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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발레 맞아?”…낯선 표정이 웃음이 되기까지 [취재후]


*8월 중순 서울에서는 발레 두 편이 같은 주말 막을 올렸다. 서울시발레단 창단 2주년 기념공연 '죽음과 소녀' 유니버설 발레단의 '백조의 호수'. 취재 과정에서 연습실과 공연장을 오가며 무용수들을 만났지만, 다 해결하지 못한 궁금증들이 있었다. 이 작품에 출연한 이상은 무용수는 현재 영국 내셔널발레단 소속 리드수석이다. (이번 공연에는 서울시 발레단 객원 수석으로 참여) 영국으로 돌아간 그녀와 전화로 못다한 이야기를 나눴다.*

■"엑스레이처럼 드러나 보인다"…중력과 싸우는 예술 '발레'

전화가 연결된 것은 런던의 아침 시간이었다. 아직 시차 적응이 되지 않았다고 했다. 14일부터 16일까지 공연을 하고 17일에 바로 영국으로 출국. 그리고 곧장 연습실로 향했다. 발레를 잘 모르는 기자가 물었다. 이 정도 자리에 오르면 춤이 좀 쉬워지지 않느냐고.

"어렸을 때는 오래했던 작품을 또 하면 쉬워지겠구나 생각했는데, 할수록 더 어려워지는 게 발레인 것 같아요. 작은 동작 하나까지도 마치 엑스레이처럼 드러나 보이거든요."

발레는 몸으로 중력과 싸우는 예술이다. 발끝으로 서서 회전하고, 뛰어오르고, 착지한다. 그런데 그 싸움을 힘들어 보이지 않게 하는 것까지가 기술이다. 다리가 떨려도 표정은 평온해야 한다. 작은 실수도 숨기기 어렵다. 무용수에게 몸은 유일한 도구다. 화가에게 붓이 있고 연주자에게 악기가 있다면, 무용수는 자기 몸으로 작품을 만든다. 중력과 싸우면서 힘들어 보이지는 않아야 하고, 한 치도 어긋나지 않으면서 자유로워 보이기까지 해야한다니! 어려운 예술이다.


■고통, 그 너머의 희열

그런데도 몸으로 어떤 한계를 넘었을 때의 희열은 말로 설명할 수 없다고 했다. 이번에 그가 춘 작품은 알렉산더 에크만의 '선인장(Cacti)'다. 무용수들은 사각 플랫폼 위에 올라가서 손바닥으로 바닥을 치고 발을 구르며 숨소리까지 리듬으로 만들었다. 오케스트라는 없고, 현악 연주자 네 명이 무대 위로 올라와 있었다. 무대 위에서 대사가 나오고 내레이션이 흐르는데, 그 말투도 진지하면서 우스꽝스러웠다. 객석에서는 처음엔 "이게 발레 맞아?" 하는 표정이 나왔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되게 낯설어 하시는 게 보이더라고요. '이게 뭔가' 하는 표정들이어서. 그런데 공연이 점차 진행되면서 웃으시는 분들도 계시고, 조금 더 편하게 본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더 많이, 더 넓은 무대에 서고 싶었다"

지금의 자리에 이르기까지의 길은 순탄하지 않았다. 유니버설발레단에서 활동하며 성장했지만, 큰 키(182cm) 때문에 함께 출 파트너를 찾기가 쉽지 않았단다. 유럽 오디션에 도전했다. 첫 도전에서는 모두 떨어졌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몇 년 뒤 다시 유럽행을 택하면서 마음을 정했다. 이번에도 안 되면 그만두겠다고. 그런데 드레스덴에서 연락이 왔다. 그러나 제안된 것은 솔리스트가 아니라 군무 계약이었다.

"그래도 올 수 있겠냐고 해서, 저는 정말 너무 가고 싶다고 그 계약이라도 제발 달라고 빌다시피 해서 들어갔거든요."

그곳에서 13년을 보내며 수석이 됐다. 그때 함께 일하던 예술감독이 영국 국립발레단으로 옮기면서 같이 가자는 제안을 받았고, 영국으로 왔다.


