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탕·밀가루 담합 사건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아래 '공정위') 의결서와 전분·전분당 담합 사건 검찰 공소장에 나오는 조사·수사 결과를 종합하면, 이제까지 안 보였던 또 하나의 사실이 눈앞에 드러난다.
열아홉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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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년 4월 5일 서울 시내의 한 중화요리점 간판 사진이다. 당시 연합뉴스는 "대표적인 서민 음식인 짜장면의 올해 평균 가격이 50여 년 만에 60배 넘게 오른 것으로 조사됐다"며 "특히 최근 5년 새 가격 상승폭이 26.9%에 달하는데 이는 주재료인 밀가루와 식용유의 가격이 큰 폭으로 올랐기 때문으로 풀이된다"고 전했다. |
| ⓒ 연합뉴스 |
19회.
2018년 5월부터 2025년 6월까지, 약 7년 동안 설탕·밀가루·전분당 업체들의 담합으로 인해 이들 식재료 가격이 인상된 횟수다.
설탕·밀가루·전분당 가격 인상은 2021년(5회)과 2022년(6회)에 특히 많았다.
공정위 의결서에 따르면 CJ제일제당·삼양사·대한제분·사조동아원 등은 밀가루 B2B 전 거래처에 대한 공급가격을 2021년 4월부터 5월 사이에 1000원∼1500원/20kg가량 인상했다. 2021년 5월부터 6월 사이에는 CJ제일제당·삼양사·대한제당 등의 담합으로 설탕 가격이 kg당 40원 올랐다.
검찰 공소장에는 2021년 6월 14일 전분당 업체들이 과당 30원, 포도당 70원, 물엿 65원, 식품용 전분 95원, 산업용 전분 65원 인상에 합의했다고 나와 있다. 2021년 9월∼10월 사이에 설탕 공급가격이 kg당 80원 또 올랐고, 같은 해 10월부터 11월 사이에는 밀가루 가격이 3000원∼4000원/20kg가량 인상됐다.
2022년에는 설탕 가격이 2회, 밀가루 가격이 2회, 전분·전분당 가격이 2회 각각 올랐다.
이런 식으로 대기업들이 민생과 직결된 식재료 가격을 담합으로 약 7년간 열 아홉 번이나 올리는 동안, '짜장면 값'은 몇 번 올랐을까.
네 번
네 번이라고 했다.
서울 서초구 같은 자리에서 21년 동안 중식당을 운영하고 있다는 A씨의 말이었다. 13일 <오마이뉴스>와 만난 그는 기억을 더듬다가 테이블을 정리하던 직원에게 이렇게 물었다.
- 2018년 여기에서 일하기 시작할 때, 짜장면 값 얼마였지?
"5000원이었던 것 같아요."
돌아온 대답은 비교적 정확했다. 가격조사 전문기관 한국물가정보에 따르면 2018년 짜장면 평균 가격은 5011원이었다. 직원과 대화를 마친 A씨가 말했다.
"지금 짜장면이 9000원이니까, 네 번에 걸쳐서 오른 거네요. 5000원에서 6000원, 7000원, 8000원. 9000원으로는 작년에 올렸던 것 같아요. 8000원은 2024년."
A씨에게 '설탕·밀가루·전분당 가격 담합 인상 내역(2018년 5월 ∼ 2025년 6월)'을 인쇄한 종이를 내밀었다. 잠시 인쇄물을 지켜보던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화가 난다"라는 것이었다.
"대기업들 횡포가 너무 심하잖아요. 이게 서민들이 먹는 음식인데... 이렇게 원재료 값을 올려버리면 업주들은? 인건비 내고, 가게세 내고, 재료비 내고, 마진 먹으려면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잖아. 원재료 값이 안 오르게 되면, 우리도 굳이 가격을 올릴 필요가 없거든. 손님들도 와서 하는 얘기가 '아휴, 또 올랐냐', 그럼 '내가 올렸냐... (탁자를 두 번 치며) 지금 밀가루 한 포에 얼만지 아세요'.
옛날엔 밀가루 한 포에 22kg이었어요. 지금은 20kg이에요. 양을 줄이고 가격은 더 올려버리니까. 게다가 식용유, 설탕, 전분, 각자 올라버리니까, 다 서민들 먹는 음식인데도 가격을 안 올릴 수가 없잖아요. (인쇄물을 보며) 기분이 안 좋죠. 우리가, 소상공인들은 힘이 없잖아요.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쓸 수밖에."
