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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서술·논술형 수능, 학생·학부모 부담만 늘어난다

수능 절대평가도 변별력 떨어져 문제 많다 '2027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6월 모의평가'가 열린 6월4일 대구 동구 청구고등학교에서 고3 학생들이 시험을 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027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6월 모의평가'가 열린 6월4일 대구 동구 청구고등학교에서 고3 학생들이 시험을 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대통령 직속 국가교육위원회(국교위)가 올해로 도입 32년째를 맞는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에 서술·논술형 평가를 도입하는 내용의 시안을 마련해 지난 14일부터 오는 28일까지 대국민 온라인 의견 수렴을 진행하고 있다.

국교위의 중·장기 국가교육발전계획(2028~2037년) 시안은 현재 초등학교 6학년생이 시험을 치르는 오는 2033학년도부터 수능 전 과목을 절대평가로 전환하고, 객관식과 서술·논술형 문제를 혼합하는 방식이다. 시안이 확정될 경우 서술·논술 문제 비중은 30~40% 정도로 출발해 단계적으로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차정인 국교위 위원장은 지난 5일 청와대에서 열린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수능이 32년간 시행되면서 기출 문제를 피하면서 정상적인 문제를 출제하는 데 한계에 봉착했다"면서 "수능에서 서술·논술형 평가를 도입할 경우 시험 기술을 익히기 위해서 학원에 갈 필요가 없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국회 교육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서술·논술형 평가가 또 다른 사교육을 낳을 수 있다는 이주영 개혁신당 의원의 지적에 "시험의 기술적인 요소는 공교육에서 충분히 다 익혀나갈 수 있다. 학생들은 폭넓게 독서해 두는 정도면 충분하다"며 낙관론을 펴기도 했다.

국교위가 서술·논술형 수능을 도입하려는 취지는 암기 위주의 시험에서 벗어나 인공지능(AI) 시대에 논리적 사고력과 창의력을 키워 미래형 인재를 양성하려는 것으로 압축된다. 취지는 충분히 이해하지만 학생과 학부모, 교사 등에게 미칠 영향이 적지 않은 만큼 사회적 합의 없이 섣불리 도입해서는 안 된다.

국교위는 우선 일선 교육 현장의 목소리를 경청했으면 한다.

현재 중·고등학교 내신 서술·논술형 평가를 시행하고 있지만 단답형 주관식 위주다.

교사들은 학생들의 사고력을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학급당 학생 수와 교사 1인당 담당 학생 수를 줄이고, 충분한 출제 및 채점 시간과 교사 간 채점 기준을 조정할 시간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서술 또는 논술형 평가에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만큼 업무 부담이 증가한다는 호소일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교원단체는 고교 학점제와 AI 디지털교과서 도입으로 학생 수준에 맞는 맞춤형 교육을 하기 위해서는 교원을 증원하고 학급당 학생 수를 20명 이하로 줄여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여기에 논술형 수능 채점 수요까지 더해지면 교원 확충 인원은 더 늘어나게 된다.

중·고교에서도 내실있게 이뤄지지 않고 있는 제도를 수십만명이 응시하는 대입 수능에 적용하는 것은 물리적으로도 무리일 수 밖에 없다. 지난해의 경우 55만명이 넘는 수험생이 수능을 치렀는데 서술·논술형 문제가 출제됐다면 성적 통지와 대입 전형이 기존 일정에 맞춰 이뤄질 수는 없었을 것이다.

선결 과제는 시험의 공정성과 채점의 객관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시험의 형태만 바꾼다고 해서 사고력 있는 인재를 양성할 수는 없다. 초·중등학교 교육 과정이 토론식이나 글쓰기 수업 위주로 이뤄질 때 가능하다.

독일, 프랑스, 핀란드 등 유럽 국가들은 깊이 있는 논술형 문제로 평가하고 있는데 어릴 때부터 비판적 사고와 논리적 글쓰기를 하는 교육 문화가 정착돼 있어서다. 우리나라도 교육 과정 개편을 통해 토론 등의 수업이 일상화되고 난 이후에 새로운 평가 체제를 도입하는 것이 타당하다.

국교위는 수십만명이 치르는 수능에서 서술이나 논술형 문제를 어떤 방식으로 채점해 공정성과 신뢰도를 확보할 것인 지, 명확하게 방법을 제시해야 한다. 막연히 AI가 1차 스크리닝을 하는 등 보조 역할을 하고 교사나 채점 전문위원이 확인하면 된다는 식으로 쉽게 얘기해서는 안 된다.

논술시험은 객관식이나 단답식과 달리 정답이 없다고 하지 않나. 채점하는 사람의 주관에 따라 점수가 달라질 수 있기에 2중 3중의 교차 평가 시스템과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 교차 평가를 위해서는 3만명 가량의 교사가 필요하다는 분석도 있다. 인력 확보와 채점을 위한 교육 등의 문제도 생긴다.

현행 객관식 수능이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채점자에 따라 점수가 달라질 가능성이 없고 동일한 기준으로 채점된다는 점에서 높은 신뢰도를 유지하고 있다. 일본은 2021학년도 대학입학공통테스트에 국어와 수학 서술형 문항 도입을 추진했다가 공정성 논란 끝에 무산됐다고 한다.

차정인 국교위 위원장은 독서만 많이 하면 학원에 다니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만 학부모들의 생각은 다르다. 새로운 평가 방식을 도입하면 그에 맞는 학원을 하나 더 다니게 할 뿐이라는 볼멘소리도 한다.

국교위는 수능의 모든 과목을 절대평가로 전환한다는 방침도 밝히고 있는데 변별력 약화가 우려된다. 줄세우기 식 경쟁 교육에서 탈피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하지만 수험생의 실력 차이를 가리지 못하는 시험은 학생들의 장래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수능과 내신이 절대평가로 전환될 경우 대학이 학생을 선발하기 어려워져 논술이나 면접 등 대학별 고사가 강화될 수 있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국교위는 오는 10월 말 대입제도 개편안 시안을 공개하고, 국민 여론 수렴 과정을 거쳐 내년 3월 개편안을 확정할 방침이라고 한다.

대입 제도 개편에 앞서 교육 과정, 교수·학습 방법 등 교육 전반을 어떻게 혁신할 것인지에 대한 로드맵도 함께 제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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