■설 무대가 없다

한 무용수가 이런 시간을 견디며 성장하려면 무엇보다 설 무대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한국의 현실은 쉽지 않다.

"독일은 주마다 극장이 있고 발레단이 있어요. 그런데 한국은 공공 발레단이 많지 않기 때문에 들어갈 수 있는 발레단이 워낙 제한적여요. 많은 무용수들이 외국 진출을 목표로 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고요."

같은 문제를 국내 무용인들도 공개적으로 제기했다. 무용인 연대체 '범무용계 생존연대'는 지난 18일 호소문을 발표하고 무용진흥법 제정을 촉구했다. 이들이 지목한 것은 세계 무대의 성취와 국내 현실 사이의 간극이었다. 한국 무용수들이 국제 무대에서 활약하고 있지만, 정작 국내에서 춤을 계속할 수 있는 자리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서울시 발레단의 실험

서울시발레단에는 단장이 없다. 운영은 세종문화회관이 맡는다. 국내 발레단은 대체로 단장 한 사람이 중심을 잡는 방식으로 운영돼 왔다. 국립발레단은 강수진 단장이 2014년 부임해 네 차례 연임했고,유니버설발레단은 문훈숙 단장이 30년 넘게 이끌고 있다. 단장이 곧 발레단의 얼굴이자 색깔이었다. 그런데 서울시발레단은 그 방식을 따르지 않았다. 단장도, 정년 단원도 두지 않았다. 작품이 정해질 때마다 시즌 무용수와 프로젝트 무용수, 객원 무용수로 팀을 꾸린다. 국내 유일의 공공 컨템퍼러리 발레단이라는 정체성과 맞물린 운영 방식이다. 이상은 무용수도 처음 객원 수석 제의를 받았을 때 놀랐지만, 지금은 이 방식의 장점을 더 크게 본다.

"운영 방식의 유연함에서 장점이 있는 것 같고, 무용수를 채용하는 부분에서도 공정성이 더 도드라지는 것 같아요."

세종문화회관 측은 단장이 없는 것이 책임자가 없다는 뜻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작품의 운영 책임은 세종문화회관이, 작품의 예술적 책임은 안무가와 창작진이 맡는다. 한 사람에게 권한을 집중시키는 대신 제작기관과 예술가가 책임을 나누는 구조라는 것이다. 이상은이 맡은 객원 수석도 이 구조에서 만들어진 자리다. 해외에서 활동하는 한국 무용수들에게 국내 무대를 마련하기 위해 신설됐다. 한국에서 설 자리가 부족해 해외로 나갔던 무용수가, 새로 생긴 공공발레단을 통해 한국 관객 앞에 서는 셈이다. 그렇다고 이 방식에 대한 우려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작품마다 안무가가 바뀌면 발레단의 색깔은 무엇으로 남는지, 정년이 보장되지 않는 무용수들이 어떻게 오래 성장할 수 있을지는 여전한 과제다.

■인생사 수많은 감정이 몸짓이 되다.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을 몸으로 표현하는 걸 계속 연습하는 과정들을 통해 제가 더 성숙해지는 것 같아요"

말로 할 수 없는 것을 몸으로 옮기는 일. 그것이 20년을 춰도 발레가 쉬워지지 않는 이유이자, 그래도 계속 발레를 하게 되는 이유였다. 관객이 발레 무대의 객석에 앉는 이유도 어쩌면 거기 있을 것 같다. 인생사 수많은 감정들을 무용수들이 몸으로 표현하는 걸 보며, 함께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울고 웃게 되니 말이다. 이번 공연에서도 처음엔 낯설어하던 관객들이 공연이 진행될수록 웃기 시작했다. 무용수들이 만들어낸 변화였다.

[연관 기사] “이제는 돌아올 무대가 있다”…K-발레 스타들의 화려한 귀환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638725

#컨템퍼러리 발레란?

발레의 기본 기법을 쓰되 정해진 이야기나 형식에 매이지 않는 현대 발레. 토슈즈 없이 맨발로 추거나 대사와 무대 장치를 활용하기도 한다. 서울시발레단은 국내 유일의 공공 컨템퍼러리 발레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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