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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선택의 기로 ‘AI판 핵우산’…그러나 지붕은 우리 것이어야

류제명 과학기술정보통신부 2차관(가운데)이 정부서울청사에서 독자 AI파운데이션 모델 1차 평가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사진=디지털데일리] 류제명 과학기술정보통신부 2차관(가운데)이 정부서울청사에서 독자 AI파운데이션 모델 1차 평가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사진=디지털데일리]

[디지털데일리 이상일기자] 개인적으로 정부의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이른바 독파모 사업을 처음부터 반긴 쪽은 아니었다. 오히려 부정적이었다.

‘국산’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정부가 개발비를 지원한 뒤 공공시장이 구매해 주는 방식을 오랫동안 봐 온 탓이다. 과거 국산 전사적자원관리(ERP) 육성 과정에서도 정부 지원을 계기로 업체가 난립하고 저가 경쟁과 졸속 구축이 문제로 지적됐다. 보호받는 시장 안에서는 생존했지만 세계시장에서 경쟁할 제품과 생태계를 만드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다.

독파모도 비슷한 길을 걸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글로벌 빅테크가 천문학적인 자본과 컴퓨팅 자원, 세계 최고 수준의 인재를 투입하는 상황에서 정부 예산으로 몇 개 기업을 선정해 ‘국가대표’라는 이름을 붙인다고 격차가 좁혀질 것인가. 성능과 비용 경쟁에서 뒤처진 모델이 국산이라는 이유로 공공시장에 공급되는 등 한국 소프트웨어 산업의 실패가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였다.

하지만 최근 들어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앤트로픽의 '미토스'가 촉발한 미국 정부의 AI에 대한 규제와 통제가 우리나라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을 보면서 AI의 무기화가 현실화됐기 때문이다.

한술 더 떠 최근 로이터가 확인한 7월 16일자 미 국무부 외교 전문은 미국 외교관들에게 각국의 ‘AI 주권’ 주장을 반박하도록 지시했다.

미국 AI 제품이 가장 우수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다른 나라가 경쟁 AI 시스템을 처음부터 만드는 시도는 시간과 자원의 낭비라는 논리를 펴라는 내용이었다. 미국 기업이 안전한 AI 인프라를 지어주면 그 인프라는 해당 국가의 것이 된다는 판매 논리도 담겼다.

여기에 미국이 8월에는 한국도 참여하고 있는 팍스 실리카(Pax Silica)를 중심으로 각국에 미국과 중국의 AI 생태계 가운데 한쪽을 선택하도록 압박하는 서한까지 준비한 것으로 전해졌다. AI가 제품 경쟁을 넘어 동맹의 경계와 국가의 편을 가르는 헤게모니 수단이 된 것이다.

이러한 미국의 제안은 일종의 ‘AI판 핵우산’에 가깝다.

세계 최고 수준의 모델과 클라우드, 보안 생태계를 제공할 테니 미국의 기술 질서 안으로 들어오라는 것이다. 한국이 이 우산을 거부할 이유는 없다. 미국의 기술력은 압도적이며 한미동맹과 반도체·클라우드 공급망을 고려하면 미국 생태계와의 결합은 불가피하다.

문제는 우산의 손잡이를 누가 쥐고 있느냐다.

기술은 사용할 수 있어도 접근권과 업데이트, 허용 용도, 수출 여부를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권한이 미국 정부와 미국 기업에 있다면 그것을 온전한 소유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외교적 이해가 충돌하는 순간에는 제재와 통제의 수단이 될 수 있다.

이 대목에서 디즈니+ 드라마 ‘폭군’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작품에서 미국 정보기관은 한국이 비밀리에 개발한 초인 프로젝트 ‘폭군’의 폐기와 샘플 인도를 요구한다. 그 과정에서 국정원 관계자는 미국이 한국의 핵무기 개발을 막은 데 이어 폭군까지 갖지 못하게 한다는 취지의 울분을 드러낸다.

당시에는 극단적인 국수주의자의 불만처럼 들렸다. 지금 다시 생각하면 그 감정의 실체는 조금 다르게 다가온다.

폭군이 아니라 AI라면 어떨까.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전략 기술을 개발할 능력이 있는데도 동맹국이 제공하는 기술을 사용하면 충분하다는 이유로 스스로 포기해야 하는가.

그렇다고 모든 것을 국산화하자는 갈라파고스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 GPU와 서버, 클라우드, 데이터, 모델, 애플리케이션을 모두 국내 기술로 채우겠다는 목표는 현실적이지도 효율적이지도 않다. 미국과 경쟁하는 초거대 범용 모델을 세금으로 복제하는 것 역시 소버린 AI의 목적이 될 수 없다.

한국이 선택해야 할 길은 ‘동맹형 자립’이다. 미국 중심의 AI 생태계와 긴밀히 연결하되, 국가의 핵심 기능을 우리 결정으로 지속할 수 있는 최소한의 독자 역량을 확보하는 전략이다.

나는 여전히 독파모가 실패할 가능성을 경계한다. 정부 사업과 공공 조달에 기대 기술 발전을 멈춘다면 과거 국산 ERP와 한국 소프트웨어 산업이 걸었던 길을 되풀이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 위험 때문에 독자 모델 자체를 포기해야 한다는 생각에서는 물러섰다.

독파모의 목적은 당장 오픈AI나 앤트로픽을 이기는 것이 아니다. 어느 날 외부의 정책 변화로 모델 접근이 차단되더라도 국가의 핵심 기능을 유지하고, 동맹과의 협상에서 최소한의 선택권을 가질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미국의 AI 우산을 걷어찰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산을 빼앗겼을 때 비를 견딜 지붕마저 남에게 맡겨서는 안 된다. ‘폭군’은 없어도 된다. 하지만 우리 AI를 가질 권리와 그것을 끝까지 운용할 능력은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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