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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어야 1년’ 목숨줄, 22년 살아내... ‘사찰 음식 명장’ 선재 스님 “답은 음식에”

[제86차 WIN문화포럼]
사찰 음식 명장 1호 선재 스님
‘수행에서 일상으로, 음식이 삶이 되는 길’ 강연

장 담그기 문화 유네스코 등재 기반 마련
15년만 에세이 『나를 살리는 음식들』 출간

1994년 간경화 말기 진단 후 1년 만에 호전
경전 익히고 사찰음식으로 수행
“음식은 생명·건강·지혜 삼박자 깃들어야”
사찰 음식 명장 1호 선재 스님은 여성신문과 만난 자리에서 "음식은 수행이다. 수행자인 제가 할 일은 젊은 세대에게 조상의 지혜를 전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손상민 사진기자 사찰 음식 명장 1호 선재 스님은 여성신문과 만난 자리에서 "음식은 수행이다. 수행자인 제가 할 일은 젊은 세대에게 조상의 지혜를 전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손상민 사진기자

"불교에서는 음식을 먹는 행위를 '식사'라고 하지 않고 '공양'이라고 해요. 스님의 음식은 '수행식'이라 하고, 경전은 음식을 '생명'이라고 이야기하죠. 결국 내 몸과 나눈다는 말이에요. 음식에는 생명과 건강, 지혜가 함께 깃들어야 해요. 음식이 하나의 생명을 온전하게 이룰 때, 음식을 먹는 우리도 나의 생명을 온전히 누릴 수 있어요."

1980년 8월 8일, 선재 스님이 출가한 날이다. 24살 어린 나이에 속세를 벗어던졌다. 부모의 반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미련이 더 이상 그를 속세에 묶어둘 수 없었을 뿐이다. 그로부터 40여년이 흘렀다. 올해 70대에 접어든 그를 만난 사람들이 꼭 하는 이야기가 있다. "스님, 참 젊으세요." 어쩜 그리 정정하냐고, 어떻게 병을 이겨냈냐고 물으며 가르침을 청한다.

선재 스님은 1994년 간경화 말기 진단을 받았다. "길어야 1년"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선고가 내려졌다. 하지만 그는 절망도, 포기도 하지 않았다. 자식은 부모보다 먼저 죽을 수 없다는 마음으로 매일 기도했다. 기도하지 않는 시간에는 밭에 가서 농사를 짓고, 경전을 익히며 사찰음식에 집중했다. 이 모든 과정이 자연의 리듬, 몸의 리듬을 찾는 수행이었다. 그렇게 약 1년 만에 기적적으로 몸 안에 항체를 만들었다. 사찰음식은 '살리는 음식'이라는 경전의 말씀이 옳았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선재 스님은 자신과 같은 혼란과 아픔을 겪는 이들을 위해 발로 뛰었다. 어린이집, 자립 준비 청소년 시설, 장애인 시설, 노인대학 등 발을 들이지 않은 곳이 없었다. 하루는 유치원에서 아이들을 돌봤다. 아토피를 앓던 아이들은 선재 스님의 음식을 먹으면서 점차 호전됐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주말만 지나면 아토피가 더 심해져서 돌아왔다. 선재 스님은 이를 의아하게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부모가 유치원에 김치를 얻으러 왔다. 이들은 집에 김치가 없다고 했다. 선재 스님은 그제야 깨달았다. 아, 먹는 일에도 배움이 필요하구나.

"직접 담근 김치와 장을 먹으면 나도 모르는 사이 몸 안에 면역력이 자리 잡아요. 그런데 요즘 청년들은 그런 경험이 없어요. 흔히 '100세 시대'라고 하지만, 지금의 식습관을 보면 청년 세대는 그에 해당하지 않을지도 몰라요."

사찰 음식 명장 1호 선재 스님은 지난 8월 20일서울 서초구 더리버사이드호텔에서 열린 'WIN문화포럼'에서 삶이 되는 음식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며 "조상들은 이미 음식에 관한 지혜를 가지고 있었다"고 강조했다. 사찰 음식 명장 1호 선재 스님은 지난 8월 20일서울 서초구 더리버사이드호텔에서 열린 'WIN문화포럼'에서 삶이 되는 음식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며 "조상들은 이미 음식에 관한 지혜를 가지고 있었다"고 강조했다.  ⓒ손상민 사진기자

선재 스님은 음식으로 '살아낸' 경험이 많았다. 지난해만 해도 그렇다. 바쁜 일정으로 면역력이 떨어졌을 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걸려 몸무게가 40kg까지 빠졌다. 간경화를 앓았던 시절보다 상태가 심각했다. 혈압 수치는 46~50을 넘지 못했다. 근육이 빠져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건강 악화로 구급차에 실려 가기도 했다. 당시 그는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최고경영자(CEO) 서밋 만찬 준비를 앞두고 있었다. 그는 주변의 만류에도 "죽어도 무대 위에서 죽겠다"는 일념 하나로 단백질 주사를 맞고 경주로 향했다. 만찬은 성공적이었지만, 회복은 쉽지 않았다. 그때 그가 선택한 방법이 바로 '발효' 음식이었다.

