 2000억달러 빚내
AI 붐이 채권시장까지 뒤흔드는 것은 투자 규모가 과거 기술 혁신과 비교해도 이례적으로 크기 때문이다. 시장조사업체 LSEG에 따르면 아마존·알파벳·메타·오라클은 7월 7일까지 올해 약 1940억달러어치의 회사채를 발행했다. 이 같은 기업들의 자금 수요에 각국 정부의 재정 적자를 메우기 위한 국채 발행까지 겹치면서 한정된 투자 자금을 놓고 정부와 기업이 경쟁하는 ‘자본 부족(capital scarcity)’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우려되는 점은 회사채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는 것이다. 골드만삭스의 ‘AI 기업 부채 증가가 신용 시장에 부담을 줄 것인가’ 보고서에 따르면, 대형 기술 기업 4곳이 올해 발행한 회사채 규모는 지난해 연간 발행액을 이미 뛰어넘었고, AI 붐 이전 연평균의 4배가 넘는다. 더구나 지금까지는 빅테크의 탄탄한 재무 건전성 등에 힘입어 급증한 회사채 물량이 시장에서 소화돼 왔지만 최근엔 하이퍼스케일러 회사채의 발행액 대비 주문액이 지난 2월 약 5배에서 7월 2배 미만으로 떨어지는 등 투자 수요가 둔화하는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금리 오르면 몸값 부담도 눈덩이
문제는 이렇게 AI가 밀어 올린 금리가 다시 AI 기업의 높은 주가를 위협한다는 점이다. 금리가 오르면 미래에 벌어들일 이익의 현재 가치가 떨어진다. 당장 이익보다 수년 뒤 폭발적인 성장을 기대하며 높은 가격을 매긴 성장주일수록 금리 상승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안전 자산인 국채에서도 높은 수익을 얻을 수 있게 되면 비싼 주식을 보유할 유인도 줄어든다.
AI 관련주의 몸값은 이미 크게 불어난 상태다.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2022년 말 이후 AI 관련 기업들의 시가총액은 약 27조달러 늘었다. 반면 AI가 앞으로 미국 기업들의 이익을 늘려줄 경제적 가치는 현재 가치로 따지면 약 9조달러로 추산된다. 현재의 시가총액 증가를 정당화하려면 기본 시나리오를 뛰어넘는 AI의 생산성 향상과 이익 증가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골드만삭스는 특히 AI 기업들이 경제 전체에 돌아갈 생산성 향상의 몫을 상당 부분 가져가야 현재 주가 수준을 설명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닷컴 버블과 유사? “금리 상승이 시험대”
이에 현재 AI 붐이 닷컴 버블과 다른 길을 갈 수 있을지를 가를 주요 시험대 중 하나로 금리 추이가 꼽힌다. 피델리티는 AI 열풍의 버블 여부를 판단할 5대 지표 가운데 하나로 ‘금리 사이클’을 꼽았다. UBS도 닷컴 버블 당시 미 연준의 금리 인상이 버블 붕괴를 촉발했다며 금리 여건을 핵심 변수로 지목했다. AI 기업들의 몸값이 크게 높아진 상황에서 장기 금리가 계속 오를 경우, AI 투자에 대한 기대가 실제 이익으로 이어지는지를 더욱 엄격하게 평가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