횡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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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년 5월부터 2025년 6월까지 대기업들의 설탕·밀가루·전분당 가격 담합 인상 내역. |
| ⓒ 챗GPT로 이정환 생성 |
중식당에서 설탕은 핵심 조미료다. A씨는 "설탕이 안 들어가면 음식이 시거나 쓰거나 하니까, 탕수육, 짜장면, 깐쇼새우 등 안 들어가는 데가 없다"라고 했다. 밀가루는 물론 전분이나 전분당도 마찬가지다. "튀김류는 무조건 전분을 넣어야 한다. 안 넣고 튀길 수가 없으니까"라고 말하는 A씨의 입에서 다시 탕수육, 깐쇼새우 등 메뉴가 흘러나왔다. 서민에게 친숙한 음식들이다.
"손님들 감안하지 않을 수가 없잖아요. 대기업들처럼 '쓰려면 쓰고 말라면 말아라. 가격 올리겠다', 일방적으로 이렇게 할 수가 없으니 뭐 어떻게 해요. 그저 '많이 시켜주세요' 이런 식으로 얼버무리면서 영업할 수밖에. 구청에서도 또 조사가 나와요. '짜장면 가격 얼마나 올렸습니까. 방배동은 얼만데 여기는 9000원이네요?', 뭐 이런 식으로. 너무 비싸게 받으면 제재를 받을 수 있거든요.
'왜 가격 올리냐' 그러는데... 아니 (다시 탁자를 두드리며), 계속 원재료 값 올리니까 우리도... 적자 보면서 장사를 할 수는 없는 거 아니냐, 세금은 세금대로 또 다 내지. 이런 사정을 손님에게 다 설명할 수가 없잖아요. '아니 이렇게 해서 설탕이 얼마 올랐고, 밀가루가 얼마 오르고, 다 올랐는데 어떻게 합니까?' 이렇게 할 수가 없지 않습니까."
A씨는 대기업들을 상대로 한 집단소송에 참여했다. 지난달 29일 법무법인 LKB평산집단소송센터는 "중식당 12곳을 대리해 국내 제분업체 7개사를 상대로 밀가루 가격 담합에 따른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라고 밝혔다. A씨가 운영하는 중식당은 소송에 참여한 12곳 중 한 곳이다. 대기업을 상대로 한 싸움, 두렵지는 않았을까.
"겁, 났죠. 겁나는데 더 이상 가격을 올리는 건 힘들 것 같아서, 이걸 방지하려고 하는 의미도 있고, 그 다음에, 여태까지 대기업들 횡포가 너무 심했다, 너무 불공평했다. 그럼 결과적으로 얘들(대기업들)만 좋은 거 아니냐, 얘들은 받고 싶은 만큼 올려서 다 받아먹고, 일은 일대로 하는데도 우리는? 너무 억울하다. 지금까지 장사, 정말 오래 했지만, 이건 아니다. 한 번은 짚고 넘어가야겠다."
[관련기사] 중식당 12곳 '밀가루 대첩' 나섰다... "우리에겐 바주카포 있다" (https://omn.kr/2j8n5)
아빠
끝으로 A씨에게 물었다.
- 집단소송 참여를 망설이는 다른 사장님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우리 12명이 용기 냈으니까, 더 많이 동참해주면 고맙죠. 그런데 강요는 못 하지. 소송이란 게... (사장님들이) 복잡한 거 싫어해, 돈 들어가는 거 싫어해. 사장님들은 1000원, 100원, 이런 거에 민감하거든요. 다들 시간도 없고, 점심 장사 끝나면 물건 사오기도 바쁜데, 그 사정을 잘 아니까. 그리고 기자님, 지금 식당들 계속 인원을 감축하고 있습니다. 직원이 5명이었던 식당이, 4명, 3명, 계속 줄어요. 그러다 보니 일이 힘들어지니까 직원들은 임금 올려달라고 할 수밖에 없고. 그래서 지금 주방에서 사장들이 웍(중식 조리기구) 돌리는 경우가 많이 생겼어요. 그런 곳이 지금 많아요."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 직원들과 함께 홀을 정리하던 A씨의 모습이 떠올랐다. 테이블 12개와 룸 4개 규모의 중식당이었다. 이곳은 나이 스물 일곱에 처음 창업했다는 그의 33년이 집약된 장소이기도 했다.
A씨는 노트북을 닫고 일어서는 기자에게 부탁했다.
"기사 나가면 문자로 꼭 좀 보내줘요. 집단소송한다고 했더니 애들이 걱정 많이 하거든. '아빠가 총대 메는 거 아니냐'. 애들한테 보여주고 싶어요. 아빠가 이런 일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