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첫 입주 오세훈표 장기전세
2027년부터 20년 만기 속속 도래
입주민들 "갈 곳 없다" 계약연장 요구
매수 기회 주는 '미리내집'과 형평성 논란도
이광훈 서울시 공공임대 임차인 권익증진위원장 또한 장기전세에 입주한 입주민이다. [사진 | SBS 뉴스헌터스 영상 캡쳐]서울 강남의 아파트에 전세보증금 3억원을 내고 살고 있는 이광훈 서울시 공공임대 임차인 권익증진위원장.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그가 입주한 주택이 저렴한 보증금으로 최장 20년을 살 수 있는 서울시 장기전세주택이기 때문이다. 2015년에 입주해 10년 넘게 거주 중인 위원장은 이 집을 떠나는 상황을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고 했다.지난 18일 SBS '뉴스헌터스'에 출연한 이 위원장은 "20년이라는 거주기간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건 아니다"라면서도, "20년 뒤에는 정부가 어떤 조치를 내놓을 것이란 막연한 기대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행동에 나섰다. 무주택 자격을 유지한 장기전세 입주자들이 계속 살 수 있도록 계약을 연장해 달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목소리는 앞으로 계속 커질 전망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19년 전인 2007년 만든 '장기전세'가 내년 첫 만기를 맞는다. 2027년부터 20년 거주기간을 채우는 가구가 줄줄이 나오는데, 공교롭게도 그 정책의 첫 만기를 처리해야 하는 사람 역시 오 시장이다.
장기전세주택은 2007년 오세훈 시장이 시작한 주거사다리 정책이다. '미리 내 집(장기전세주택Ⅱ)' 현장을 둘러보는 오세훈 서울시장. [사진 | 뉴시스]■ 2007년 시작한 '20년 전세' = 장기전세주택은 오 시장의 첫 임기였던 2007년 시작했다. 월세 없이 주변 전세시세의 80% 이하 수준의 보증금을 내고 최장 20년간 거주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집을 소유하지 않고도 장기간 안정적으로 살 수 있는 새로운 주거모델을 만들겠다는 취지였다.첫 공급은 2007년 5월 송파구 장지지구와 강서구 발산지구 등에서 이뤄졌다. 같은 해 8월 지금의 마곡수명산파크2단지를 시작으로 실제 입주가 시작됐다. 올해 3월 서울시가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2007년 이후 공급한 장기전세주택은 241개 단지 3만7463호에 이른다. 현재 장기전세에 거주하는 가구 가운데 10년 이상 장기거주 가구만 1만6735가구다.
그동안 얻은 혜택도 적지 않았다. 서울시는 장기전세의 평균 보증금이 서울 아파트 평균 전세가격의 54% 수준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2007년 최초 입주자의 보증금은 현재 서울 아파트 평균 전셋값의 23% 수준이다.
그런데 이제 장기전세의 전제였던 '최장 20년'이 현실의 문제가 되고 있다. 2007년 입주한 마곡수명산파크2단지와 송파파인타운10ㆍ11단지 등을 시작으로 2027년부터 20년 거주기간을 채우는 가구가 속속 등장할 예정이다.
[그래픽 | 챗GPT]■ "20년 혜택 충분" vs "나가서 어디로" = 장기전세는 애초 분양전환을 전제로 공급한 주택이 아니다. SH공사의 장기전세 입주자 모집공고에도 '분양 전환되지 않는 공공주택'이라고 명시돼 있다. 입주자격을 유지해도 거주할 수 있는 기간은 최장 20년이다. 게다가 장기전세를 원하는 다른 무주택자가 줄을 서 있다. 모집공고에 따라 기존 입주자의 거주기간을 연장하기 어렵다는 것이 서울시와 SH공사의 입장이다.20년간 시세보다 저렴한 보증금으로 안정적으로 살았다면 그동안 자산을 모아 주택을 마련하거나 퇴거에 대비했어야 한다는 논리다. 실제로 20년은 짧은 시간이 아니다. 하지만 지난 20년 동안 서울 집값과 전셋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서울 아파트 평균 전셋값의 4분의 1도 안되는 보증금을 돌려받아 비슷한 주거환경을 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입주민들의 생각은 다르다. 이 위원장은 뉴스헌터스 인터뷰에서 "공공임대주택 특별법령상 (장기전세주택 거주 기간이) 20년이라는 것은 임대 사업자의 의무 기간이다. 20년 후는 정책 결정권자의 재량 사항"이라고 주장했다.
■ 1세대는 퇴거만, 2세대는 매입 가능 = 여기에 입주민들이 내세우는 형평성 문제가 있다. 오 시장이 '장기전세 시즌2'로 내놓은 신혼부부 장기전세주택 '미리내집' 때문이다. 미리내집도 시세보다 저렴한 전세보증금으로 장기간 거주할 수 있다는 점에선 기존 장기전세와 닮았다. 하지만 일정한 출산 요건 등을 충족한 입주자에게는 거주하던 주택을 시세보다 낮은 가격으로 우선매수할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결정적으로 차이가 있다.
2007년부터 장기전세에 입주해 20년을 채운 가구는 계약에 따라 집을 비워줘야 한다. 서울시는 이렇게 나온 기존 장기전세 물량 일부를 미리내집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그런데 그 집에 새로 들어온 신혼부부는 출산 등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향후 그 집을 살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 같은 '오세훈표 장기전세'인데 1세대와 2세대의 출구가 달라지는 셈이다.
20년 전 오 시장이 놓은 '주거사다리'가 처음으로 끝에 닿았다. [사진 | 뉴시스]■ 오세훈이 만들고, 오세훈에게 돌아왔다 = 상황을 더 복잡하게 만드는 건 서울시가 기존 장기전세의 정책적 성과 역시 높게 평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서울시는 올해 장기전세 도입 20년을 맞아 이 제도를 서울의 대표적인 '주거사다리'라고 평가했다. 지금까지 장기전세에 거주한 가구는 누적 4만3907가구에 달한다.하지만 지금까지 장기전세에서 퇴거한 1만4902가구 가운데 자가주택을 마련해 나간 가구는 1171가구, 8%였다. 물론 자가 외에 다른 선택지도 있기 때문에 나머지 92%가 모두 주거상향에 실패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질문은 남는다. 20년 동안 안정적으로 살 수 있게 해주는 것만으로 '주거사다리'의 역할은 끝나는 것인가.
공교롭게도 이 질문에 답해야 할 사람은 20년 전 장기전세를 만든 오세훈 시장이다. 기존 입주자의 주거안정을 계속 보장하면 새로운 무주택자의 기회가 줄어든다. 계약대로 내보내면 장기간 공공임대에 의존해온 가구의 주거불안과 장기전세와 미리내집 간 형평성 논란이 커질 수 있다.
20년 전 오 시장이 놓은 '주거사다리'가 처음으로 끝에 닿았다. 그리고 사다리의 끝에서 다음 계단을 어떻게 놓을지 결정해야 할 숙제가 다시 오 시장에게 돌아왔다.
조봄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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