"잣, 땅콩 등을 넣은 단백질 김치를 만들어 먹었어요. 저는 간이 좋지 않아서 고단백, 고열량 음식을 흡수할 수 없어요. 그래서 모두 김치 속에 넣어서 먹었죠."

한식은 저마다 조리법이 달라도 '발효'가 기본이다. 경기도는 냉국에 간장을 넣고, 강원도는 고추장, 제주도는 된장을 넣는다. 지역에 따라 사용하는 장이 달라진다는 말은 온도에 따라 필요한 발효가 다르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선재 스님은 지난 8월 20일 서울 서초구 더리버사이드호텔에서 열린 'WIN문화포럼'에서 삶이 되는 음식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며 "조상들은 이미 음식에 관한 지혜를 가지고 있었다"고 강조했다.

선재 스님의 에세이 『나를 살리는 음식들』. ⓒ나무의마음 선재 스님의 에세이 『나를 살리는 음식들』. ⓒ나무의마음

그는 최근 음식에서 발견한 지혜를 담은 에세이 『나를 살리는 음식들』을 펴냈다. 대한불교조계종 사찰 음식 명장 1호라는 타이틀에 앞서 그가 평생을 바쳐 온 '음식 수행'을 담았다. 자연에서 난 재료들과 함께 구수하고 정겨운 한국의 장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한국의 장 담그기 문화는 2018년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된 후 2024년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됐다. 선재 스님은 2018년부터 2021년까지 한식진흥원 이사장직을 지내며 유네스코 등재 기반을 닦았다.

"제가 한식진흥원 이사장으로 일하던 시절 가장 먼저 한 일이 문헌 구축이었어요. 장이 우리의 삶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에 대한 사료 조사가 필요했죠. 처음 문헌을 수집할 때만 해도 신화에 담긴 장 이야기를 언급하면 '왜 미신으로 굿을 하느냐'라는 말이 나왔어요. 하지만 장 담그기도 결국 사람이 모여 함께 치르는 일종의 의식이거든요."

선재 스님이 발견한 장의 진정한 의미는 '함께'였다. 예를 들어 김장은 온 식구, 온 동네 주민이 모여 배추를 씻고, 소금에 절이고, 양념에 무쳤다. 장독대에 차곡차곡 쌓아 숙성한 김치는 이웃이 함께 나눠 먹었다.

넷플릭스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 시즌2에 출연한 선재 스님.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 시즌2에 출연한 선재 스님. ⓒ넷플릭스 제공

그러나 주거 방식이 변화하면서 장 담그는 문화는 점차 사라지고 있다. 어머니의 김치 맛을 모르고 자라는 아이들이 대부분, 한식당조차도 직접 담근 김치를 내놓는 일이 드물었다.

지난 6월 대한불교조계종사회복지재단과 선재 스님이 진행한 대학생 대상 무료 급식 행사 '청년밥심(心)'에는 인근 대학교 학생 120여명이 몰렸다. 사찰음식을 맛보기 위해 시험까지 마다하고 현장을 찾은 학생들도 있었다. 아직 건강 회복 단계인 선재 스님은 학생 한 명 한 명과 눈을 맞추며 음식을 나눴다. 모두 미래의 문화를 책임질 아이들을 위한 결정이었다.

"'흑백요리사' 시즌2 출연 이후 예능, 광고 섭외가 밀려 들어왔는데 모두 거절했어요. 저는 수행자의 음식을 알려드리고 싶었을 뿐이지, 세상에 휩쓸리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랬더니 누군가 말하더군요. '스님, 물 들어올 때 노 저으셔야죠.' 하지만 제 배는 젊은 세대들에게 조상들의 지혜를 전하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함께 노를 저어주셔야 나아갈 수 있습니다."

한편 WIN문화포럼(대표 서은경·김효선)은 (사)여성문화네트워크가 문화를 통한 사회적 소통, 여성 리더들의 네트워킹, 성인지 리더십 개발 등을 위해 2012년 창립한 포럼이다. 여성신문사가 후원하며, 매 짝수달 셋째 주 목요일, 연 6회 개최된다.

선재 스님이 20일 서울 서초구 더리버사이드호텔에서 열린 'WIN문화포럼'에서 강연을 진행했다. ⓒ손상민 사진 기자 선재 스님이 20일 서울 서초구 더리버사이드호텔에서 열린 'WIN문화포럼'에서 강연을 진행했다. ⓒ손상민 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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