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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수백억짜리 왜 기증해”…국보 기회 날린 ‘신숙주 초상’

가장 오래된 공신그림 ‘신숙주 초상’
‘국보 승격’ 이미 2년전 예고됐지만
“내가 소유자” 문중 갈등으로 무산
유산청 “재접수하면 심의 부칠 것”

조선 전기 문신 신숙주(1417∼1475)의 초상화(1455년 제작 추정)가 지난 2024년 7월 보물에서 국보로 승격 예고된 후 소유권 분쟁에 휩싸여 이후 절차 진행이 이뤄지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정예고 후 ‘국보 승격’이 불발된 건 이 사례가 처음이다.

1977년 보물로 지정된 ‘신숙주 초상’은 가로 109.5㎝, 세로 167㎝ 크기의 비단 채색화로 충북 청주의 구봉영당에 봉안돼 전해졌다. 국가유산포털 상의 소유자(관리자)는 고령 신씨 문중이다. 2024년 국가유산청은 “가장 오래된 공신 초상으로, 제작 당시 원형을 비교적 충실하게 보전하고 있어 미술사적·역사적 가치가 높다”며 국보 승격을 예고했다. 당시 동산문화유산분과위원회는 2023년 이뤄진 전문가 조사를 토대로 소유자 측의 ‘보관·관리방안 제출’을 단서로 조건부 가결했다. 그러나 6개월 기한 내 관련 절차가 진행되지 않으며 국보 승격이 무산됐다. 당시 담당했던 국가유산청 관계자는 20일 중앙일보에 “문중 내 소유권 분쟁으로 후속 조치가 이뤄지지 않아 심의 시일이 지나버렸다”고 말했다.

지난 2024년 보물에서 국보로 승격 예고됐던 '신숙주 초상'. 사진 국가유산포털 지난 2024년 보물에서 국보로 승격 예고됐던 '신숙주 초상'. 사진 국가유산포털
실제로 ‘신숙주 초상’을 둘러싼 분쟁은 영정 소장·관리자인 신모씨에 대한 경찰 고발로까지 이어졌다. 중앙일보가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2024년 고령 신씨 대종회(大宗會, 종중의 중앙 조직)가 청주시장에게 진정서를 낸 데 이어 2025년 청주상당경찰서가 ‘문화유산의 보존 및 활용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신모씨를 조사했다. 당시 경찰은 “국가유산청 정기조사(2022년)와 과학조사(2023년)도 문제없이 이뤄지는 등 피의자가 신숙주 초상을 은닉·손상했다는 증거가 없다”면서 ‘불송치 결정’을 했다.

이와 관련해 대종회 측 신원식 청주향교 전교(典校, 대표)는 “이 영정은 본래 경기도 양주(현 의정부시 고산동)의 신숙주 종손 집안에 전해지다가 1920년 16대 종손(봉례공파)이 청주로 낙향한 후 소안공파가 보관·관리하게 된 것”이라면서 “문중의 영광이라는 생각에 고령 신씨 종친회 총회가 국보 승격에 협조하도록 결정했음에도 신모씨가 훼방 놓고 있다”고 주장했다. 신모씨는 대종회 측을 대신해 경찰 고소에 나선 소안공파 종손의 작은아버지로 영정 관리를 맡은 건 약 6년이었다고 한다.

신 전교는 “청주시에서 구봉영당에 2억원을 들여 CCTV 등도 설치해줬는데 그 사람이 초상화를 가져가서 작년부터 향사(종친회의 큰 제사) 때도 안 가져온다”면서 “종손은 항온·항습, 도난방지 차원에서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하자는데 그 사람이 말을 안 듣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통화에서 ‘이게 수백억짜리인데 왜 국가에 기증해야 하느냐’는 소리도 하더라”고 했다. 국보·보물 등 국가지정문화유산도 매매·증여·상속 등에 따른 소유권 이전은 가능하다. 다만 소유자가 바뀌면 국가유산청장에게 신고해야 하며, 국보·보물의 국외 반출은 원칙적으로 금지된다.

충북 청주시 상당구 가덕면에 위치한 구봉영당. 보한재(保閑齋) 신숙주(申叔舟, 1417~1475)의 영정을 경기도 양주의 종가에서 옮겨 봉안한 사당이다. 보물 ‘신숙주 초상’은 애초 이곳에 봉안돼 전해지다가 2024 충북 청주시 상당구 가덕면에 위치한 구봉영당. 보한재(保閑齋) 신숙주(申叔舟, 1417~1475)의 영정을 경기도 양주의 종가에서 옮겨 봉안한 사당이다. 보물 ‘신숙주 초상’은 애초 이곳에 봉안돼 전해지다가 2024년 고령 신씨 문중에서 소유권 분쟁에 휩싸인 뒤 원본은 다른 데로 옮겨지고 현재는 모사본이 걸려 있다. 사진 청주시 경찰 조서에 따르면 신모씨는 “(우리) 문중에서 대대로 관리해 왔는데 느닷없이 대종회 소유라고 주장하고 있다. 국가유산청의 점검 절차를 잘 따라왔고 현재도 문제 없다”고 진술했다. 신모씨는 20일 통화에서 “조상님 제사 때 모시는 영정에 자꾸 이상한 소리를 하는데 소송도 무혐의 처분으로 끝났다”며 불쾌감을 드러낸 뒤 “국보 승격 그딴 건 모르는 일”이라고 했다.

앞서 초상화 전시를 위해 고령 신씨 문중과 접촉했던 김혜원 국립대구박물관장은 “국보급 유물의 현상태 확인이 시급하다”고 했다. 국가유산청 문화유산정책과 조주성 과장은 “지정예고까지 했음에도 심의가 이뤄지지 않아 아쉽다”면서 “관련 사안이 정리돼 다시 접수되면 심의에 부칠 것”이라고 했다. 국가유산청이 5년마다 하는 정기조사는 내년에 이뤄진다.

☞신숙주 초상=집현전 학사를 거쳐 병조판서, 영의정 등을 역임한 보한재 신숙주(1417∼1475)가 초록색 관복 차림으로 의자에 앉아 있는 그림이다. 신숙주는 수양대군의 계유정난(1453년) 때 공신으로 1455년 세조 즉위 후 좌익공신 1등에 녹훈됐는데 이때 하사받은 초상화로 보인다. 15세기 초상화로 독보적 가치를 지녀 1977년 보물로 지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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