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 앞에서 한국산업은행·IBK기업은행·한국수출입은행 노동조합이 연 지방이전 반대 공동 집회에서 참가 조합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사진=연합뉴스]정부의 2차 공공기관 지방 이전 구상이 금융권을 뒤흔들고 있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을 비롯해 산업은행·기업은행·수출입은행·예금보험공사 등 금융 정책과 감독, 위기 대응의 핵심 기관들이 이전 후보군으로 거론되면서다.
지역 균형발전과 금융 기능의 지방 분산이라는 명분에도 불구하고 금융회사와 자본시장이 수도권에 집중된 현실을 감안하면 정책·감독 효율성이 떨어지고 전문인력 이탈까지 가속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20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금융권의 반발은 개별 기관을 넘어 공동 대응으로 확산하는 분위기다. 국책은행 노조들이 대규모 집회를 연 데 이어 금감원과 예금보험공사 노조도 오는 24일 공동 기자회견을 열기로 했다. 금융감독과 예금자 보호를 담당하는 두 기관이 지방 이전 문제를 놓고 공동 행동에 나서는 것은 이례적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공공기관 이전이 본격화할수록 쟁점은 단순히 '서울이냐 지방이냐'를 넘어 금융산업의 집적 효과와 지역 균형발전 가운데 어디에 무게를 둘 것인지로 옮겨갈 전망이다.
금융당국 지방 이전 논란에서 가장 먼저 제기되는 문제는 금융 현장과의 거리다. 금감원은 올해 금융회사를 대상으로 총 707회의 검사를 계획하고 있다. 검사에 투입되는 연인원만 2만8229명에 달한다. 이 가운데 상당수는 금융회사 현장을 직접 방문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하지만 금융회사 본점의 91.6%, 금감원 현장검사 대상의 88.3%가 수도권에 몰려 있다. 상장기업 본사의 72.7%, 금융민원의 81.4%도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는 게 금감원 노조 측 의견이다.
본원이 지방으로 내려가더라도 감독 대상 자체가 이동하지 않는다면 직원들이 검사를 위해 다시 서울로 올라와야 하는 상황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기관은 지방으로 옮겼지만 실제 업무는 수도권에서 처리하는 이른바 '역출장'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금감원이 소비자 보호와 시장 리스크 대응을 강화하면서 현장검사를 확대하고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올해 검사 횟수는 지난해 653회에서 707회로 8.3% 늘었다.
금융사고나 시장 급변 상황에서는 더욱 민감한 문제가 될 수 있다.
금융위와 금감원뿐 아니라 한국거래소, 예금보험공사, 금융회사들이 수시로 정보를 교환해야 하는데 기관 간 물리적 거리가 벌어질수록 실무 협의와 초기 대응이 늦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금융권이 거리보다 더 심각하게 보는 문제는 인력 유출이다. 금융당국과 금융공기업은 일반 행정기관에 비해 회계·법률·시장 분야의 전문인력 의존도가 높다.
금감원에서 근무하는 회계사와 변호사만 700명을 웃돈다. 금융위 역시 정책을 설계하고 시장 현안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금융회사와 법무법인, 회계법인 등 민간 전문가들과 경쟁하며 인력을 확보해야 한다.
문제는 이들이 서울을 떠나야 할 경우 민간으로 이동할 선택지가 상대적으로 많다는 점이다.
금감원에서는 지방 이전 논의 이전부터 자발적 퇴직자가 빠르게 늘었다. 지난해 자발적으로 조직을 떠난 직원은 77명으로 2017년 22명의 세 배를 넘어섰다.
업무 강도가 높아진 상황에서 근무지까지 바뀔 경우 저연차 직원과 전문자격 보유자를 중심으로 이탈 속도가 빨라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금융위 내부에서도 비슷한 분위기가 감지된다. 세종 이전이 현실화할 가능성에 대비해 거주지를 알아보거나 가족은 수도권에 남긴 채 혼자 이동하는 방안을 고민하는 직원들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확대되고 새로운 금융상품과 가상자산, 디지털 금융 등 감독 영역까지 빠르게 넓어지고 있다는 점도 변수다. 금융당국 입장에서는 정책 경험과 전문성을 갖춘 인력을 얼마나 유지하느냐가 조직 경쟁력과 직결될 수밖에 없다.
현재 반발 수위도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 산업은행·기업은행·수출입은행 노조는 지난 11일 서울 여의도에서 지방 이전 반대 공동 집회를 열었다.
주최 측 추산 약 2000명이 참석했다. 세 국책은행 노조가 공공기관 지방 이전을 놓고 공동 행동에 나선 것은 처음이다.
금감원 노조도 지난 17일 성명을 내고 이전 논의를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금융회사와 감독 대상이 수도권에 몰린 상황에서 감독기관만 떨어뜨려 놓으면 금융소비자 보호와 시장 감시 기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여기에 예금보험공사까지 가세했다. 금감원과 예보 노조는 오는 24일 공동 기자회견을 열어 금융감독과 금융위기 대응 기관의 지방 이전이 초래할 비용과 전문인력 이탈 문제를 제기할 예정이다.
예보는 금융회사가 부실화했을 때 예금자를 보호하고 정리 절차를 담당하는 금융안전망의 핵심 기관이다.
최근 디지털 금융 확산으로 뱅크런과 같은 금융 불안이 과거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확산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금융회사와 당국 사이의 물리적 접근성도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편, 금융노조도 대응 수위를 높이고 있다. 산업은행 등 국책은행뿐 아니라 이전 후보로 거론되는 금융기관들의 반발이 이어지면서 지방 이전 문제가 올해 금융권 노사관계의 핵심 현안으로 떠오르는 양상이다.